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통일의 길은 울며 웃으며 가는 길

기사승인 2012.10.28  14:32:47

공유
default_news_ad1

- 김두현 / "개성 하늘은 맑았다. 구름은 걷혔다"


10월 25일(목) 오전 6시, 눈을 떴다. 찜질방이다. 밤새 코고는 소리와 4년만의 방북의 설레임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게다가 어젯밤 늦게 행사를 마치고 상경한 까닭에 몸이 쉽게 말을 듣지 않는다. 그래도 몸을 일으켜 아내가 챙겨준 빵과 두유로 아침을 먹고 샤워후 약속장소로 향했다.

오전 7시 30분, 최근의 흐린 남북관계처럼 구름이 잔뜩 끼인 날씨다. 문득 11년전 첫 방북때가 떠올랐다. 연세대에서 방북승인이 나기를 기다리던 전날밤 한숨도 자지 못하고 꼬박 밤을 새우던 기억이 났다. 그때만큼이나 설렘과 긴장이 온몸을 덮고 있었다. 잠시뒤 함께 방북하는 인도요원들을 만나 강변대로를 달려 임진각으로 향했다.

 
 
▲ 개성과 서울의 갈림길 / 사진. 김두현
 
 
▲ 군사분계선으로 가는 길

자유로를 따라 40여분을 달리니 임진각이 나왔다. 임진각, 북을 떠나온 실향민들이 망향의 아픔을 달래는 곳이다. 불과 3일전 이곳은 초긴장상태였다.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방침에 북이 군사적 타격을 공언하였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대피하는 등 일촉측발의 위기감이 조성되었던 임진각은 다행히 평온한 상태였다. 미리 도착한 수해물자와 대북인도지원단체의 관계자들이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이번 방북은 2차 수해물자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회장 인명진)와 함께 개성 육로를 통해 전달할 32억원 상당의 물품에는 대구에서 마련한 3,000벌의 내복도 포함되어 있다. 물자를 전달할 인도요원은 총 6명, 모두 이번 수해물자지원에 참가한 단체와 기업 관계자들이다. 오랜만의 방북이고 최근의 남북관계가 군사적 충돌위기까지 치달았던 상황이라 언론사의 취재열기가 뜨겁다. 기념촬영후 우리는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로 향했다. 통일대교 곳곳에는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었고 군인들이 중무장한 채로 배치되어 있었다. 오늘부터 9일간 진행되는 호국훈련 때문이라고 한다.

 남과 북을 잇는 유일한 길, 도라산 출입사무소는 '정상 가동'

도 라산 출입사무소에는 우리외에 개성공단을 방문하기 위해 대기중인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오늘 우리를 안내할 현대아산의 이경찬씨가 지금도 이곳은 하루에 개성으로 가는 출경이 11번, 개성에서 오는 입경이 10번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조금 한산하지만 평상시에는 오전 11시까지는 돗대기 시장같다고 한다. 

 
 
▲ 임진각 출발 전 기념 촬영

지난 4년 얼어붙을 만큼 얼어붙은 남북관계로 인해 하늘길 땅길, 바닷길이 모두 끊겼지만 유일하게 남과 북을 잇는 통로인 이곳은 그래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4년만에 온 도라산 출입사무소의 풍경운 매우 익숙하지만 낯설게 느껴졌다. 일행들 대부분 아침을 굶고 온 상태라 2층 식당에서 라면으로 시장끼를 때웠다.

출경절차를 마치고 출발대기장소로 나오니 구름사이로 햇볕이 나기 시작했다. 오늘의 방북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오전 9시 50분 방북차량의 번호판을 가렸다. 5분뒤 차량을 출발하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2분만에 개성시로 들어섰다. 잠시 뒤 우리는 북측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민화협의 리춘일 참사 등 3명이 우리를 맞이하려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민족서로돕기 강영식 사무총장과 (사)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엄주현 부장은 마치 오랜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이어갔다. 리영국 참사는 나도 안면이 있었지만 4년만의 만남이라 기억을 되살리기 쉽지 않았다. 우리는 북측에서 마련한 차량을 타고 수해물자를 하역장으로 출발하였다.

가는 길에 개성공단이 눈에 들어왔다. 현대아산의 이경찬씨는 개성공단은 별탈 없이 정상가동중이라고 한다. 2,000만평을 조성하기로 계획된 개성공단은 현재 1단계 공사인 100만평의 대지에 123개 기업이 들어와 조업중이다. 북측의 노동자수도 계속 늘어 50,000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최근 세금폭탄이니 퇴직금 요구니 해서 개성공단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보도가 줄을 잇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의 기업이 이익을 남기며 잘 가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을 나와 봉동소학교 옆 빈터에서 수해물자 하역작업을 시작했다. 북측노동자가 2대의 지게차를 이용하여 8대의 화물차에 실린 수해물자를 내리기 시작한지 1시간 30분 가량이 지나니 작업이 끝났다. 북측 세관에서 제출한 지원물자의 서류와 실제 지원된 물자가 일치하는지 검사를 하니 12시가 되었다.

