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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영남대학교’와 지역언론

기사승인 2012.03.06  1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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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7년 대구.청구대 합병...박근혜, 이사장(80)→비리 퇴진(88)→이사 추천(09)
<매일> '합병의 명암'(67), '박근혜 출연금 얼마인가'(88)...영남대 정관은 '설립자 박정희'


눈치 안 보고 문제 제기하는 용기

영남일보는 대구의 맑은 물 확보대책이 신공항 건설 못지않은 문제(국책사업)라고 지적했다(영남일보 3월 3일 23면(오피니언) 사설 ‘대구, 맑은 물 확보대책 급하다’) 물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MB정부가 낙동강을 비롯한 ‘4대강사업’을 여론을 무시하고 강행했을 때 이 사업은 4대강연안 주민들에게 심각한 재앙이 될 것이란 여론이 비등했던 것을 떠올리면 영남일보의 사설은 문제를 늦었지만 구조적인 점에서 바로 본 것이다. 그런데 영남일보의 이 사설은 동업 매일신문이 주도했고, 그래서 정치권을 압박하는 데 큰 몫을 했고, 현재도 하고 있는 ‘신공항’ 건설에 못지않은 것이 대구시민의 맑은 물 확보라는 점에 여론을 환기한 점, 바로 대구의 근본문제를 직시한 점에서 중요하지만 메이저언론이 다루지 않음으로써 묻힌 우리지역의 현안을 양지로 끌어낸 점에서 작지만 용기 있는 지적이었다.

"정수장학회․영남대 손 떼라"

그런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영향 아래 있는 정수장학회와 영남대학교 법인(재단)을 떨고 가도록 권고하는 사설과 기사를 잇달아 게재해 그 배경에 관심을 모았다. 유력 여권 대선후보가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의도였지만 이 두 기관의 사유화가 국민들에게 소유의 부당성과 함께 박 비대위원장의 최대 정치적 후광인 박정희 독재정치의 부정적 모습을 드러내는 판도라의 상자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한 결과로 보인다는 점에서 정수장학회와 영남대학교 재단은 4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살아 있는 현안임을 실감하게 했다.

 
 
▲ <조선일보> 2012년 1월 4일자 35면(사설)

잠복해 있는 '활화산' 의제

 문제는 잠복해 있는 현안-영남대학교 재단 문제가 우리 대구지역의 현안이어서 우리지역 언론이 어떤 시각에서든 이 문제를 공론장의 의제로 올릴 필요가 있는데도 다루지 않고 있는 사실이다. 조선․동아와 같은 보수 메이저 정론지(政論紙)들이 사설을 통해 박 비대위원장에게 서둘러 ‘정리’하도록 권고(조선일보, 1월 4일 A35 여론 사설 ‘박근혜 위원장, 정수장학회 문제부터 단호하게 자르라’/동아일보, 2월 25일 A27 오피니언 사설 ‘정수장학회는 결국 박 위원장이 해결할 숙제’)하고 있는 상황과는 매우 판이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미디어창」은 영남대학교 재단 문제를 그 동안 언론이 어떻게 진단했고 무엇이 문제이며 어떤 해법을 제시했는지, 문제를 다룬 시각은 어땠는지 짚어본다. 역사를 아는 것은 교훈과 해법을 얻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 <동아일보> 2012년 2월 25일자 27면(사설)

'공정보도 걸림돌' 국민이 지켜봐

정수장학회 강제헌납 문제가 부산일보 사태로 국민에게 부각되자 조선․동아는 부산일보 공정보도의 최대 걸림돌로 박 비대위원장의 영향력 아래 있는 정수장학회가 작용하고 있고, 정수장학회의 부정적 역할은 ‘박정희의 부정적 유산’과 끊을 수 없는 인과관계임을 직시한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후광’을 최대 정치 자산으로 삼고 있는 박 비대위원장이 박정희 독재정치의 부정적 모습과 오버랩 되는 것을 조선․동아는 방관할 수만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동아로서도 정수장학회의 부산일보 소유에 정당성이 없다는 것, 정수장학회가 부산일보 편집권 독립을 통한 공정보도 세우기의 대척점에 서 있고 국민들이 이 엄연힌 사실을 직시하고 있는 사실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의 부정적 유산' 떨고 가라

