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언론의 '안철수 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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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매일> 닮은 꼴 '사설' / 신공항, 박근혜 부담 덜기?


대선 일정이 아직 60여일 남았는데 벌써 유권자들의 혼을 빼놓으려는 흑색선전 조짐이 예사롭지 않다. 새누리당 모 의원이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빌미로 터뜨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발언 의혹’은 대선 때면 으레 등장하는 흑색선전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대선일정을 향해 달리는 보수언론들의 행보다. 언론이 다루면 뉴스가 되고 다루지 않으면 중대한 일도 아무 일도 없던 것이 돼버리는 언론의 최면 속성을 악용한 망국적 언론관행이 판을 치고 있다. 조선일보와 우리 대구지역에서 발행되는 매일신문이 사설을 빙자해 연출하는 정치는 ‘그것도 언론이냐’는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타구(唾具) 신세가 되고 있다.

소수 일본 지식인들의 성명서 한 장?

조선일보의 사설 「소수 日 지식인들이 右傾化 일본 바꿀 수 있나」(2012. 9. 29. A31, 오피니언)은 작지만 진실한, 그래서 힘 있는 깨어 있는 소수의 목소리를 비웃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사설이다. 눈길 끄는 대목을 발췌하면 이렇다.

<조선일보> 2012년 9월 29일자 사설
<조선일보> 2012년 9월 29일자 사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와 '평화헌법' 개정 반대 소신을 밝혀온 모토시마 히토시 전(前) 나가사키 시장 등 일본 지식인․시민 1270명과 시민단체 ‘허용하지 말라! 헌법 개악(改惡) 시민연락회’가 28일 독도와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분쟁에 대해 일본의 자성(自省)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일본은 한국·중국이 가장 약하고 외교적 ‘자기주장을 할 수 없을 때 독도와 센카쿠 열도를 편입했다’며 ‘일본인은 독도가 한국 국민에게 침략과 식민지 지배의 시작이고 상징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정부가 일본 극우주의자들의 여론도발을 도약대로 삼아 독도 등을 자국영토로 만들려 국제법을 내세우며 영토분쟁화 정책으로 치닫는 데 대해 일본 내 양심세력들이 일본 정부에 대해 자성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한 대목이다. 그런데 이들 깨어 있는 양심세력들의 행동에 대한 조선일보의 다음과 같은 인식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소수 일본 지식인들이 낸 성명서 한 장으로 우경화(右傾化)의 길로 치닫고 있는 일본 전체의 진로가 바뀔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그 논거로 조선일보는 이들 양심세력들의 호소와 달리 ‘일본의 여론은 요즘 이런 자민당이 민주당의 2배 수준인 37% 지지를 얻을 만큼 한쪽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 전체가 침략주의, 팽창주의로 치닫는다 해도 틀린 것은 틀렸다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그런 행동에 나선 양심세력의 호소를 ‘성명서 한 장’ 정도로 가볍게 무시하는 것이 언론이 취할 정도일까? 조선일보의 사설 다음 대목을 보자.

일본은 바깥세상의 분위기를 알았던 일부 지식인들이 반대했지만 중일전쟁에 이어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국민과 나라를 함께 비극으로 몰아넣었던 나라다. '깨어있는 소수(少數)'가 내는 자성 목소리가 일본을 깨울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깨어 있는 소수, 당장 효과 못내면 필요 없다?

일본 내 깨어 있는 양심세력이 조선일보의 눈에는 침략의 고상한 장식품 정도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이런 글을 사설로 쓸 수 없다. 일본 내의 깨어 있는 세력들은 소수이긴 하지만 끈질기게 일본의 법원을 상대로 한일관계기본조약을 공개하도록 촉구했고 그 결과 일본법원은 정부에 한일관계기본조약 문서 일부를 공개하도록 판결하지 않을 수 없었다(「일 법원, 자국정부에 “한일조약 문서 일부 공개하라”」, 한겨레, 2012. 10. 12. 1면).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사설을 그렇게 쓰고 말았다. 왜일까?