 
 
▲ 봉동소학교 옆 하역하는 모습
 
 
▲ 하역을 마치고 기념 촬영. 2012년 10월 25일 오전 11시 50분

 활기찬 개성시내, 늘어난 차량, 안정된 북한 주민의 모습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식사 시간이다. 나는 처음에는 점심식사를 봉동관에서 하기를 기대하였다. 봉동관은 북측 특유의 코스요리에 공연까지 제공되는 식당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엄주현 부장이 민속여관이 좋다고 리찬일 참사에게 은근히 요청을 하였다. 봉동관은 개성공단 바로 옆이기 때문에 개성시내를 볼 수가 없다. 민속여관은 개성시내를 통과해서 가니 개성의 모습과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민속여관이 좋다는 것이다. 나는 과연 우리가 탄 차량이 어디로 향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차량은 봉동관 옆 검문소를 지나 개성시내로 들어갔다. 개성시내로 가는 2차로가 깨끗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최근에 새로 포장을 했다고 한다. 시내로 들어서니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보인다. 4년전보다는 차량도 자건거도 늘어난 모습이다. 물론 여전히 길옆 아파트의 외벽과 아이들의 모습, 강에서 빨래하는 풍경을 통해 생활의 어려움을 엿볼 수 있었지만 확실히 4년전보다는 전반적인 도시의 모습이 밝아보였다.  개성시내 곳곳에는 지난해 김정일 위원장 사망이후 등장한 김정은 체제를 반영하듯 곳곳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 1위원장의 이름이 들어간 구호판이 걸려 있었다.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의 영도따라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수하자", "선군조선의 태양 김정은 장군 만세"   
구호판을 보며 북이 최근 모란봉악단의 공연과 국제전화 연결 등 파격적인 개혁개방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주체사상과 선군노선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였다. 

 
 
▲ 민속여관 인근 책방 안 선전게시판

 울며 웃으며 가는 길이 우리의 길

 이십여분 쯤 차를 타고 가자 마치 조선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개성시 자남동에 있는 민속여관이다. 마치 영화세트장 같은 이곳은 북한영화에서도 종종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이다. 개성민속여관은 조선식건물들로 특색있게 세워져 있는 관광여관으로 총부지면적 12,000m² , 건축면적 5,079m²이고 수용능력은 120여 석이라고 한다.

남에서 모처럼 온 손님을 위해 마련된 식사는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옛날 조선시대 왕들과 양반들이 먹었다는 12첩 반상 - 12가지 종류의 찬이 마련된 식사 - 에 인삼닭곰까지 준비된 점심식사는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푸짐하였다. 민속여관의 봉사원 설경 동무는 음식이 준비되는 대로 차질 없이 봉사하였고 이제 22살이라는 말이 믿기 어려울만큼 그 솜씨가 능숙하였다.  우리는 송학소주를 주고 받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 민속여관 앞 거리. 단풍이 곱다.

 남에서나 북에서나 대결과 갈등이 높아지면 남북 협력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처지가 어려워지는 것은 마찬가지. 리춘일 참사는 “건물을 짓기는 쉬워도 허물기는 쉽다”며 남북관계가 원만했다면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리영국 참사도 “분단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산의 아픔을 해결하고 있지 못하는 얼마나 비극이냐”며 안타까워 했다. 리춘일 참사는 “과거 남북교류사업이 봇물 터지듯 많았을 때는 집에 자주 들어가지 못해 안해에게 많은 구박을 받았다. 그래서 집에 모처럼 들어가면 빨래며 설거지며 집안일을 해 점수를 딸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고 했다. 우리는 울며 웃으며 가는 길이 우리의 길이라며  앞으로 여러 어려움이 있어도 함께 헤쳐 나갈 것을 약속하며 건배를 들었다.

 
 
▲ "통일을 위하여"
 
 
▲ 기념 촬영 / 맨 왼쪽이 김왈섭 참사, 네번째가 리영국 참사, 맨 오른쪽이 리춘일 참사

 2시간이 넘게 계속된 점심식사는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마무리 되었다. 들쭉술과 몇가지 기념품을 사고 기념품점을 나오려고 하니 기념품점의 봉사원들이 우리를 부른다.  "선생님,  저희들이 남녘에서 모처럼 선생님들이 온다고 민속여관 앞의 감나무에서 홍씨를 따 준비하였습니다. 꼭 드시고 가십시오"  한 접시 가득 잘 익은 홍씨를 내어 놓은 그 마음이 참 곱다. 홍씨처럼 통일도 그렇게 익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3시 40분 우리는 개성출입사무소에 도착하여 헤어짐의 아쉬움을 나누었다. 내년에 다시 만나자고 하니 올해 다시 꼭 들어오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 개성의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걷혔다. 개성출입사무소를 출발하여 10분만에 도착한 남녘의 하늘도 어느새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쏟아지는 가을 햇살속에 임진강의 새들은 남북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자유로에서 다시 남녘동포들의 마음을 안고 방북할 날을 꿈꾸며 4년만의 짧은 방북은 마무리되었다.

 
 
▲ 민속여관 해설판 앞에서 필자 / 김두현(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평화뉴스 김두현 객원기자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ad40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