조선․동아 모두 박 비대위원장에게 정수장학회에서 손을 뗄 것을 권고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수장학회회가 부산일보를 소유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당성, 도덕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동아일보는 김지태 소유이던 부산일보가 박정희의 소유로 된 강제헌납에 대해 ‘국가의 강압’이란 법원의 판결을 인용했고, 이 문제를 박정희의 ‘부정적 유산’이라고도 했는데 대구의 민립대학인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을 영남대학교로 합병한 문제는 규모 면이나 지역 교육계에 미친 구조적인 면, 이후락과 공화당 실세들이 전면에 나선 점에서 부산일보 강제 헌납 이상이라 할 수 있다.

'개인 소유 안 된다' 국민이 안 믿어

특히 눈길을 모으는 대목은 조선일보 사설이다. 극우 정론지(政論紙, 황색저널리즘)인 조선일보는 앞의 사설에서 부산일보 주식 100%, 경향신문 주식 30%를 소유하고 있는 정수장학회와 영남대학교에 대해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핵심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데도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에서 2005년 이미 물러났으며, 영남대학교는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학교법인이라는 주장’을 펴는 것에 대해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직접 설득해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측근(이준석)의 인터뷰를 인용, ‘시중에선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여기서 ‘시중’이란 ‘국민여론’으로 보면 될 듯하다.

 
 
▲ <영남대신문> 2009년 8월 31일자
지역언론은 여전히 '침묵'


이와 관련해 근래 보도를 보면 우리지역의 어떤 신문․방송도 ‘자르고’ ‘정리’하도록 언론을 통해 권고해,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이사장을 포함해 이사 7명 중 4명을 추천해 간접관리 하고 있는 ‘영남대학교 재단’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옛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영남대학교로 합병, ‘박정희-박근혜 대학’으로 운영된 대 대해 언론이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를 짚어보자. 이를 통해 ‘박정희-박근혜 대학’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원민주화대행진 부른 '박근혜 이사장'

박정희 유신독재 체제가 붕괴되고 1980년 서울의 봄이 도래하자 정부는 4월 24일 박근혜 이사장 이하 재단이사를 전격 승인했다.

이에 반발해 영남대학교 학생 만2천여명이 이 대학 경산캠퍼스에서 대구 대명동 캠퍼스까지 25km 구간을 7시간에 걸쳐 걸으며 항의 시위했다. 영남대학교신문(「영대신문」, 1980년 5월 14일, 2면)은 이를 ‘학원민주화 대행진 25km’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개교 이래 가장 규모가 크고, 학생운동사에 새로운 장을 장식할 민주화․求校의 도보행진이 지난 14일 경산캠퍼스에서 대명동캠퍼스까지의 25km 구간서 1만2천여명의 영남대학인이 참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7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이날 7시간의 구교․민주화 대행진의 시간별 경과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14일 오전 본지 호외와 교내 긴급방송에 지난 13일 오후 2시경에 본교 이사장에 박근혜 씨가, 이사에 이효상, 이인기, 이규호, 한준우, 곽명덕, 박영수 씨 등이 문교부에 의해 전격적으로 승인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교학생들은 오전 10시 단대별로 집결, 각기 구교성명서 및 결의문을 낭독하고 10시 30분 본교 개교 이래 최대인 1만여명(진행도중 1만2천여명으로 늘어남)이 교문 앞에 총집결하였다.…

