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바람과 '똑같은' 공공재인 토지 : 당연한 그러나 잊혀진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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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영 /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_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헨리 조지 지음 | 김윤상 옮김 | 경북대 출판부 | 2012.4)


‘내가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는 투로 시작하는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겸양의 관례적 표현이겠으나, 그럼 쓰지 말아야지, 이런 야박한 말이 입 주위를 맴돈다.  스스로 그런 말을 해야 할 때는 더 불편하다. 이 글의 시작도 그리 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마음이 많이 편치 않다. 가톨릭 사회교리에 대해 아주 약간의 귀동냥을 했을 뿐이고 헨리 조지가 누구인지도 잘 몰랐던 사람이 그가 교황 레오 13세의 노동 회칙을 반박한 글에 대한 평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땅'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니 그것이 ‘토지공개념’에 대한 서평을 쓸 자격으로 인정된다면 모를까... 이런 지경에 ‘아는 척’하면서 글을 쓰는 건 더더욱 말이 안되는 것 같아 아예 내놓고 ‘일반인’ 입장에서 이 글을 쓰고자 한다.(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헨리 조지는 생각보다 ‘유명한’ 사람이었다.^^ 헨리 조지와 토지단일세주의자들에 대한 전문서적, 논문들이 많이 있으니 적극적 관심을 가진 분들은 기억하시길!)

역자의 깔끔한 번역이 돋보이는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_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의 저자는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회개혁론자이다.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_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헨리 조지 지음, 김윤상 옮김 / 경북대 출판부, 2012.4)
노동 빈곤과 토지 정의_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헨리 조지 지음, 김윤상 옮김 / 경북대 출판부, 2012.4)
제목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회칙 『새로운 사태(자본과 노동에 관하여)』에 대한 반박문이다. 19세기 말, 당시 상황에서는 상당히 ‘진보적’이라 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던(예: 금지되어 있던 노동조합 결성 자유 지지) 이 회칙의 기본전제에 대해 헨리 조지는 아주 정중한 어조로, 그러나 단호한 반대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 핵심적 요지는 토지사유제를 문제 삼지 않고서는 근대적 노동(빈곤)문제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해결책도 마련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토지공유제를 근간으로 하는 헨리 조지의 주장은 보통사람이 듣기엔 일면 아주 과격하다. 부동산투기, 불로소득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아주 없지는 않았던 필자도 토지사유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 의심이나 회의를 했던 것 같지는 않다. 어떤 방식으로든 토지를 사유화해온 역사가 이미 오래인 상황에서 어쩔 수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토지사유제 자체를 원천적으로 부당한 것으로 여기지는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헐값에 산 땅을 토지개발사업이 진행될 때 팔아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배가 좀 아프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토지는 햇빛, 공기, 바람, 물과 ‘똑같은’ 공공재라는 분명한 주장 앞에서 솔직히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햇빛과 바람에 대해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일반적 입장 아닐까? 햇빛을 담아내는 설비를 만들어 태양광 에너지를 생산해 전기를 팔 수는 있겠지만, 그리고 전기 생산에 들어간 노동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햇빛 자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이 당연한 생각을 왜 토지에는 적용하지 않았을까? 햇빛, 공기, 바람, 물과 ‘똑같이’, 없던 것을 생산한 것도 아니고 생산할 수 있는 것도 아닌 토지를 아무런 노동 없이 ‘단지’ 소유하는 것만으로 부가가치를 (독)차지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 왜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것일까? 그 질문을 하게 된 것만으로도 헨리 조지를 만난 보람이 있다.

그러나 곧 이어서 필자 같은 ‘일반인’들은 토지공유제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회의하게 될 것이다. ‘토지공유제’! 말이야 좋지만 가능한 일인가? 짧은 시간 훑어보니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이미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헨리 조지를 비롯한 일단의 사람들이 지금 당장 모든 땅을 공유화하자는 주장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추론 가능하다. 우선 택지개발사업이나 도시재생사업 등에서 ‘공공토지임대제’를 확대해 가자는 주장, 토지 소유에 대한 중과세 주장 등은 ‘합리적’ 토대 위에서 토론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인 정책 주장이라 여겨진다. 기득권층의 상당한 반발이 있겠지만 말이다.

나아가 어떤 주장이 단번에 실현 가능한 문제인가를 판단하는 일과 어떤 주장의 전체적인 지향성의 옳음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좀 다른 차원으로 보아야할 것 같다. 전자가 어렵다고 해서 후자가 필요 없다는 결론이 자동적으로 내려지는 것은 아닐 테니까. 잘된 전체적인 설계도를 갖고 집을 짓는 것과 아닌 것에는 차이가 있을 것! 이 땅의 노동(빈곤)문제를 고민할 때 헨리 조지가 제안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다시 기억하자. 토지는 햇빛, 공기, 바람, 물과 ‘똑같은’ 공공재라는, 당연한 그러나 잊혀진 진실을!
 
 
 





[책 속의 길] 67
천선영 /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

* 일상에서 길어 올린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본인이 쓴 글이 읽는 이를 따분하게 하지는 않았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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