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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회개는 찾아볼 수 없다. 지금도

기사승인 2012.06.15  11: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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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용식 / 『26년』(강풀 저 | 문학세계사 | 2007.05)


 며칠 전 우연히 웹 사이트에서 ‘26년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호기심에 사이트를 살펴보니 다름 아닌 강풀 원작의 웹툰 ‘26년’을 영화화 하는데 필요한 제작비를 모으는 것이었다. 지난 달 31일 ‘26년 크라우드 펀딩’은 마감됐다. 당초 목표액인 10억 원은 채우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성원에 힘입어 상당금액이 모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이 기억 속에서 가물거릴 무렵인 14일 아침,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순위에는 ‘26년 영화제작 확정’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고, 내 기억은 몇 년 전 이 만화책의 첫 장을 넘길 때로 잠시 돌아갔다. (웹툰이었지만 만화책은 엎드려서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면서 읽는 것이 제 맛이라는 생각에 서점에서 단행본을 구입해 읽었다)

 
 
▲ 『26년』(강풀 저 | 문학세계사 | 2007.05)

 확실히 강풀의 상상력은 도발적이었고, 만화책은 읽는 사람에게 “너도 이렇게 하고 싶었지?”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졌다. 누구나 한번쯤 ‘그’에게 왜 그랬는지를 물어보고 싶고, 따귀라도 한 대 후려 갈겨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상상은 언제나 즐거운 것 같다.
  
 ‘26년’의 줄거리는 간단했다. 1980년 5.18 당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26년이 흐른 뒤 당시 가해자를 찾아가 단죄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단죄를 하러 가는 것 까지는 만화적 상상력이 동원돼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지만, 단죄하는 단순한 사실은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단죄하지 못한 것이다. 작가가 만약 ‘그’를 단죄해버렸다면? 만화의 카타르시스는 반감됐을 것이고, 작품은 지금과 같은 갈채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독자들에게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그를 단죄하러가는 과정과 피해자들의 고통을 극대화시켜 준 것이다.

더 이상의 줄거리는 생략하고 싶다. 상세한 줄거리를 알고 만화책을 보면 그 재미는 반감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그런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이 만화에서 주목했던 점 중 하나는 피해자를 광주시민으로 한정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군인들에게도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그’를 제외한 우리 모두라는 것이고, 그 고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만화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또 비극의 5.18 역사를 만들었던 ‘그’에게 가슴이 후련하게 물어보고 싶은 것을 만화 속 주인공들이 대신 질문하게 된다. 사실 만화의 여러 에피소드와 재미는 계속 이어지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그’에게 그렇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지는 장면은 책장을 넘기는 손끝을 떨리게 했다.

 ‘그’는 피해자들이 던진 질문에 담담하고, 차분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리고 심지어 웃음을 짓기도 했다. 그가 대답한 것은 1989년 청문회 그대로였다. 하나도 바뀌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그’의 현실은 법적으로 처벌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서 어떠한 책임도 이제는 없다고 할 수 있지만, 진정성있는 ‘그’의 회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만화책의 제목은 5․18이 발생한 26년 후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나 6년이 더 흐른 지금, 그의 모습은 30년 전이나 6년 전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몇 년 전 읽었던 ‘26년’이라는 만화의 아득한 기억 속에서 빠져 나왔을 때 포털 사이트에는 ‘그’에 대한 뉴스가 몇 개 있었다. 사관학교 사열, 국립묘지 안장 등 자신의 처지에 맞지 않는 몇 가지 행동에 대한 뉴스였다. 그러나 필자는 어느 초등학생이 쓴 시 한편이 더 눈에 들어왔다.

29만원 할아버지

                              서울연희초등학교 5학년 유00

우리 동네 사시는
29만원 할아버지
아빠랑 듣는 라디오에서는 맨날 29만원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그렇게 큰 집에 사세요?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셨으면
할아버지네 집 앞은
허락을 안 받으면 못 지나다녀요?
해마다 5월 18일이 되면
우리 동네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것도 할아버지 때문인가요?

호기심 많은 제가 그냥 있을 수 있나요?
인터넷을 샅샅이 뒤졌죠
너무나 끔찍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어요
왜 군인들에게 시민을 향해
총을 쏘라고 명령하셨어요?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죽었는지 아세요?
할아버지가 벌 받을까 두려워
그 많은 경찰아저씨들이 지켜주는 것 인가요?

29만원 할아버지!
얼른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비세요
물론 그런다고 안타깝게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지는 않아요
하지만 유족들에게 더 이상
마음의 상처를 주면 안 되잖아요
제 말이 틀렸나요?
대답해 보세요!
29만원 할아버지!


 
 





[책 속의 길] 69
최용식 /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대외홍보팀. 전 대구일보 기자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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