<한겨레> 2012년 10월 12일자 1면
<한겨레> 2012년 10월 12일자 1면

조선일보의 이 사설은 언론의 보편적 목표인 진실 추구를 비웃고 왜곡했다. 그 점에서 조선일보의 이 사설은 조선일보의 시각이 얼마나 보편성을 결여했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일 양국의 평화를 염원하고 그것을 위해 자국 정부라도 반성할 것을 촉구한 것에 대해서는 그들이 일본인이라도 경의를 표해 마땅하지 않을까?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지금 당장 효과를 내지 못한다면 깨어 있는 양심의 소리는 필요 없다는 논법이 성립된다. 또 작은 것은 아름답지 못하며, 큰 것은 정의롭지 못하고 양심적이지 않더라도 큰 것이므로 좋고 아름답다, 큰 것만이 필요하다는 논법도 성립된다.

조선일보, 보편 가치에 '찬물'

이것을 우리 역사에 대입해보자. 자칭 ‘큰 신문’이라는 조선일보는 친일의 선봉에 선 신문이었다. 그들의 친일행각은 섬겨야 하는 조선민족은 작고 힘 없고 그래서 아름답지 못했고 필요 없었으므로 크고 힘 있는 일제에 붙은 선택이었다는 말이 된다. 조선일보의 논법대로라면 대한제국과 그 국민은 힘 있는 일본제국에 패망해 그 지배를 받아야 했고 그것이 정당했다는 것이 된다.

조선일보의 이 사설은 인간적이고, 양심적이고, 인간이므로 지켜야 할 인권과 인도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권력과 맞서는 작은 시민들과 골리앗 같은 권력기관, 지구상 대다수 작은 나라들과 힘을 앞세운 패권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세력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교란할 우려가 매우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조선일보의 이 사설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정의와 불의, 정도와 패권, 펑화와 폭력, 자율과 강압을 구분하지 못하게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한층 심각하다. 조선일보는 더 이상 보편성을 추구하는 언론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면서 한국 국민을 침략하고 식민지 지배를 시작했다는 일본 내 깨어있는 양심세력의 지적이 조선일보는 어째서 나쁘다는 것인가. 왜 무시하는 것인가. 일본 안의 깨어 있는 양심세력을 비아냥거리고 무시한다면 우리 안의 양심세력에 대해서 조선일보가 어떤 태도를 취할지 묻지 않아도 짐작이 된다.

조선일보와 매일신문, 닮은 사설...'안철수 때리기'

조선일보의 사설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이와 같다면 대구의 ‘리틀 조선일보’라는 매일신문의 사설은 또 어떤가? 조선일보와 매일신문이 어떤 관계인지는 다음의 사설 비교표가 잘 말해준다.

조선일보-매일신문 닮은 꼴 사설 비교표
조선일보-매일신문 닮은 꼴 사설 비교표

'오비이락’이란 말이 있지만 조선일보와 매일신문의 사설은 너무 많이 닮았다. 제목이나 내용, 시각 할 것 없이 모두 닮은꼴이다. 게재 날짜까지 같다. 조선일보가 조간이고 매일신문이 석간이란 점을 고려하면 매일신문의 사설은 조선일보의 사설을 베낀 것이란 의심이 짙다.

<조선일보> 2012년 10월 11일자 사설
<조선일보> 2012년 10월 11일자 사설
<매일신문> 2012년 10월 11일자 사설
<매일신문> 2012년 10월 11일자 사설

조선일보와 매일신문의 쌍둥이처럼 닮은 사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주목표가 안철수 후보란 점이다. 위의 사설을 놓고 말하면 새누리당은 안철수 후보를 선거판에서 공격하고, 조선일보와 매일신문은 안철수 후보를 ‘언론’을 빌미로 삼아 장외에서 공격논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협공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역할을 분담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점에서 조선일보와 매일신문의 사설은 정치 ‘찌라시’ 수준임을 보여준다. 조선일보와 매일신문의 이런 행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안철수 후보는 여전히 막강한 상대임을 역으로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조선일보> 2012년 10월 8일자 사설
<조선일보> 2012년 10월 8일자 사설
<매일신문> 2012년10월 8일자 사설
<매일신문> 2012년10월 8일자 사설

<조선일보> 2012년 9월 25일자 사설
<조선일보> 2012년 9월 25일자 사설
<매일신문> 2012년 9월 25일자 사설
<매일신문> 2012년 9월 25일자 사설

남부권 신공항...박근혜 부담 덜기?

