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사태와 지역언론의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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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권 독립과 정수장학회...'언론자유.지역언론' 화두는 어디에?


삶의 모습 즉 문화는 매우 역동적으로 변합니다. 자본과 권력이 1%인 자신에게 유리한 문화현상을 다수의 시민이 즐기는 문화인 것처럼 왜곡하기도 합니다. 반면에 ‘개념찬 시민들’이 ‘이건 아닌데’라며 많은 시간과 노력, 고민을 거쳐 언론과 자본이 만들어 놓은 세상을 탈출하기도 하는데요. 마치 트루먼쇼의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처럼 말입니다. 가치관이 서로 다른 문화가 경쟁하면서 발전하면 좋을 텐데, 최근 후자쪽의 힘과 영향이 너무 약해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1. 미각스캔들, ‘얼짱 과일의 진실’

얼짱, 식스팩, 다이어트, 성형 등등 ‘외모지상주의’가 판치는 우리 사회 문화는 시장에서 과일을 고를 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즉 “‘얼짱 과일’이 몸값은 비싸지만, 그 품질과 내용물은 당연히 좋을 것”이라고 자본과 언론이 합작해서 만들어 놓은 상황을 별 문제의식 없이 수용하게 되는 것이죠.

JTBC 미각스캔들
JTBC 미각스캔들

특정시기가 되면 대형마트 또는 백화점 과일 코너에는 크고 싱싱하고 잘생긴 과일들이 전시되고, 예쁘장하게 생긴 미모의 여성들이 해당 상품을 들고 미소 짓고, 언론사 카메라는 그 장면을 화면에 담아 우리네 안방으로 무차별적으로 쏘거나, 신문지면에 눈에 띄게 편집합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대부분 시민들은 과일을 고르는 기준이 “크고, 예쁘고, 색감이 좋고, 향을 맡아보고”등등 이유를 댑니다.

이런 ‘얼짱 과일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편‘이 지난 12일 JTBC <미각스캔들>에서 방송되었습니다. <미각스캔들> 제작진의 취재 결과 농가에서는 배와 포도 등의 크기를 키우기 위해 지베렐린이라는 성장촉진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성장촉진제는 “과일을 더욱 크게, 모양은 균일하게, 심지어 포도의 씨까지 없앨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약품을 사용한 과일은 과육이 쉽게 무르고, 저장에도 문제가 있어서 결국 상품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추석 차례상 가장 앞부분에 올려진 ‘폼’나는 과일 대부분이 태양과 비, 땅과 바람 등의 자연 속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약품에 의해 ‘강제로, 억지로 성장’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폼’은 나지만, 맛과 품질은 떨어진다는 점. ‘얼짱 과일’에 대한 편견 때문에, 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과일농사를 짓는 농가는 울상을 짓는 다는 점 등

#2. 가족 수는 주는데, 왜 냉장고는 커지나?

우리네 가족 구조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그 수는 줄고 있는데, 사용하는 가전제품의 용량은 자꾸만 커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상하죠? 가전제품 구매 기준이 자신의 생활패턴과 가족 수, 전기요금 등 보다는 ‘폼나게 큰’ 제품을 장식용으로 선택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더군다나 대기업 가전제품 업체가 냉장고 ‘용량 경쟁’을 벌이게 되면서 ‘폼나게 큰 = 좋은’이라는 편견에 빠지게 되는데요. 언론과 자본이 만들어 둔 이 문화는 결국 시민들의 소비패턴을 바꾸게 되고, 골목상권을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한겨레> 2012년 7월 17일자 17면(경제)
<한겨레> 2012년 7월 17일자 17면(경제)

최근 <한겨레신문>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LG와 삼성이 900ℓ 대형 냉장고 경쟁’을 한다고 합니다. 이 기사에서는 가전제품업체가 ‘용량경쟁’에 뛰어든 이유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질보다 양의 경쟁으로 보이지만 냉장고 용량은 곧 기술을 의미한다”라며 “텔레비전은 화질을 보고 비교할 수 있지만 냉장고는 겉보기로 기술력을 알 수 있는 게 없다, 냉장고 용량을 늘리려면 고효율 단열재 기술과 수납공간 설계 최적화 등 첨단 기술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용량 경쟁은 곧 기술 경쟁”이라는 삼성전자 측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가전제품 2대 산맥이 ‘용량’을 기준으로 끊임없이 신제품을 출시하고,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자극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전업체의 시각이 우리의 소비패턴을 바꾸고 있습니다. ‘용량이 큰’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시민들이 대형마트를 활용하고, 그 대형마트는 대부분 대기업 자본이 운영하고 있고, 과소비를 통해 냉장고를 꽉꽉 채웠던 각종 음식재료들은 유통기한이 지나 사용되지 않는 채 버려지게 됩니다. 결국 소비는 느는데 동네 골목상권은 죽고, 먹어서 몸에 채우는 것보다 안 먹고 버리는 것이 많아지는 전형적인 ‘낭비’문화, 동네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상황을 만들게 되는거죠.

