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과거사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박 후보는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헌법가치 훼손"을 인정하고,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혁당' 사건 피해자와 관련 단체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며 박 후보의 '진정성'에 의문을 감추지 못했다.
박 후보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치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은 과거에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야 할 민주주의 가치"라며 "그런 점에서 5.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또, "이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근혜 "노동자 희생, 인권침해...국민대통합위 설치"
특히, 박 후보는 "아버지한테는 무엇보다도 경제발전과 국가안보가 가장 시급한 국가 목표였다"며 "그 과정에서 기적적인 성장의 역사 뒤편에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고통받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고, 북한에 맞서 안보를 지켰던 이면에 공권력에 의해 인권을 침해 받았던 일도 있었다"고 과오를 인정했다. 이어, "지금 당장은 힘드시겠지만, 과거의 아픔을 가진 분들을 만나고 더 이상의 상처로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앞으로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국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이 날 기자회견 앞 부분에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는다"며 "하지만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상, 이 부분에 대해 보다 냉정하고 국민과 공감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또, 회견 뒷 부분에서는 "국민들께서 저에게 진정 원하시는 게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을 원하시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저도 대통령을 아버지로 두었기에 역사의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모두를 흉탄에 보내드리고 개인적으로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했다"고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
그러나, 인혁당 피해자와 관련 단체는 박 후보의 '진정성'에 의문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인혁당 사건으로 고문을 받고 옥고를 겪은 강창덕(85) 선생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며 "어디까지 진정성을 믿어야 할 지 확신이 안선다"고 말했다. "인혁당 피해자의 한 사람으로서 박 후보가 뒤늦게라도 사과한 건 다행이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도 다른 말을 하다 갑자기 이러니..."라고 했다. 박 후보가 지난 10일 인혁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라는 발언을 해 피해자와 유가족의 반발을 샀기 때문이다.
강 선생은 당시 평화뉴스와 인터뷰에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망언", "자신이 독재자의 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 "반역사적이고 반민주적인 박근혜는 대통령의 자격이 손톱만치도 없다"고 격노하기도 했다.
강 선생은 지난 1974년 이른 바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으로 구속돼 모진 고문과 함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2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할 때까지 8년8개월을 복역했으나, 2006년 국무총리실 소속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았고, 2007년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재심에서 '인혁당 무죄'가 선고되면서 오랜 멍에를 벗었다.
"선거용 아닌가?", "헌법가치 훼손이면 영남대.정수장학회 손 떼야"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함종호 부이사장도 박 후보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함 부이사장은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이 아직까지 구체성을 가지고 나타난 게 없다"며 "그래서 선거용이 아닌가 하는, 사과의 진정성이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또, "박 후보가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했으니 좀 더 지켜봐야겠다. 어떻게 행동하는지"라고 덧붙였다.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김두현 사무처장은 "부족하다"고 박 후보의 입장을 평가했다. 김 처장은 "박 후보가 여전히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식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옹호하고 있다"며 "정확한 사과는 아니라고 본다. 부족하다"고 말했다. 또, "박 후보가 5.16이나 유신에 대해 정말 '헌법가치 훼손'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시의 인권피해에 대한 진실규명과 피해보상에 적극 나서는 것은 물론, 정수장학회나 영남대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지금 진행중인 각종 박정희 기념사업도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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