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몸과 사랑, 모든 몸은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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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이동훈 / 『모든 몸은 평등하다』(장애여성들의 몸으로 말하기)
| 김효진, 최해선, 강다연, 박현희, 이호선 저 | 삶창 펴냄 | 2012.9


 지난 8월 말에 대구의 대형서점에 들렀다. 사회과학 귀퉁이에 새로운 책 가운데 읽을 만한 게 있는가 싶어 이리저리 살피다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다. 바로 「모든 몸은 평등하다」라는 책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평소에 장애학에 관심이 많아 장애학 관련 책을 찾아서 구입해서 읽는 편이다. 집에 이미 몇 권 가지고 있다, 대부분 남녀 장애인의 단편들을 묶은 책들이거나, 비장애인 남성들이 쓴 책이다. 당사자 장애여성이 쓴 책으로는 김효진의 「오늘도 난, 외출한다」뿐이다. 이 책은 김효진의 자전적 에세이 모음집이다.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한 권 더 있었으면 하고 바랐는데, 최근에 이 책을 알게 되어 기쁘다.

 이번에 내가 읽은 책 「모든 몸은 평등하다」는 장애여성들만의 이야기를 묶어놓은 책이다. 다섯 명의 장애여성들이 자신의 장애와 몸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여성으로서의 삶, 사랑, 육아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책이다. 각장 끝에 공감하기 귀퉁이가 있어 다른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있다. 장애여성 네트워크와 페미니즘 잡지 일다가 함께 만들었고 삶창이라는 출판사에서 펴냈다.
 
『모든 몸은 평등하다』(김효진, 최해선, 강다연, 박현희, 이호선 저 | 삶창 | 2012.9)
『모든 몸은 평등하다』(김효진, 최해선, 강다연, 박현희, 이호선 저 | 삶창 | 2012.9)
 먼저 장애여성 네트워크 대표 김효진 님은 오랜만에 다시 글로 만난다. 처음에 재밌게 읽었던 오늘도 난, 외출한다를 읽고 난 후, 대구 DPI 장애해방학교에서 장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김효진은 서문인 ‘책을 내며‘에서 “장애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대해 목소리를 낸 책은 이 책이 최초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각자 몸의 역사를 쓰는 데서 출발했다, ‘말하기’는 내 몸의 역사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그럼으로써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여성의 몸이 어떻게 위계화되고 있는지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의 언어를 통해 장애여성의 삶을 재구성하고자 했다”(8쪽)고 이 책을 소개한다. 그리고 본편에서는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지금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진솔하게 삶을 드러내는 게 사실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의 저자들도 마음의 아픔들을 느꼈으리라. 그러면서도 그 진솔한 드러냄은 읽는 이를 이해시킬 뿐만 아니라 저자 자신들도 마음이 치유가 되었을 것이다.

자신의 몸의 역사를 쓴다는 건 받아들인다는 것, 두 번째 저자인 최해선의 말대로,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적응하는 것”(76쪽)이다. 그 받아들임과 적응은 곧 몸을 드러내기로 이어진다.

 나는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심지어 극단적인 생각도 했었다. 받아들이고 적응하기까지 좋은 사람들, 좋은 책들을 만나고 시간이 많이 지나서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남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말을 한 사제가 된 아는 형한테 고맙다. 장애는 극복이나 딛는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임과 적응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는 사회가 만든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장애는 사회가 만든 장벽을 다양한 권리의 주체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장애를 많이 모른다. 그 가운데는 장애여성도 있다.

 이 귀퉁이에서 두 장의 장애여성 사진이 나온다. 장애여성 네트워크에서 2009년 10월에 열렸던 사진 전시회에 출품한 사진이다. 41쪽에 이남희의 작품 스튜디오는 한 여성이 방송기계 모퉁이에 앉아 대본을 보고 있다. 바로 옆엔 목발이 보인다. 다리를 보게 되면 지체장애 여성임을 깨닫고는 놀란다. 저자는 사람들이 공포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전한다. 43쪽에 임현주의 작품 뜨개질은 한 중년 여성이 장애인이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이런 현상을 김효진은 “대부분의 사람은 장애를 경험이 아니라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42쪽)라고 지적한다. KBS의 ‘사랑의 리퀘스트’와 ‘사랑의 가족’, MBC의 ‘특별한 세상’과 ‘함께하는 세상’, SBS(대구에는 TBC)의 ‘세상에 이런 일이’이 장애를 경험이 아닌 이미지로 만들어 버린다. 이에 대한 원인을 김효진은 “장애인을 사회 참여에서 배제하는 환경으로 인해 학교에서나 직장에서나 장애인과 가까이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42쪽)이라고 지적한다. 프랑스 장애여성 프랑수아즈 따르따랑도 장애인들이 밖으로 많이 나와야 한다는 당연한 진리를 말하기도 했다. 그만큼 통합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 같은 경우는 일반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그 안에서 1년을 빼고 분리교육을 받았다. 하양 초등학교에는 특수학급이란 게 있어 장애학생들을 교육한다. 그런데 비장애학생 가운데 공부 못하는 아이들을 보내, ‘특수반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가는 곳‘이란 이미지를 만들어 “쟤 특수반 출신”이라는 낙인을 찍서 괴롭힘을 당하곤 했다. 이 책의 저자들은 학교 체육시간 때 교실에 남아 있는 경험을 공유한다. 나도 중학교 때까지 체육시간 땐 교실에서만 있었다. 5년간의 특수학급 시절의 부정적 영향으로 나는 사회성이 약한 편이다.