도대체 매일신문에서 무슨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까.
매일신문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신공항’ 관련 보도를 보자. 영남권 신공항이 무산됐을 때 매일신문의 지면은 매일신문이 패닉상태였음을 보여주었다.  2011년 3월 30일 수요일 매일신문 1면은 ‘밀양 신공항 없이는 영남의 미래 없다’ ‘영남권신공항 백지화 결사반대’ 플래카드를 든 분노한 사람들 사진으로 채우고 아래에 역시 전면 컷으로 「대통령도 참모진도 지역민심 눈감고 귀 닫았다」라는 제목을 달아 매일신문이 신공항 무산에 ‘결사반대’임을 보였다.

그런데 대선일정이 진행되는 지금 매일신문 지면은 어떤 모습인가.
지난 2월 10일 매일신문 1면 중앙은 「박근혜 “신공항 총선․대선공약”」이라고 달았다. 박근혜가 총선과 대선에서 ‘영남권 신공항’을 각각 공약으로 채택해서 추진하겠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박근혜가 총지휘를 맡았지만 영남권 신공항은 공약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이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는 식언을 한 것이 된다.

그런데 매일신문은 지난 9월 14일 1면에 「박근혜 “남부권 신공항 반드시 재추진”」제목을 달아 보도했다. 박근혜가 “지금은 신공항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고, 그러면서 “신공항은 국가 경쟁력차원에서 꼭 필요한 인프라이고 국민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정부가 폐기했더라도 다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매일신문은 틈만 나면 신공항 관련 보도를 내보냈다(「남부권 신공항 재추진 신호탄?」(8월 13일 1면).

<매일신문> 2012년 9월 14일자 1면
<매일신문> 2012년 9월 14일자 1면
<매일신문> 2012년 10월 5일자 1면
<매일신문> 2012년 10월 5일자 1면

그리고 박근혜와 신공항을 세트로 묶은 보도는 매일신문에서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매일신문에서 ‘신공항’은 더 이상 주요뉴스로 1면에 오르지 않았다. 박근혜가 말했다는 식의 따옴표 보도(“ ”)가 매일신문에서 사라진 것이다. 지난 10월 5일 매일신문은 남부권신공항을 1면에 다루기는 했으나 눈에 띄게 작게 다뤘다. 「남부권 신공항 대선공약 빠지나」제목의 3단 기사에 그쳤다. 부산에서 ‘가덕도’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표 계산 하면서 눈치만 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매일신문은 자사의 언론캠페인으로 다뤄온 ‘신공항’을 대선국면에서 박근혜 동정과 세트를 이루면서 죽 독자들에게 쏟아부어왔다. 그런데 이제 ‘신공항’을 스스로 죽이기 시작했고 박근혜와 세트를 이룬 보도는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 표 계산 하기 바쁜 박근혜에게 영남권에서도 대구와 부산이 갈리는 ‘신공항’ 문제로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정치적 노림수가 아니라고 매일신문은 과연 말할 수 있을까?

매일신문에서 ‘신공항’이 사그라들고, 더더구나 박근혜와는 분리해서 다루는 태도는 ‘신공항’을 자사 캠페인으로 다뤄온 그동안의 보도 태도로 볼 때 ‘신공항’은 ‘박근혜’에 더 이상 우선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신공항 건설의 목적으로 내세워온 ‘지역발전’ 운운은 진정성이 없는 애드벌룬이었거나 아니면 매일신문이 ‘박근혜 올인’을 결정했거나 둘 중의 하나 때문일 것이다. 매일신문의 캠페인 ‘신공항’ 보도의 변질, 퇴장은 매일신문의 정체성 문제를 판단하는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다. 자사의 정체성이 걸린 사업을 퇴장시킨 데서 매일신문이 지역신문으로서 가졌다고 그동안 주장해온 ‘정체성’은 거품으로 사라졌다. 박근혜와 세트로 다뤄오다 분리 보도하는 것 자체가 매일신문의 보도를 관통하는 지침이 정파성/정치성임을을 보여준다.

조선일보와 매일신문이 부르는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하여가. 그 소리가 높을수록 정치는 왜곡된다. 균형 있는 보도를 통한 후보 검증이 아니라 특정 후보를 위한 방패 역, 나팔수 역을 하기 때문이다. 정체성이 사라진 신문은 ‘찌라시’일 뿐이다.






[평화뉴스 - 미디어 창 205]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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