총체척 비리에 일시 퇴진

‘학원민주화를 위한 평화대행진’은 ‘박정희 대학’이 돼 버린 영남대학교 재단을 박정희 유신독재체제가 무너졌는데도 그 딸이 이사장으로 대물림하는 데 반발해 전개된 것이다. 이후 영남대학교 박근혜 체제는 1988년 박근혜 측근의 대규모 부정입학, 재단부동산처분비리, 장학금비리, 영남투자금융비리, 영남의료원비리 등 총체적 비리가 불거지자 퇴진하고 조선대학교와 함께 국정감사를 받게 된다. 영남대학교 재단 비리는 영남대 총학생회, 교수협의회 등으로부터 박근혜 재단 체제 전면 퇴진을 요구받았다(영대신문, 1988년 11월 9일자 1면,「학원민주화의  횃불 타올라…」/총학․교협 등, 현 재단이사진의 전면퇴진 요구/등록금 동결과 학원민주화 위한 공동委 발족).

국정감사 받은 '불명예'

박근혜 체제 하의 영남대학교 재단 비리는 전국적인 파장을 불러일으켜 광주의 조선대학교와 함께 영남대학교는 1988~89년에 걸쳐 국회의 국정감사를 받게 된다. 당시 경향신문 기사(1988년 11월 3일 14면 머리, 「嶺南大  不正입학 모두 29명」/기부금 2千萬원까지/87~88年 성적不問 …교직원 子女도 2명)는 부정입학 대가로 받은 기부금 중 일부는 재단관계자의 말을 인용, 재단 비자금으로 쓰인 사실을 밝히고 있다(매일신문, 1988년 10월 19일 3면 「박근혜씨 재단출연금 얼마인가」도 참조. 이날치 신문 1․2면은 매일신문 CD롬에서는 결본 된 것으로 나타나 이 신문을 통해서는 국정감사 주요 내용을 알 수 없었다).

 
 
▲ <경향신문> 1988년 11월 3일자 14면

'영남대 사유물' 시각 내비쳐

경향신문의 같은 날 기사(「朴槿惠씨 理事職 사퇴」“不正입학 유감”)는 특히 다음과 같이 영남대학교를 박근혜 이사(당시)가 집안의 사유물로 보고 관리해온 사실을 보여주는 점에서 주목된다.

영남대의 실질적 교주이며 학교법인 영남학원 재단이사인 박근혜 씨가 2일 이사직을 사퇴했다. 박 씨는 이날 상오 영남학원 재단사무국에서 김정욱 씨(재단이사․영남투자금융회장)를 통해 재단이사직 사퇴성명을 발표했다. 박 씨는 이 성명에서 『아버지인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설립한 영남대를 잘 키워보려고 애써왔으나 신입생부정입학문제 등 최근의 사태가 돌아가신 분의 뜻을 빛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학교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씨는 박 전 대통령이 시해당한 다음 해인 4월 24일 이효상 씨의 뒤를 이어 영남학원 3대 이사장으로 피선됐었다. 그러나 박 씨가 이사장 취임으로 학내사태가 심각해지자 그해 11월 8일 이사장직을 내놓고 평이사로 재임해왔다.

박 비대위원장이 영남대학교 재단의 이사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후광이었음은 국정감사 당시의 다음 기록(증언)에서도 확인된다.

박석무 위원 : 그러면 박근혜씨가 이 학교에 등장해서 관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일문 이사장 : 그것은 박대통령을 교주로 모셨고 따님이라는 인연 때문에…


박정희 박근혜 부녀 출연금 한 푼 안 내

그런데 1988년 11월 2일 동아일보 14면 기사 「「嶺南大사태」 끝이 안 보인다」/재단퇴진요구 시위에 부정입학까지 드러나 萬波/“校主 朴正熙” 명시 定款 말썽/학생들 “槿惠씨 측근 「4인방」이 횡령” 비난」는 영남대 사태의 근본 문제가 영남대를 강제 헌납 받고 이를 사유화 한 사실, 즉 ‘교주 박정희’의 대학으로 만든 데 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어 주목된다.