 공감하기 귀퉁이에 김효진이 일본 장애여성 아사카 유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경험들을 알려준다. 일본에는 예전에 우생보호법이란 게 있었다고 한다. 아사카 유호의 병원 경험과저자들의 병원경험이 그리 좋지는 않았던가 보다. 의료의 폭력을 이야기 한다. 장애학에서도 의료의 권력과 폭력을 다룬다. 흥미로운 건 장애인들이 병원에서 뼈사진을 찍으면서 방사능에 노출되고, 자궁적출을 하는 의료폭력의 잔인함을 말한다. 이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일어난다. 저자 박현희는 병원생활을 이야기하며 “병원은 감시투성이군.”(144쪽)라고 말한다. 다른 저자들 역시 자신의 병원생활이 부정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SNS에서 어느 의사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의사는 “한국에선 의료인이 판정하지 않고 공무원들이 판정한다”고 말을 했다. 이 말 속에 의료권력이 장애를 판단하는 현상들을 볼 수 있다. 공무원들의 판정에도 문제가 있다. 공무원들의 행정편의로 만들어진 장애판정제도는 장애인들 사이의 거리를 벌려놓았다. 심지어 잘못 나온 장애명칭은 바꾸기가 아주 까다롭다. 6개월 동안 진료를 받아야 다시 재발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난 아직도 지적장애 3급이다. 너무 오래 돼 내가 무슨 장애인인지 모르겠다. 난 언어장애, 청각장애, 뇌병변장애, 사회의 강제적 분리로 인해 아이큐가 높지 않다.(우리 엄마는 나보고 아이큐가 높다고 하신다.) 사실 처음 복지수첩 만들 때 공무원이 혜택이 많이 간다며 “정신박약”이라고 기재하라고 했다. 장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부모님은 정신박약이라고 하라고 했단다. 그래서 안동에서 지적장애인 취업 박람회에 오라고 우편물이 자주 온다. 예전에 한 번 가봤는데 내 장애와는 한계가 있는 직업들이 많았고, 그곳 인사담당자는 내가 지적장애인이 아니란 것을 알고 의심의 눈초리를 준 경우도 있었다. 대구장애인직업학교의 선생님도 역시 내가 지적장애인이 아닌데 왜 이곳에 오느냐고 묻기로 했다. 이렇듯 혜택을 받아서 좋지만 제한이 많고 편견이 많은 것이 국가와 의료가 내게 준 장애다. 지금은 명칭변경을 포기한 상태다. 며칠 전 옛 마을 친구와 단둘이 술을 마시며 그 이야기를 했는데, 그 친구는 화를 내며 내 장애인 복지카드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이 사랑에 관한 것이다. 내가 25살 때 처음으로 혼자 서울에 갔을 때였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인터넷 카페 무돌이네집 정기모임 때 한 여성회원이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장애여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는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 회원은 “성이 없는 존재”라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한 동안 멍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난 25살 때 장애학을 몰랐다. 대구대에서 장애여성 친구들을 많이 만나온 내가 왜 말을 못했을까 생각하면 장애여성들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가 든다. 27살에 대구DPI에서 장애학을 접한 후부터 장애여성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곤 했다. 박현희의 말처럼, “직장인 장애여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여성, 혼자 쇼핑을 하고 살림을 하는 장애여성, 나만 바라보는 애인이 있는 장애여성, 동거인과 대등한 장애여성,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내게만 덤을 줘도 예뻐서 그런 거지, 라고 말할 수 있는 장애여성, 그렇게 자리매김하며 살고 있는, 재미있게”(153.155쪽) 살아가고 있는 사람, 자신의 마음으로 웃고 우는 똑같은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장애인의 사랑도 아름답고 사랑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때가 있었다. 대학시절 나도 사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성급하고 서ㅤㅌㅜㄻ 때문이었는지 지나쳐버려 부담을 주면서 끝나버린 과오가 있었다. 153쪽에 강다연의 사진작품 연인I을 보면 아름답게 느껴진다. 저자 가운데 이호선은 이 책의 끝장 못다한 이야기 귀퉁이에 장애인의 성적 사랑도 함께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 책의 장애여성들의 사랑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항상 생가하며 마음 아파하고 외로워하고 있다. 나에게도 희망과 사랑이 있는가? 이반 일리히나 조약골 같은 아나키스트를 보면서 사랑과 연애, 결혼을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삶이 부럽기만 하다. 165~170쪽에 나오는 공감하기 귀퉁이의 화가 주사랑의 삶도 닮아보고 싶다.

 이 책의 장애여성들의 이야기는 드러냄과 받아들임, 적응함으로 함께하고 있다. 장애여성들의 진솔한 이야기들을 읽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아쉬운 건 이 책 가운데 시각장애여성, 청각장애여성, 정신장애여성, 지적장애여성들의 이야기들이 누락된 것이다. 모든 몸은 평등하다는 주제답게 이런 장애여성들도 다뤘으면 더 풍부한 장애여성들의 삶을 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의 주제는 박현희의 글대로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것“이며, 나를 받아들이고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본다.

 
 
 






[책 속의 길] 84 / 현이동훈
아나키스트. 인터넷 카페 '무돌이네집' 카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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