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 문학상, 시인의 정신은 살아있나?"

평화뉴스
  • 입력 2004.10.03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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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락 칼럼 8>
"일그러진 문학상...지방토호, 문화 권력의 개입 의구심"
"안동서 첫 제정된 이육사 문학상...대구 이상화 문학상의 잘못 되풀이할까 걱정"

지난 8월 초에 안동에서는 이육사 시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문학기념관을 개관하고 육사의 문학과 역사가로서 육사의 위치에 대한 학술토론회, 그리고 육사 기념 백일장, 문학캠프, 육사문학상 시상 등이 다양하게 열렸다. 예산도 20억 원 이상이 들었다고 한다. 많은 예산을 들여 육사를 기념하는 지자체의 노력은 평가받아야 할 것이고 그 행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한 지역민들의 노고도 치하되어야 할 것이다.

이육사는 안동 출신으로 일제에 저항한 불굴의 저항시인, 민족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는 이육사 기념행사 가운데 육사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육사문학 심포지움에 사회자로 참여했다. 그런데 뜻 있는 행사에 티가 생겼다. 이런 경우를 두고 '옥의 티'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육사문학상 시상을 두고 뒷말이 아직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요지는 수상자 선정이 적절치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문학상뿐 아니라 대부분의 상은 시상되자마자 여러가지 잡음이 흘러나오는 게 통례이니, 육사문학상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게 없다고 간단히 생각하면 마음 편한 부분도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문단에서 시행되는 문학상의 수가 290여개라는 보도도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하루 한 개의 문학상이 시상되는데 그깐 상 하나가 뭐 대단한 일인가 라고 아예 관심을 닫으면 마음 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육사는 앞서 말한 바처럼 한국문학사가 자랑하는 대표적인 문인이자 민족지사이다. 여느 문인의 이름을 빈 상업적인 문학상과는 무게가 다르다.

나는 심포지움 현장에서 안동시장에게 육사문학상 수상자 선정의 부적절함과 수상자 결정과정에서 지방 토호나 문학권력이 개입한 것은 아닌가에 대해 항의와 의구심을 표한 바가 있다. 이 상은 대구의 한 민영방송사가 주관해서 시행했다. 여력이 없는 문인들이나 유가족을 대신해 언론사가 문학상을 제정하는 예는 흔하다. 어찌 보면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역시 공정성이 문제이다. 기존에 많은 문학상이 있는데 또다시 이육사의 이름을 빈 문학상을 새로이 제정한다면 뭔가 육사정신과 연관이 있는 사람에게 육사문학상을 주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다.

육사는 저항시를 썼던 시인이고, 조국 독립을 위해 북경의 차디찬 감옥에서 옥사한 분이다. 적어도 이런 육사의 정신을 이어받은 문인이 상을 받아야 적절한 일이 아닐까? 이번에 제1회 육사문학상을 수상한 분은 시조시인이다. 소위 돈도 권력도 되지 않는 문학을 여든이 넘게 붙들고 살아온 그분의 예술가 정신에는 신뢰와 존경을 보낸다. 그러나 수상자에게 본의 아니게 결례가 될까봐 조심스럽지만, 육사문학상은 육사 시정신에 부합하는 문인이 수상하는 게 상 제정 취지에도 부합하고 수상자 본인에게도 영예스런 일이 된다.

"유명무실한 상으로 전락한 이상화 문학상 ... 격에 맞지 않은 수상자 결정으로 문단 일각에서조차 관심 없어"

사소한 것 같지만 문학상뿐 아니라 모든 게 제 자리를 지킬 때 세상은 순리대로 움직인다. 이것은 동양의 고전이자 배움의 첫머리인 《소학》에도 나온다. 제 격에 맞지 않는 억지를 부릴 때 권력의 횡포, 구린내 나는 비리같은 게 발생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육사 문학상에 비리가 개입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뒤로 흘러나오는 수상자 결정과정 후문을 들어보면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대구에는 이상화 시인이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같은 작품을 쓴 이 분 역시 이육사 못지 않은 저항시인이자 민족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수십 년 이 시인의 이름을 빈 문학상이 제정되어 시상되어 왔다. 지역의 한 유력 문학동인이 이 상을 제정하여 시상을 주관해 왔다.

그러나 이상화 문학 정신과 그다지 관련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문단에서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는 것 같지도 않은 시인들이 다수 이 상을 수상했다. 결국 이상화 문학상은 문학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고사하고 문단 일각에서조차 관심을 갖지 않는 유명무실한 상으로 전락했다. 이것 역시 격에 맞지 않은 수상자 결정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이육사 문학상의 전도에 이상화 문학상과 같은 과오가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아니 많은 뜻 있는 문인들은 이육사문학상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몇몇 문학패거리가, 아니면 문단 권력자가, 이육사와 혈연관계가 있는 지방토호가, 상업주의 언론이 이육사문학상의 취지를 흐리게 할 뿐만 아니라 고매한 육사문학의 정신까지 타락시킬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내 사견으로, 문학상은 그 어떤 것이든 제정하지 않는 게 좋고, 작고 문인의 경우도 시비나 동상 등 어떤 조형물도 세우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생존 문인의 시비를 세운다는 것은 더욱 염치없는 짓인데, 요즘은 이런 짓거리가 부끄럼 없이 행해지고 있다). 올바른 문학정신이란 공명정대하고 사욕이 없는 마음일 것이다. 세월이 지나 이해 관계자가 없어지면 곧 쓰레기나 고물로 전락할 문학상, 시비를 왜 그렇게 많이 만드는지.

비단 이육사문학상 뿐이 아닐 것이다. 꺼리가 하나 생기면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탐욕과 물신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문학도 우리 사회도 제대로 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절차와 과정을 투명하게 지키고, 명실상부한 합리적인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제1회 이육사문학상 시상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김용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시인. 대구사회비평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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