#3. 부산일보 사태, 왜 자꾸만 축소되고 잊혀지나?

지난주 금요일(10일), 전국에 있는 언론단체 상근활동가들이 <부산일보>노조를 방문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편집권 독립과, 언론다운 언론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이정호 편집국장님과는 회사 앞에 마련된 열린 편집실에서, 선 채로 30여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7월 11일, 회사 건물 출입하는 것만으로도 벌금 100만원을 내야 하는 법원 판결에 따라 이 국장님은 회사 앞 입구에 <열린편집실>을 만들고 거기서 ‘업무’를 보고 계시더군요.

<한겨레> 2012년 8월 8일자 14A면(지역)
<한겨레> 2012년 8월 8일자 14A면(지역)

화장실에 가는 것도 허가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24년째 다닌 회사에서 편집권 독립을 위해 싸운다는 이유만으로 내린 회사 및 법원에서 이정호 편집국장에게 내린 조치는 가혹했습니다.

<부산일보>사태는 지난해 11월 사장선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노사간의 시각차이에서 출발해, 현재는 편집권 독립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부산일보> 주식 100%를 가진 정수장학회를 사회 환원을 둘러싼 <부산일보> 노사갈등은 계속되고 있고, 사측에서는 재단측 입장을 대변하며 자신들의 최대무기인 인사권을 남용. 정수장학회 문제를 파헤치려는 특별취재팀원을 각각 다른 부서로 발령을 내고, 대상자들은 ‘인사권을 거부’하는 문제가 좀 더 복잡해지고 있는데요.

부산일보 '열린 편집실' / 사진. 허미옥
부산일보 '열린 편집실' / 사진. 허미옥

회사 사장선임 방식 변경은 <부산일보> 내부의 문제였지만, 현재는 언론이 목숨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편집권 독립’, 집권 여당 대선 유력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책임론 문제 등 사안이 꽤나 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부산일보>를 손쉽게 요리해보겠다는 일부 정치권-사측-정수장학재단-박정희 정권 시절 권력자들은 똘똘 뭉쳐서 <부산일보>노조의 힘을 무력화시키려고 갖은 수단을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편집권 독립’이라는 저널리즘 최대의 화두로 뭉쳐야 할 ‘정의로운’세력들의 행보는 너무나 답답합니다.

<경남도민일보> 2012년 8월 9일자 7면(문화)
<경남도민일보> 2012년 8월 9일자 7면(문화)
특히 ‘지역’, ‘지방분권’ 등등 지역의 중요성을 얘기했던 또 다른 지역신문, 특히 영남권 신문에서는 <부산일보>의 편집권 독립 투쟁에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 부산일보>사태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여론화 하는 곳은 영남권 언론으로는 <경남도민일보>뿐이며, 그 외 전국일간지 중에는 한겨레, 경향 등 진보적 매체, 그리고 시사인, 한겨레21 등과 인터넷 언론 등이 모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부산일보> 사태는 부산지역 신문사의 ‘노사갈등’ 이라기 보다는, 집권여당 대선 유력 후보와 그 후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정수장학회, 비수도권 지역에서 가장 시장성과 힘이 있는 언론사의 편집자율성을 해치려는 수도권 권력집단들의 치밀한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힘을 <부산일보>노동조합이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개념찬 깨어있는 시민들’이 이 사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여론으로 만들어야만 ‘팽팽한’ 싸움이 될 수도 있을텐데요.


이 즈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언론사들이 파업을 통해 그동안 외쳐왔던 ‘언론자유, 편집권 독립’, ‘지역언론 생존’은 광의의 개념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들의 언론사, 자신의 신문사가 속한 ‘지역’만을 외쳐온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듭니다.

이런 외면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수도권과 건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가치 즉 ‘지방분권’, ‘편집권 독립’, ‘지역언론 활성화’이라는 화두를 얻긴 힘들 것 같습니다. 수도권 논리와 경쟁할 수 있는 지역여론은 이렇게 그 실체가 없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평화뉴스 미디어창 196]
허미옥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pressang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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