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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버지 무덤에 침뱉으라 했나… 상식 회복 바라는 것"

기사승인 2012.09.24  12:4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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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분석] 박근혜 사과했지만 독재 불가피성 강조, 회견문만 읽고 들어가 불편함 노출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과거사 인식 사과는 기존 발언과 비교해 보면 크게 전향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역사에 맡겨야 한다’는 기존 주장과는 달리 5·16이나 유신, 인혁당 사건 등에 대해 “헌법 가치가 훼손된 사건”이란 점을 분명히 했으며, 관련 피해자들에게도 ‘유감’이라는 간접적 표현에서 “사과”라는 직접적인 표현을 썼다.

따라서 이날 박 후보의 발언에 대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캠프 우상호 공보단장과 정성호 대변인은 공식적으로 환영입장을 밝혔다. 우 단장은 “늦었지만 변화된 인식을 보여준 점은 평가할만하다. 환영한다”라고 말했고 정 대변인은 “만시지탄이기는 하나, 기존의 입장에서 진전된, 국민의 요구를 반영한 내용으로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인 유인태 민주통합당 의원도 “지금까지 항상 유신에 대해서는 잘 했다고만 말해왔다”며 “지금까지 했던 발언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이날 왜 기자회견을 열어 과거 문제에 대해 사과했을까? 언론들은 과거사 문제에 발목이 잡힌 박 후보가 직접 이 문제를 돌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물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도 밀리는 등 여론 동향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박 후보는 지난 7월 당내 경선 당시 5·16에 대해 “불기피한 최선의 선택”이라 말해 한 차례 지지율이 휘청했고, 지난 10일 라디오 방송에서 “인혁당 판결은 두 개”라고 말해 또 한차례 지지율이 휘청거렸다. 이 문제를 털고 가지 못하면 결국 대선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당내 갈등과 혼란도 박 후보를 직접 움직이게 한 원인으로 보인다. 비박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당 내부에서도 박 후보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 전환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고, 당 대변인은 인혁당 유족에 사과했다가 물러나기까지 했다.
    
 
 
▲ 24일 오전 9시 박근혜 후보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기자회견장에서 과거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때문에 이날 기자회견은 어떤 진정성 보다는 억지로 끌려나왔다는 인상을 감추기 어렵다. 박 후보 본인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불편함을 그대로 노출했다. 박 후보가 “이번 대선이 미래비전과 민생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장이 되어야 하는데, 과거사 논쟁으로 사회적인 논란과 갈등이 지속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많은 고뇌의 시간을 가졌다”라고 말한 대목은 과거사 문제가 이슈가 되는 것에 대한 불편한 심정으로 읽힌다.  박 후보는 기자회견 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곧바로 회견장을 빠져나가기도 했다.

박 후보가 여전히 박정희 정권 독재에 대한 불가피성을 강조했다는 점도 이날 기자회견의 성격을 의심케 한다.  “60~70년대 우리나라는 보릿고개라는 절대 빈곤과 북한의 무력위협에 늘 고통을 받고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는 무엇보다도 경제발전과 국가안보가 가장 시급한 국가 목표였다”, “5.16 이후 아버지께서는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어야 한다’고 하셨고, 유신시대에 대해서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까지 하셨다”고 말한 대목이 그렇다.

딸로서 감정에 호소한 점도 마찬가지다. 이번 기자회견이 본인에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강조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녀가 부모를 평가한다는 것, 더구나 공개적으로 과오를 지적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아시리라 믿는다”, “국민들께서 저에게 진정 원하시는 게 딸인 제가 아버지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을 원하시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저도 대통령을 아버지로 두었기에 역사의 소용돌이를 피해갈 수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모두를 흉탄에 보내드리고, 개인적으로 절망의 바닥까지 내려가기도 했다”라는 대목이 그렇다.

이를 감안했을 때 이날 박근혜 후보의 사과를 ‘화끈한 사과’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예전에 비해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이날 기자회견문 만으로 여전히 박 후보에게 박정희 독재는 불가피함을 띄고 있었고, 본인은 이미 딸로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대가를 치른 일이었다. 다만 불가피함 속에서 빚어진 잘못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다.

민주당 정성호 대변인은 이에 대해 “국민들은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의 무덤에 침을 뱉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며 “일반적인 상식과 이성의 회복을 바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박 후보가 말하는 과거사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현재사”라고 강조했다.

물론 향후 박근혜 후보의 행보에 따라 과거사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 박 후보는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저의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당장은 힘드시겠지만, 과거의 아픔을 가진 분들을 만나고 더 이상의 상처로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앞으로 국민대통합위원회를 설치해서,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국민들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기자회견을 마친 박근혜 후보가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여의도 새누리당사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향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본인이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다. 이것이 앞으로 유신시대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 명예회복, 보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을지 주목된다. 우상호 공보단장은 “생각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생각의 진정성, 생각 변화의 진정성을 보여주려면 진상규명, 명예회복이 매우 필요하다”며 “필요하다면 그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국가적 사과까지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문재인 후보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정성호 대변인도 “박 후보가 제안한 국민대통합위원회는 유신독재가 빚어낸 오늘의 잔재를 일소하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며 “민주통합당은 유신헌법 40주년을 맞아 국회차원의 무효화 결의안을 제안하며, 박 후보의 사과가 진정성이 있는 것이라면 적극 협력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신시대 남민전 사건에 연루돼 프랑스로 망명했던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는 “수세와 위기에 몰리니까 사과를 한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박근혜 후보가 정수장학회 문제 등에 전향적 모습을 보여주어야 좀 더 진정성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진 부산일보 노조위원장은 “발언은 진일보했지만 말로만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진정성이 없다”라며 “진정성을 내보이려면 박 후보의 친익천과 측근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정수장학회나 영남학원, 육영재단과 같은 공익법인을 환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말은 좀 달라졌지만 구체적 행동이 나와야 한다”며 “발표문만 읽고 들어가 버린 걸 보면 더 이상 얘기하기 싫다는 것 같다. 통합위원회를 만들기 전에 할 수 있는 구체적 조치들이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 2012-09-24  (미디어오늘 = 평화뉴스 제휴)

미디어오늘 정상근 정철운 기자 dal@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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