 
 
▲ <동아일보> 1989년 11월 2일자 14면
이번 신입생 부정입학 사건을 계기로 영남대가 안고 있는 문제점 등을 살펴본다.
학교법인 영남학원이 탄생한 것은 지난 67년 12월 16일. 학교법인 대구대학(1947년 9월 22일 설립)과 청구대학(1950년 10월2일 설립)이 「발전적으로 합병」, 영남대학이 됐다고 학교 측이 국정감사반에 낸 자료에는 기록돼 있다. 그러나 항간에는 고 朴正熙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통령 퇴임 후 총장으로 노년을 명예롭게 보내대도록 하기 위해 두 학교를 강제로 빼앗아 「진상」한 권력형 비리의 표본으로 알려져 있다.
이사장의 면면을 보면 초대이사장에는 李東寧씨(전공화당의원) 2대엔 한솔 李孝祥씨(전국회의장) 3 대이사장엔 80년 4월 24일 朴대통령의 장녀 朴槿惠씨가 취임했다. 4대엔 柳駿씨(전 연세대 교수), 현재 5대엔 건국대 총장을 지낸 趙一文씨.
그 동안 소문에 그쳤던 「강제통합설」은 이번 국정감사 때 야당의원들의 질문에 대한 학교측의 답변으로 기정사실로 굳어지게 됐다.
질의에 나선 민주당 金東英 의원이 趙이사장과 權赫基 총장을 상대로 「정통성문제」를 추궁하자 趙이사장이 『서류상 고 朴대통령과 槿惠씨의 출연금은 없는 것으로 돼 있다』고 답변한 데 이어 權총장이 엉겁결에 『정관에 고 朴대통령이 교주(校主)로 명시돼 있어 어쩔 수 없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힘으로써 꼬리를 잡히게 된 것이다.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문교부인가 86․9․5) 제1장 총칙 제1조에는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주 朴正熙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교주의 이름을 명시하고 있다. …

 
 
▲ <동아일보> 1989년 11월 2일자 14면

동아일보가 1988년 국정감사 현장을 취재 보도한 영남대학의 정관은 현재 ‘설립자 박정희’로 변경(2011. 5. 20)로 돼 있을 뿐이다. 이 사항이 변경되지 않는 한 영남대학은 조선일보의 사설이 지적하듯이 박 비대위원장이 무슨 말을 해도 국민들은 믿지 않게 돼 있다.

재단 사유화, 비리 온상

경향․동아 등 당시 언론에 보도된 영남대학교 재단의 숱한 비리는 발표된 것만을 보면 거의 전두환 신군부 체제 하에서 자행된 것이지만 그 구조적인 뿌리는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영남대학교로의 강제합병, 즉 두 대학 강제통합과 박정희 家의 영남대학교 무혈입성-사유재단화(청구대학의 설립자 최해청은 통합 영남대학교를 ‘장물(贓物)학교’라고 그의 『청구유언』에서 주장하고 있다. 국어사전에서 ‘장물’은 ‘절도, 강도, 사기, 횡령 따위의 재산 범죄에 의하여 불법으로 가진 타인 소유의 재물.’로 정의된다)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언론은 위와 같이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국정감사에서 확인한 ‘강제통합’의 과정은 다음과 같은 통합 영남대학교 출범 당시 재단이사의 명단, 출범당시 신문기사(경향신문 1967년 12월 16일 7면)에서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된다.

邱大․靑邱大/嶺南大로 統合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합쳐 영남종합대학으로 발족했다. 영남종합대학은 곧 문교부에 종합대학 승격인가신청서를 낼 예정이다.
대구대학 이사회(이사=이효상․성상영)는 15일 하오 삼성빌딩에서, 청구대학 이사회(이사=이후락․김성곤․이동녕)는 반도호텔에서 각가 이사회를 열고 두 대학을 한 법인체로 통합하기로 결정, 전문 10조로 된 통합약정이사회를 열고 두 대학을 한 법인체로 통합하기로 결정, 전문 10조로 된 통합약정서를 교환했다.


