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총리 후보가 낙마하자 박근혜 당선인이 고위공직자 청문회에 불만을 표시하였고 새누리당에서는 개정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당선인과 새누리 당은 과거 야당 시절 자신들이 한 일을 잊어버린 듯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복수가 복수를 낳는 무협소설 같은 일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이번에는 정치권이 이성적으로 대처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인사청문회 “신상 털기”는 필요하다
인사청문회는 공직자로서의 품성과 능력을 검증하는 과정인데 검증을 위해서는 후보가 과거에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볼 수밖에 없다. 당선인은 청문회가 “신상 털기”라고 표현했지만 그 외에 무슨 방법이 있나? 점을 칠 것인가, 관상을 볼 것인가? 더구나 이번 경우에는 청문회를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혹 고쳐야 한다면 그 대상은 청문회 제도가 아니라 무책임한 언론이다.
우리나라 고위공직자 청문회의 단골손님이 넷 있다. 부동산, 병역, 위장전입, 논문 표절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부동산을 제외한 세 가지는 위법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면 그만이지만 부동산은 그렇지 않다. 법을 어기지 않고도 부동산으로 재산을 증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이 위법 아닌 부동산 재테크도 좋게 보지 않는다. 법과 국민 둘 중 누가 옳을까?
필자는 국민이 옳다고 본다. 국민이 공연히 샘이 나서 부동산 재테크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부동산의 핵심인 토지는 누가 생산한 것이 아니며 국민 모두의 삶의 터전이다. 또 토지 이익은 소유자의 생산 활동과 무관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토지소유자가 토지로 돈을 번다면 반드시 다른 사람의 생산 이익을 가져가게 된다. 노력하지 않은 자가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간다는 점에서 절도와 다름없다.
법을 어기지 않는 부동산 투기는 괜찮나?
토지 불로소득을 완전히 환수하는 제도가 있다면 문제는 깨끗해진다. 왜 그런 제도를 안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런 제도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일반 국민이라면 모를까 고위공직을 맡을 사람이, 위법이 아니라는 이유로 발뺌해도 좋을까?
김용준 전 총리후보는 아들이 소유한 부동산은 할머니가 어린 손자에게 사 준 것이고 당시 금액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명하였다. 증여세 문제나 개발 정보 빼내기에 관한 의혹이 있지만, 위법이 아니라고 가정하더라도 투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할머니가 앞으로 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토지를 손자에게 사주었다면, 김용준 씨 본인은 아닌지 몰라도 적어도 할머니는 분명 투기 의도가 있었고 손자는 수십억 대의 투기이익을 얻은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위법도 아니고 후보자 본인의 행위에 의한 것도 아니므로 문제가 없다고 할 것인가? 부동산깨나 가진 사람에게는 다소 고민이 되는 퍼즐이겠지만 선량한 땀의 대가로 살아가는 서민의 눈에는 답이 바로 보인다. 부동산 이익을 포기하면 된다.
고위공직자는 자식의 일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국민의 기대다. 그러므로 할머니가 손자에게 당시 부동산 가격에 해당하는 금액을 증여한 것으로 보고, 그 금액의 원리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사회에 환원하면 된다. 아깝다고? 그렇다면 국민의 상식과는 달리 부동산 투기를 긍정한다는 말이므로 고위공직자로서의 품성 면에서 합격점을 받기 어렵다.
박근혜 당선인도 자산백지신탁제 약속했었다
사실 박근혜 당선인도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이익을 차단하는 제도를 도입한다고 두 번이나 약속하였다. 처음은 2004년 탄핵 역풍에 한나라당이 휘청거릴 때다. 4.15총선을 코앞에 둔 3월 23일 당 대표를 맡아 소위 ‘천막당사’ 시대를 열었고 총선 나흘 전인 4월 11일에 ‘정치개혁 공약’을 발표하였다. (공약의 내용이 좋아 전문을 부록에 실어 둡니다.) 그 안에 이런 내용이 있다. “국회의원과 차관급 이상 공직자의 부동산과 유가증권을 법률이 정하는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하도록 하여 임기 내에 재산증식에 일체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동산 백지신탁은 안철수 대선 후보의 공약에도 들어 있다.
당선인은 이듬해인 2005년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도 거듭 약속하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습니다. 자산백지신탁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서 국회의원을 포함해 고위공직자가 지위를 이용해 재산을 불리는 일을 원천적으로 막겠습니다." 당선인은 2004년 정치개혁 공약을 모두 실천하기 바란다. 발표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약속을 지켰다는 소식이 없고, 급할 때 한 약속이므로 무효라고 한 적도 없다.
그리고 청문회 제도를 고친다면서 검증을 무력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고위공직자와 부동산 이익의 고리를 끊는다는 당선인의 취지를 살리는 쪽으로 고치기 바란다. 고위공직자가 되려는 사람이 과거와 현재의 모든 부동산 이익을 포기할 경우에, 위법이 아닌 부동산 재테크를 용서해 주기로 하면 된다. 더 이상 부동산에 관한 한 “신상 털기”를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원칙과 신뢰’를 강조하는 당선인을 지켜 볼 일이다.
[김윤상 칼럼 50]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ysk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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