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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자연의 모둠살이

기사승인 2012.03.09  09:3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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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원 /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 ㅣ 녹색평론사 ㅣ 2008)


이 책은 생김부터 권정생 선생님을 닮아 소박합니다. 어려운 말도 없고 멋을 낸 문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끔 꺼내어 읽을 때면 매번 새벽녘 바람 같이 차갑게 정신을 들게 합니다. 편리한 것을 찾아다니고 화려한 것들에 눈길을 보내는 것에 익숙한 저는, 그래서 그러한 삶의 증거들을 내 몸에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저에게는 더욱 그러합니다.

권정생 선생님은 평생을 가난 속에 살다가 가난한 채로 하늘나라로 가신 분입니다.
스스로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삶을 택하셨지요. 인간의 욕심은 끝없는 소비를 되풀이 하고 결국에는 그것으로 인해 우리의 세상이 파괴되는 무서운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루를 살아갈 양식과 생활비를 자기의 몫 이상으로 쓰는 것은 남의 것은 빼앗는 것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기에 궁핍한 삶을 기꺼이 원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지구 위엔 평화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그러나 아직도 끔찍한 살인과 약탈은 끊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도의 지능으로 속임수를 써가며 죽이며 빼앗습니다. (중략)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오늘 아침에 먹은 음식과 그리고 무엇을 지니고 있는가 모두가 정당한 것인지 생각해보셨나요? (책 중에서)

세상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군가 자기가 가져야 할 몫 이상을 가졌다는 것이죠. 우선 많이 가지는 것이 먼저이며 내가 다 소비하지 못하면 버리더라도 무조건 가지려고 합니다. 열 사람에게 열 그릇의 물이 필요한데 힘센 한 사람이 다섯 그릇의 물을 마시고 그 다음 힘센 사람이 세 그릇을 마신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 『우리들의 하느님』(권정생/녹색평론사/2008)
그러한 탐욕은 세상의 평화로운 질서를 깨뜨립니다. 균형 잡힌 모둠살이를 스스로 파괴하는 것이다고 선생님은 말하셨지요. 내 몫을 더 차지하기 위하여 남을 속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되었고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을 욕심의 수단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슴없이 전쟁을 일으키고 교묘히 위장한 강대국의 경제적 약탈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자신들의 왕국을 영원히 유지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재벌기업과 조금의 죄의식도 없이 산을 깎고 강바닥을 파내는 이들이 우리와 같은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무수한 생물을 너무 쉽게 죽이고 자연을 파괴하는 행위를 하기도 합니다. 쥐를 잡기 위해 쥐약을 놓고 잡초를 없애려고 제초제를 쓰고 벌레를 죽이고 땅속 미생물까지 죽이게 되고 그것이 강물을 오염시키고 물고기가 죽어가는 악순환들이 수십억 년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자연의 평화를 깨뜨리고 있습니다.

오직 사람에게 고기를 주기 위해서 좁은 사각 철조망에 실려 죽으러 가는 닭들과 스스로의 생식활동도 하지 못하고 인간에 의해 강제로 인공수정을 당하고 눈물을 흘린 암소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기적인 얼굴들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모든 세상의 평화를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아직 우리 곁에 없지만,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성인(聖人)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길은 어느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도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했다, 다만 예수는 평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만 가르쳐 주고 죽었을 뿐이다, 이 방법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바로 성인(聖人)들이라고 나는 일컫고 싶다. (책 중에서)  

   
▲ 권정생 / 사진 출처. 창비
선생님이 말씀하신 하느님은 무수한 교회의 철탑 위 붉은 십자가로 계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들의 몸속에 계신 하느님입니다. 우리들의 하느님은 부처를 믿는 사람의 마음에도 있으며 거지에게도 부자에게도 깡패나 어린아이에게도 존재하며 개, 고양이, 쥐, 지렁이 같은 생명들의 곁에도 있는 것이죠.

하느님은 붉은 네온으로 둘러쳐진 십자가를 높이 올리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입니다. 교회에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만 교회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구요. 우리의 전통문화를 파괴하는 것을 진실로 원하지도 않습니다. 온 세계와 온 우주가 하느님의 교회이므로 모든 자연과 더불어 사람이나 동물이나 서로 섬기며 살기를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편협한 기독교의 현실에 대하여 안타까워합니다.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고 교회가 지어지기 오래전부터 하느님은 이 땅에 존재를 하였으며 그 오랜 시간동안 이 세상을 다스려 왔기 때문에 기독교가 있고 없고 교회가 있고 없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은 오로지 교회 안에서만 하느님을 찾으려 하고 그들만의 울타리 속에 하느님의 존재를 가두려고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교회는 새삼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온 세계와 온 우주가 바로 하느님의 교회”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 소개된 기차에서 만난 어느 아주머니와의 이야기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줍니다.

어느 날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한 아주머니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한 시골교회의 집사인데 직접 겪은 이상한 체험에 대해 듣게 됩니다.
어느 날 아주머니가 바쁘게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어떤 거지가 와서 구걸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는 귀찮아서 자기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대하며 내쫓았는데 돌아가는 거지의 뒷모습이 틀림없는 예수님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아주머니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허겁지겁 쌀을 한 대접 떠서 달려나가 보니 거지는 그새 어디론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옆집으로 또 옆집으로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집으로 돌아온 아주머니는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그때부터 아주머니의 눈에는 어떤 낯선 사람도 예수님으로 보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아주머니는 십 년을 하루같이 만나는 사람을 모두 예수님으로 알고 대접을 했다
이야기를 다하고 나서 아주머니는,
“세상 사람이 다 예수님으로 보이니까 참 좋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 드리고 싶어예” (책중에서)


안동 일직의 조그마한 오두막에서 개 2마리와 가끔씩 방안까지 놀러오곤 하던 생쥐와 함께 살던 선생은 이제 세상에 없습니다. 방 한 칸, 부엌 한 칸뿐인 그곳에서 아이들을 위해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를 엮어내었습니다. 친근하고 느릿한 목소리로 평화와 하느님의 섭리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들이, 새벽마다 선생님이 들려주던 교회 종소리처럼 세상에 낮게 낮게 울려 퍼지기를 바래봅니다.       

   





[책 속의 길] 59
김성원 / 회사원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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