이후락, 강제합병 위해 맹활약

그런데 같은 날 매일신문 기사(3면, 「통합경의 약정서 교환/청대이사회 「영남대학교」로」)를 보면 합병 이사회에 청구대학 이사 대표로 박정희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이후락이 나온다. 영남대학교를 ‘교주 박정희’의 대학으로 만드는데 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으로서 박정희의 심복 이후락으로 대표되는 권력 핵심이 개입한 반증이 아닐 수 없다.

 
 
▲ <매일신문> 1967년 12월 16일자 3면

경향신문은 같은 날 「구대생들 반대집회」 제목의 기사를 역시 다음과 같이 실었는데 두 대학 학생들은 영남대학교로의 합병의 배경과 배후를 정치압력과 권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16일 상오 10시 경북 대구대학교학생 약 2천명은 동 강당에서 가칭 「영남대학교 장례식」을 가지면서 영남대학교의 발족을 결사반대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일부 정치압력과 권력에 의해 영남대학교로 발족, 이들에 의해 농락당함은 신성한 학원을 짓밟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대구대학․청구대학의 영남대학교로의 강제 합병 문제-두 대학 건학이념의 실종․민주교육에 대한 심각한 위협-를 대구의 언론은 어떻게 봤는가. 이 점을 살피는 것은 영남대학교 재단문제, 새누리당 박 비대위원장에게 조선․동아가 ‘자르고’ ‘정리’할 것을 권고하지 않으면 안 된 결정적인 문제점, 즉 ‘박정희의 부정적 유산’을 살피는 데 도움을 줄 뿐 더러 대구의 언론인들이 어떤 시각과 태도로 ‘문제’를 다뤄야 할지에 대한 지침이 된다.

 
 
▲ <매일신문> 1988년 10월 19일자 3면

문제 제기 조목조목

대구대학․청구대학이 강제 통합되던 1967년 대구 매일신문 논설기자는 다음과 같은 통단 논설을 2회 연속 집필, 독자들에게 영남대학교 재단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지, 의문점은 무엇인지 통렬히 지적한다.

邱․靑合倂의 明暗 -「綜大」를 爲한 反問-(1967년 12월 23일 2면)

이 사설에서 논설기자는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영남대학교로 합병되는 데 대해 다음과 같은 문제점․의문점을 제기하고 있다.

 
 
▲ <매일신문> 1967년 12월 23일자 2면 사설
(1)대구․청구대학을 하나의 대학으로 합치는 것(합병)은 합리적이며 현명한 것인가?
(2)두 대학의 합병 정신은 건전한 것인가?
(3)두 대학의 합병 절차는 합리적이었는가?
(4)두 대학의 합병에서 약속되어야 할 장래적 보장(발전)은 확립되어 있는가?
(5)두 대학 합병 과정에 차질, 마찰은 없을 것인가?
(6)두 대학 합병에 정략성은 개입하지 않았는가?(논설기자는 특히 이 ‘정략성’ 대목에다 「(비교육성)」이라는 해석을 집어넣어 강조했다.


논설기자가 이 같은 의문/반문을 제기하는 근거는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대구시민의 대학이며 경북도민의 대학이라는 견지에서 당해 대학인 외에 일반사회가 당연히 제기해야 할 문제점이란 것이다. 이 문제의식은 문제가 있는 데 대해서는 언론의 비판적 문제제기가 당연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시민과 독자를 대신한 문제제기 의식은 건전한 것이다.

