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하는 나 자신을 두려워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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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욱 /『의심에 대한 옹호』( 피터 버거, 안톤 지더벨트 지음 |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10 )


얼마 전 <책 속의 길> 코너에 들어 갈 서평을 부탁 받았을 때, 평소 책을 멀리하던 나 자신을 돌이켜보고 적절하지 못한 사람이 선택받게 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쩌지 못해 부탁을 수락하고는 며칠을 후회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약속인지라 주워 담을 수 없어 그동안 책장에 고이 모셔진 몇 권의 책들 중에 두께가 가장 얇은 책을 꺼내들었다.

좋지 않은 머리에 오랫동안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 두꺼운 기본 6법서를 수차례 반복적으로 읽어본 경험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아 변호사가 되고 나서 부터는 독서를 멀리하게 되었고, 어쩌다가 독서를 할 기회가 되더라도 완독을 한 경험이 전무하여 이번 기회에 책을 다시 꺼내어 읽어보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또 다른 도전이 되었고 한가로이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으면서 사색을 하는 즐거움을 깨닫게 되는 경험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혹시 나와 같은 경험이나 생각을 했던 독자가 있다면 나의 경우와 같은 반강제적인 책을 읽고 글쓰기의 기회가 없더라도 어떤 책이든지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만으로 그 책 속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있어서도 어렴풋한 길이 보일지 모를 일이다.
 
『의심에 대한 옹호』(믿음의 폭력성을 치유하기 위한 의심의 계보학)
『의심에 대한 옹호』(믿음의 폭력성을 치유하기 위한 의심의 계보학)
소개하는 책은 약 240페이지 분량의 요즘의 사회과학 서적치고는 크지 않는 분량이다. 가방 속에 넣고 다녀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은 - 부담이 없어서인지 때로는 가방 속에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는 - 두께이다. 하지만 나는 그 분량에 속고 말았는데 이 책을 혹시나 읽을지 모를 잠재적인 독자에게는 미리 알려두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쉽게 쉽게 읽혀지지 않아 책장이 좀처럼 넘어가지 않으니 주의하길 바란다.

사회과학 분야의 서적이 그러하듯이 저자들은 책의 상당 분량을 용어를 정의하는데 할애하고 있어 상당한 지루함을 준다. 또한 책이 보스턴 대학교 문화종교국제연구소의 연구 프로젝트에서 그 구상이 시작된 것이다 보니 종교학적인 시각에서 사회문제를 보고 있어 종교학, 철학, 사회학 기본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순간순간에 있어 괴로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찬찬히 읽다보면 상대주의, 근본주의와 같은 일상생활에서 정확한 의미를 잊은 채 쓰이는 용어들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므로 책장을 넘기는 괴로움은 이내 달콤한 지식의 열매로 되돌아 오니 인내하며 읽어보시길 권한다.

이 책은 ‘공연한 의심’에서 비롯되는 ‘상대주의’와 ‘맹목적인 믿음’에서 비롯되는 근본주의를 통해 기본적 가치 가령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인간이 구성하는 사회에서의 진리가 훼손되지 않기 위해서는 건전한 의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며, 건전한 의심이 되기 위해서는 의심의 한계를 설정하여 중용의 윤리사상에 따라야 함을 역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직업이 변호사이다보니 본질적으로 사건․사회문제를 바라봄에 있어 의심을 많이 하는 편이다. 의심이 많은 나 같은 사람은 삶을 살아가는데 피곤한 것이 많아지게 된다.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떤 문제를 결정함에 있어서 쉽게 결단을 내리면 자신감이 넘쳐 보이고 행동에 있어서 확신이 있으므로 추진력이 있어 보인다. 반면 의심과 씨름하는 나 같은 사람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한참을 숙고하여 내린 결정에 따른 행동도 조심스러워져 결국은 일의 추진력이 약하게 된다.

그러한 나의 모습이 참 못마땅하였는데, 이 책을 읽고 그러한 나 자신의 모습에 조금은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저자들이 이야기해주는 것이 바로 나 같은 의심을 옹호하는 내용이니 말이다.

요즘 신문의 사회면을 보고 있으면 사회가 위험한 상태로 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극악무도한 범죄에 대해 경악을 하고, 그러한 범죄를 저지른 자에 대해 사회적 매장을 넘어 법과 제도가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일부의견이 쉽사리 사회구성원의 일치된 의견인 냥 포장되어 법과 제도가 국회를 통해 고쳐지고 있다.

법과 제도라는 것은 상당한 시간을 두고 다양한 의견의 교환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만들어져야 하는 것임에도, 지금의 한국사회의 법과 제도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기회조차 없이 신속하게 변화해가고 있어 균형감각을 잃은 채 편향적으로 흘러가다 보면 결국 기본적인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거나, 한 차례 변화를 거친 법과 제도가 또 다른 편향적인 견해에 의해 바뀌어 법과 제도의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를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책 속의 길] 72
신성욱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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