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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원래 쓰다….

기사승인 2012.04.13  10: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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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창원 / 『커피는 원래 쓰다』(박우현 저 | 이스퀘어 | 2011.12)


# 프롤로그: 선거는 원래 쓰다

27대 0. 점수로 승부를 가르는 스포츠에서도 좀체 나오기 힘든 스코어다. 미심쩍으면 인터넷을 검색해 보시라. 1995년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회에서 우리가 태국에 이긴 점수가 27대 0이다. 태국에는 직업으로 하는 야구선수가 드물고 등록 선수가 수 백 명에 불과한 야구 불모지다. 이를테면 27대 0은 정상적인 스코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긴 팀이 27점을 얻을 때 진 팀이 한 점도 얻지 못하는 게임. 11일 실시된 19대 총선의 대구‧경북 선거게임 스코어가 그렇다. 대구 12개, 경북 15개의 선거구를 새누리당이 싹쓸이 했다. 예상했던 대로다. 남 보기에 부끄럽지만 색깔만 다를 뿐이지 다른 동네도 그렇지 않느냐고 앞뒤 싹 자르고 항변하면 그만이다. 싹쓸이 한 부끄러움에 쥐구멍 찾을 일 없듯 완패했다고 반성은 할지언정 낙담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선거이기 때문이다. ‘선거는 원래 쓰다.’

# 언젠가 세상은 우리가 될 것이다

‘선거는 원래 쓰다.’ 이 말을 인정한다면 커피를 마셔보라. 커피도 원래 그 맛이었다니. 그리고 어쩌다 들른 커피숍에 박우현이 주절주절 이야기한 커피 책을 발견한다면 망설이지 말고 책장을 펼쳐보라. 단순히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의 잡답은 아니다. 책속 군데군데 커피의 원래 맛인 쓴맛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고통과 아픔, 가난을 녹여서 말이다.

   
▲ 『커피는 원래 쓰다』(박우현 저 | 도서출판 이스퀘어 | 2011.12)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커피열매였단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 시음자는 고종이 아니라 정약용이라는 발칙한 상상을 한다. 다산(茶山)이라는 호를 괜히 붙인 게 아니라는 의미다. 정약용이 차에 대한 애정과 높은 안목을 가졌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으니 아니라고 말은 못하겠다. 정약용의 커피 시음 경로는 궁금하면 책에서 확인하면 된다.

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커피는 어떻게 사람들을 매료시켰는가? 애초 이슬람의 음료인 커피가 유럽으로 퍼지자 양조업자들이 ‘악마의 음료’라며 들고 일어섰다. 커피 때문에 술 판매 수익이 줄 것을 우려해서다. 그러나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를 맛본 게 화근이었다. 교황은 커피의 매력에 바로 빠졌고 이런 음식을 이교도에게만 먹일 수 없다며 커피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


그 사람들이 커피의 맛에 빠진 것까지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들이 돈벌이에 나서면서 나의 행복이 남의 불행으로 다가온다. 때를 만난 건 유럽이 식민지 제국을 건설하면서다. 인도, 인도네시아, 라틴아메리카 등의 식민지화는 필연적으로 엄청난 자원의 수탈을 동반한다. 그 땅에 이식한 커피도 마찬가지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커피의 불평등 수급구조의 역사는 이처럼 길고도 길다.

그렇다고 지금은 달라졌을까? 과거 제국들이 커피무역의 주도권을 쥐면서 내보인 수탈의 욕망은 현재 진행형이다. 신자유주의로 탈바꿈하여 여전히 커피 생산자들을 옥죄고 있다. 아프리카를 보자. 인류와 문명이 시작된 곳, 커피가 발견된 땅이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다. 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도 예외는 아니다. 커피를 생산하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대를 이은 가난으로 찌들어가고 있다.

1973년 네덜란드 출신의 프란스 신부. 그는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의 가난이 왜 해결되지 않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얼마 뒤 그는 커피재배 농가들과 연대하여 커피협동조합(UCIRI)을 설립해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한다. 거래를 통해 이들 스스로 사회경제적 자립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가능하도록 하자는 것. 바로 공정무역(fair trade) 이야기다.

우리의 삶은 별거냐. 그들과 나는 지속가능한 삶이 가능하도록 연결되어 있다. 공정무역 커피를 구입하는 것은 자선행위가 아닌 이유다. 어려움을 나누는 것은 나의 삶을 구하는 일이다. 커피의 재배역사를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가진 자들이 즐기는 쓴맛을 위해 커피 농부들의 인생은 쓴맛으로 점철되어 왔다. 누구에게나 쓴맛은 같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 에필로그: 커피는 원래 쓰다

1인당 한해 400잔이 넘는 커피를 마시는 나라. 한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커피공화국이다. 커피는 산지의 기후와 식생에 따라 다양한 맛과 향이 존재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원래 쓰다. 커피에 쓴맛이 없었다면 커피는 지금처럼 인류의 입맛을 사로잡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선거가 쓰지 않고 달기만 했다면 사람들은 금방 흥미를 잃고 지구상에서 없어졌을 것이다. 지역 따라 선거는 달콤하고 진한 향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선거는 원래 쓰다.

27대 0은 쓴맛인가, 단맛인가.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는 현재의 경제체제가 유지되기를 바랄수록 투표동기가 강하다고 말한다. 실상은 모르지만 대구의 강남이라 불린 수성구도 이번 선거에서 그 주장의 일단을 보여줬다. 반면에 세상과 떨어져 있거나 고달픈 이들의 숨은 표가 고개를 내밀다 말았다. 그들을 부르는 꿈과 희망의 소리가 약했던 탓이다.

올해 12월 19일 대구경북의 선거풍경을 미리 보자. 쓴 것이 약이 되면 이야기도 바뀐다.
'선거는 가끔 달다.' - 그래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 '커피는 원래 쓰다.'

   



[책 속의 길] 62
박창원 / 평화뉴스 객원기자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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