논설기자는 특히 학교법인 영남학원 이사장 명의로 1967년 12월 21일 발표한 「학교법인 합병에 대하여」에 대해 ‘합병의 취의라고 할까, 포부(경륜․목적)라고 할까-밝혀 보인 그 합병의 의의는 한말로 따져 막연한 것이어서 실로 유감이라 아니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논설기자는 「학교법인 합병에 대하여」의 요지를 (1)양 私大는 학부 편제면에 각이한 특색이 없으며 그래서 (2)한정된 동일지역 내의 대학 난립상을 면치 못하고 있다. 따라서 (3)교육비를 2중 3중으로 낭비할 뿐, 교육의 질적인 향상을 기할 수 없는 실정, 그러므로 (4)대국적 견지에서 양 단대를 종함대학교로 통함 승격하기로 한 것-으로 간추리고 있다.

논설기자는 덧붙여 ‘병합의 정신을 표시한 귀 절로서 (1)양대의 건학정신을 토대로 해서 새 綜大의 「교육이념」을 확립하고 영남인의 영남대학으로서 교육의 질을「세계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될 것을 확신한다!’는 내용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재단불충실' 합병 위한 명분

논설기자는 대구대학․청구대학의 합병 요지, 신설 이사장이 주장한 합병명분 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 판단한다.
(1)대학의 난립이란 주장에 대해-4백만 경북도민의 私大로서 대구․청구대학이 존립하게 된 지역적 조건을 고려하면 재단의 불충실은 「난립」과 관련시켜 말할 수는 없다.
(2)재단 불신은 이 두 대학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며, 재단불신 때문에 재벌(삼성)과 ‘실력인사그룹’이 대구․청구대학의 관리권을 양수받았음에도 새 이사진은 재단 보강을 위해 아무 한 일이 없다.
(3)그러므로 교육비의 낭비니, 대국적 견지니 하는 것은 종합대학으로의 승격 명분을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는 반문을 낳는다.
(4)양 대학의 건학정신을 토대로 한 교육이념의 확립 운운은 문장의 수식에 불과하다.
(5)세계수준 운운하려면 종합대학의 필요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도리일 텐데 그런 것이 없다.

진실성에 의문부호

대구대․청구대의 합병과 관련해 특히 논설기자는 그 합병이 여론을 호도하기 위한 선전에 치우쳐 진정성이 없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특정 재벌과 정치인․실업가 官人「멤버」의 이사진이어서 아직은 대학경영의 본질과 그 묘를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알 수 없으나 병합이유와 그 목적설정이 너무나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선전적인 외식에만 치우친 것 같아서 실감적인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심히 유감이라 할 것이다.

 
 
▲ 영남학원 설립 당시 임원 / 출처. 영남대학교 홈페이지
신설법인이 양 대학의 건학정신을 발판으로 한다면서 경북일원의 교육발전에 기여해온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의 설립자들을 신설 법인에서 배제한 것은 도의적으로 잘 못 되었고, 20억원(대구대)와 15억원(청구대)의 재단을 인수한 재벌․특정 실력자들이 1/30에 해당할지 말지한 찬조(보조)를 해 놓고서는  관리권을 받아놓고서는 ‘관리의 수의권’을 ‘주인의 임의권’으로 행사한 것부터가 월권이라고  논설기자는 지적한다.

이에 따라 논설기자는 대구․청구대학의 합병이 교육모리배 수준임을 지적하면서 종합대학이란 미명 아래 지역대학이 파행을 하는 데 대해 대학관계자는 물론이고 지역민들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의 불을 켤 것을 다음과 같이 뜨겁게 충고한다.

대학이 어떤 실업가․정치인․어떤 권력자․또는 어떤 교육모리배들의 세도․처세․치부의 수단으로 이용된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 「史實」은 부정할 수 없는 이 나라 대학교육의 자연발전적인 뚜렷한 증상이다.
양 대학의 현임학장(병합 결의 전의)을 위시한 교육자․교수회․동창회 그리고 이 고장의 일반 유지들은 如上의 사실과 경위를 냉정히 관찰․검토해서 가부의 조준(照準)을 세워야 할 것이며 지금까지의 그 본말전도적인 찬․반의 의견표시나 결의(적) 행위에는 반성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병합과 종대를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병합의 장래적인 보장과 발전을 위해서 이 제언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을 것으로 첨언해둔다.


