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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튀어야했던 그들, 그리고 우리

기사승인 2013.02.14  18: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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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정 /『남쪽으로 튀어』(오쿠다 히데오 저 | 양윤옥 역 | 은행나무 | 2006)


"세금 따위는 못 내!", "토마토케첩과 미제국주의는 우리의 적이야"를 입고 달고 사는 지로네 아버지 우에하라. 한 때 과격파 학생운동권 행동대장으로 이름을 날린 우에하라는 튀어도 너무 튄다. 집에 찾아오는 연금과 공무원들이나 '관청'과는 온 동네가 떠나가라 큰소리로 떠들며 논쟁하기 일쑤다.

'프리라이터'를 직업으로 내세우지만 집에서 날마다 데굴데굴 뒹구는 게 주 업무. 작은 찻집을 운영하는 엄마 사쿠라가 집안의 중간자 역할을 하지만, 부부는 아이들에게 굳이 학교에 가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왜 날이면 날마다 사서 고생이냐?"는 아버지를 무시하고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아 열심히 학교에 다니는 11살 지로는 도쿄의 그렇고 그런 동네에서 그렇고 그런 친구들과 남자아이들만의 비슷한 성장통을 겪으며 쑥쑥 자란다.

여기까지 보면 이 책은 영판 '철없는 운동권 출신 아비 밑에서 고생하는 아이의 성장소설' 쯤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미미하게 잔존하면서도 조직내부싸움에만 골몰하는 운동권에게 더욱 환멸을 느낀 우에하라가 일본의 가장 남쪽 섬으로 이주하면서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시공간을 넘나든다.

전기도 관청도 없는 오지는 괴짜 아나키스트 우에하라가 살아가기에 최적의 터전이지만 개발토건세력에게도 더없는 먹잇감이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온 몸으로 개발세력에게 맞서는 우에하라. 이 눈물겨운 투쟁기는 우에하라 특유의 호탕함과 기상천외한 기지로 오히려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 『남쪽으로 튀어1,2』(오쿠다 히데오 저 | 양윤옥 역 | 은행나무 | 2006)

"파이파티로마는 지도에도 없는 곳이야. 그 섬은 어느 누구의 통치도 받지 않아. 자급자족으로 살아가고, 전쟁도 없고, 모두가 자유야. 국가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커뮤니티야. 사람들의 모임. 어느 나라의 영토에도 속하지 않으려고 지도에 실리는 것도 거부한 거야"


체포된 우에하라 부부는 극적으로 탈출하여 비밀의 낙원 파이파티로마 섬을 찾아 떠나지만, 가족 생이별의 결말은 훈훈한 여운마저 안겨준다. 오쿠다 히데오의 거침없는 문체는 재미있으면서 가볍지 않고, 엽기적이면서 사랑스러운 인물들을 창조해냈다. 대사 중심의 짧은 문장으로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공간을 실감나게 연출하여 마치 만화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뜨끔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한국 또한 불행하게도 일본과 비슷한 학생운동의 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의 밑바탕에는 한 시절을 선도했던 젊은 세력들의 꿈과 열정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짙게 깔려있다.

그것은 소설 끄트머리에 제법 자세하게 소개하는 <아카하치이야기>를 봐도 알 수 있다. 소설의 주요모티브로 작용하는 전설에는 고대 왕조에 대항하여 싸운 이 지역만의 독특한 반골기질과 공동체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쿠다 히데오는 한 인터뷰에서 "요즘은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잊혀져버렸지요. 하지만 내가 막 사회에 나왔을 무렵만 해도 한 세대 위의 사람들은 모두 학생운동의 냄새를 짙게 풍겼어요. 만일 학생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순수하게 살아갔다면 우에하라 이치로 같은 인물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진지함과 명랑성'이 절묘하게 조합된 인물 우에하라는 이렇게 외친다.
"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두 번 세 번 읽어도 자꾸 손이 가는 소설 「남쪽으로 튀어」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요즘 제일 잘나가는 책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판 ‘남쪽으로 튀어’는 또 어떻게 변주될지, 사뭇 설렌다.

 
 





[책 속의 길] 92
이은정 / 평화뉴스 객원기자

평화뉴스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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