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추태, 조중동엔 한 줄도 안 실렸다

김종철·언론인 전 연합뉴스 사장
  • 입력 2012.06.1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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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철 칼럼] 6·10 항쟁 25주년, 다시 언론 자유를 외쳐야 하는 이유


1987년 초여름의 그날처럼 무더운 6월 10일, 전국 여러 곳에서는 6월 항쟁 25주년을 기념하는 모임들이 열렸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흥겨운 기념잔치가 벌어지고 있던 오후 4시, 3백여 명의 사람들이 광화문 네거리의 동아일보사 앞으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인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언소주)’이 주관하는 ‘제1회 언론소비자 올레’가 막을 올린 것이었다.

일행이 동아일보사 정문에 이르자 사회자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의 성유보 위원에게 동아일보사의 행적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친일로 얼룩진 동아일보의 과거와 1974년 10월 24일에 시작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이야기하면서, 동아일보사 경영진이 박정희 정권과 야합해서 ‘민중의 격려광고’를 배신하고 언론인 113명을 강제해직한 경위를 설명했다. 올레 참가자들은 격앙된 목소리로 ‘동아일보 폐간하라’를 외쳤다.

20대 젊은이들부터 일흔이 넘은 노인까지, 그리고 직장인과 주부들이 다양하게 참가한 올레 대열은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 조선일보사 앞에 이르렀다. 신문사를 가리고 있는 코리아나호텔 정문에서 ‘수구보수세력의 대변지’ 조선일보의 역사와 현재 행태를 간략히 들은 올레꾼들은 ‘조선일보 폐간하라’를 열 번이 넘게 외쳤다.

‘자유언론실천-1974, 10, 24’라는 글씨가 찍힌 주황색 수건을 목에 두른 올레 참가자들은 중구 정동의 경향신문사 앞으로 가서, 곤경을 무릅쓰고 한겨레와 함께 진보언론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경향을 격려한 뒤 서소문의 중앙일보사로 옮겨갔다. 동아투위 문영희 위원이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주도로 창간된 중앙일보의 역사를 간략히 설명했다. 1960년대 중반의 ‘삼성 밀수사건’을 옹호한 일부터 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을 노골적으로 지지한 이래 지금까지 ‘찌라시’ 소리를 듣게 된 내력을 들은 올레꾼들은 주먹을 흔들며 ‘중앙일보 폐간하라’고 합창했다.

언소주는 왜 6월 항쟁 25주년 기념일에 38년 전 동아일보사의 젊은 기자들이 발표한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주제로 조·중·동 폐간을 주장하는 집회와 시위를 진행했을까? 언소주의 양재일 대표는 그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한 보수언론은 6월 항쟁 이래 25년 동안 민주화에 제동을 걸면서 1%의 특권층 편에 서서 기득권을 지키고 확대하는 데 앞장서왔습니다.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그들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6월 항쟁의 빛나는 성과를 땅에 묻고 독재자의 딸이 국민 위에 군림하도록 하면서 언론권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신문들은 역사의 발전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 반드시 폐간되어야 합니다.”

전두환씨가지난 8일 ‘육사 발전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행사’에서 이순자씨와 손녀를 데리고 참석, 생도들의 사열을 받으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JTBC
전두환씨가지난 8일 ‘육사 발전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행사’에서 이순자씨와 손녀를 데리고 참석, 생도들의 사열을 받으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JTBC

6월 항쟁 25주년 기념식이 끝난 바로 이튿날인 11일 아침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일부 신문에는 전두환이 육군사관학교에서 사열을 받았다는 기사가 크게 실렸다. 그가 지난 8일 ‘육사 발전기금 200억 원 달성 기념행사’에 아내와 어린 손녀를 데리고 참석해서 생도들의 사열을 받으며 거수경례를 하는 사진은 본 이들은 자기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그는 2006년 4월 28일에도 ‘육사 발전기금 재단 창립 10주년 및 100억 원 달성 축하’ 행사에 참여해서 사열을 받고 생도들과 간담회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전두환과 ‘화음’을 맞추려는 것인가? 노태우가 ‘사돈인 전 신동방생명그룹 회장 신명수에게 비자금 420억 원을 맡겼다’면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진정서를 낸 사실이 10일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의 발표로 드러났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누구인가?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킨 뒤 1980년 5월 광주 항쟁을 총칼로 ‘진압’하면서 무고한 시민들을 살육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1심에서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던 ‘신군부’의 우두머리들 아닌가? 전두환은 2심과 상고심에서 무기형으로 감형되었으나 ‘5공 비리’와 관련된 추징금 2,205억 원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그는 그 가운데 532억 원만 내고 ‘전 재산이 29만 원뿐’이라면서 지갑을 꺼내 보여 사람들의 실소를 산 바 있다. 그런 전두환이 ‘육사 발전’을 위해 1000만 원을 선뜻 냈다고 한다. 노태우는 ‘내란 음모 및 군사반란’ 재판에서 확정된 추징금 2,629억 원 가운데 2,286억 원을 내고 343억 원이 ‘외상’으로 남아 있었는데 그보다 큰 액수를 사돈에게 맡겨두었다는 것이다.

6월 11일자 조선·중앙·동아일보에는 ‘육사에서 사열 받으며 거수경례 하는’ 전두환에 관한 기사가 없다. 이미 이틀 전 한 인터넷 매체에 대서특필되었고 11일 아침 신문에도 크게 오른 그 사건을 조·중·동이 몰랐을 리 없다. ‘내란과 반란의 수괴’로 1심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자가 장교를 육성하는 학교에 가서 사열을 받은 사건을 보도하지 않는 신문들은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가?

‘새노조’가 어렵사리 파업을 접고 회사로 복귀한 것이 며칠 전인데, KBS는 공영방송과는 정반대 길로 치닫고 있다. ‘전두환의 육사 사열’을 메인뉴스가 외면한 것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살인마가 사열을 받느냐’ ‘육사 생도들에게 쿠데타 교육을 시킨 것’이라는 등의 비난이 들끓고 있다.

나는 조·중·동과 KBS의 행태를 보면서 언소주의 올레꾼들이 외치던 구호를 다시 떠올린다.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자진 폐간하라.” 시청자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전달하지 않은 KBS 역시 그 함성을 강 건너 불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미디어오늘] 2012-06-11  (미디어오늘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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