3대 의문 점화

예리한 분석력, 지역․교육문제에 책임 있는 자세에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는 논설이다. 그런데 논설기자는 이에 앞서 같은 신문 12월 17일 2면에 「청대․구대의 병합-설계 없는 綜大에 의점(疑點)」이란 사설을 집필, 게재한다. 그가 제시한 합병의 의문점은 다음과 같다.

(1)양 대학의 재단을 인수한 재벌과 권력그룹에 독자적으로 학원을 재건하려는 성의와 실력이 부족하고, 종합대학교 설치기준에 부합할 수 있는 형식상 조건 구비에만 착안해서 병합하려 한 것이 아닌가.
(2)병합계획은 공개리에 진행해야 하는데도 비밀리에 획책한 것은 월권이며 정략에 의한 것이 아닌가. 
(3)병합에서 종합대학기구개편에 이르기까지 소요되는 재정을 뒷받침 할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특히 (3)과 관련해서는 「영남대학교50년사」은 박정희의 심복 이후락의 맹활약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어 주목된다(272~273쪽).

…이 설명을 듣고 있던 이후락 이사가 “몇 달 전에 대구대학 측에서 각하에게 대구대학도 맡아달라고 요청한 일이 있었는데, 이번에 두 대학을 통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하고 이동녕 이사장, 김성곤 이사 등이 이에 찬동하며 의견이 모아지자 즉석에서 이후락 이사가 전화로 연락, 대구대학 성상영 이사가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

.논설기자의 이 논설은 한 주일 뒤 23일자 논설의 실마리인 셈인데 연속논문을 집필, 사실을 파고들어 독자들에게 시시비비 정신을 환기하려는 자세가 짙게 묻어난다.

그러면 67년 대구의 논설기자가 강조한 대로 ‘어떤 실업가․정치인․어떤 권력자․또는 어떤 교육모리배들’에게 좌우되지 않으면서 독립운동의 정신으로 건학이념을 실현하는 지역민의 대학이란 대학의 모습에 영남대학교 재단은 어떤 모습으로 호응해왔나?

"박정희, 최고 지도자 교주"

유감스럽게도 영남대학교 재단은 대구대․청구대 설립자들의 건학정신을 토대로 한 교육이념을 만들어 교육하겠다고 밝혔으나 재단 합병을 마무리하자 곧바로 헌신짝처럼 버린다. 새 이사진이 밝힌 교육이념은 다음과 같다.


…대구대학과 청구대학이 통합되어 새로운 법인 새로운 학교로 재출발하는 학교법인 영남학원과 영남대학교는 창학전통을 함께 살려 새로운 영남학원의 전통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또 영남이 배출한 위대한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의 애국이념을 우리 법인과 학교의 교육정신으로 삼아갈 것을 우리는 다짐한다. 따라서 우리는 박정희 씨를 우리의 법인과 학교의 최고 지도자, 교주로 모시고, 그 지도를 받고 그지도를 받을 것을 굳게 결의하는 바이다. 이 결의는 우리 법인과 영남대학교의 기본정신이 될 것이며, 또 행동의 헌장임을 확인하고 이사 전원이 이에 서명 날인한다.

1967년 12월 18일
학교법인 영남학원 이사및 감사 전원 서명 날인


이 결의에 따르면 ‘영남대학교 교주 박정희’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매일신문 논설기자가 ‘병합이유와 그 목적설정이 너무나 모호하고 추상적이며 선전적인 외식에만 치우친 것 같’다고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한 지적은 논설이 게재됐을 때 이미 적중돼 있었던 것이다.

'손 뗀다' 불구, 영향력 여전

영남대학교 재단은 이 결의에 따라 정관 제1조에 ‘법인은 대한민국 교육의 근본이념과 교주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영남대학교50년사)고 못 박았다. 영남대학교 홈페이지에 실린 2011. 5. 20. 개정 정관에서도 ‘이 법인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설립자 박정희 선생의 창학정신에 입각하여 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해 박 비대위원장이 88년 영남대학교 입학부정 비리로 국정감사를 받을 당시 ‘손을 떼겠다’고 한 발표(경향신문,동아일보)에도 불구하고 영남대학교는 ‘교주 박정희’가의 대학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관 변경 안하면 '박정희 대학'

조선일보가 사설로 지적했듯이 박 비대위원장의 영남대학교 재단 소유는 비록 그가 손을 뗐다고 말하더라도 그것을 믿어줄 국민은 별로 없게 돼 있다. 그것은 영남대학교가 박정희의 소유임을 천명한 정관에서 ‘설립자 박정희’를 삭제하지 않는 한 헛말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영남대학교 학교법인 '영남학원' 정관 / 출처. 영남대학교 홈페이지

영남대학교 재단이 박근혜의 소유란 사실은 1980년 4월 24알 서울의 봄 당시 군사권력의 비호를 받아(영남대학교50년사) 정부의 전격적 승인으로 29세의 나이에 이사장직을 맡았다가 학내 반발로 평이사로 물러났고, 1988년 영남대학교 재단 비리로 박근혜가 이사직을 사퇴했고, 다시 2009년 재단 정상화가 되자 박근혜 추천으로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 4명이 추천돼 재단을 장악한 그 동안의 과정들이 박 비대위원장의 재단 내 위치 여하를 떠나 영남대학교=박근혜 교주란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게 한다. 영남대와 관련한 박 비대위원장의 일련의 언행에서 신뢰도(진정성)는 별로 찾을 수 없다.

독립운동가 정신으로 세운 두 대학

영남대학교가 과연 ‘박근혜 대학’이 돼야 하는가.
그 정당성․도덕성은 어디서도 찾기 어렵다. 독립운동을 한 설립자들(대구대학-1947년 대구민립대학-최 준; 1948년 대구문리과전문학원-1950년 청구대학-최해청)이 독립운동 정신에 입각해 지역민과 함께 출범시킨, 그래서 민족대학․민립대학으로 부를 수 있는 대구대학․청구대학의 건학정신과, 독립군을 토벌한 일본군 장교 경력과 독재로 얼룩진 박정희-박근혜로 대물림돼 사유화된 영남대학교 재단은 정신면에서나 뿌리 면에서나 결코 부합할 수 없고 끊임없이 충돌할 뿐이다.

해답은 대구대학․청구대학의 강제통합이 정치세력(이후락을 대리인으로 한 박정희)에 의해 자행됐을 때 매일신문의 한 논설기자가 2회에 걸쳐 전무후무한 연속 통단사설로 지적하면서까지 강조한 데에서 찾아야 한다. 당시 논설기자는 (신분의 위협을 불사하고) 영남대학교는 건학정신에 충실하도록 해야 하고 지역민과 함께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 지적은 영남대학교 재단이 강제통합(그리고 박정희 가의 대학)이란 근본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는 한, 설립자들의 참여가 여전히 배제돼 있는 한 언제나 유효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새누리당 박 비대위원장의 정치적 입지 여부와 관계없이, 영남대학교는 건학정신을 살리도록, 그리고 그 대학을 낳은 지역에 돌리는 것이 순리라고 본다.

문제제기 안하는 언론, '썩은 지팡이'

언론 보도와 관련해 우리 대구지역 언론은 매일신문 논설기자가 1967년 12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엄혹한 박정희 독재 체제 하에서 권력자가 배후에 있더라도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그 시시비비를 논한 파사현정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침묵 내지 에두르기는 독자들의 알 권리를 지켜내야 할 언론인의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며, 진실의 소통을 본령으로 삼는 언론의 정도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언론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진실을 찾는 독자들의 썩은 지팡이가 될 수밖에 없다.

영남대학교가 박정희가의 대학이 아닌 대구시민․경북도민의 대학이 되기를 소망한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175]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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