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가는 배냐?

평화뉴스
  • 입력 2013.02.25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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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칼럼] "새 대통령, 지금이라도 '정관정요' 교훈을 새로 새기기 바란다"


오늘은 제18대 대통령 취임일이다. 새 정부의 출범을 마땅히 축하하고 격려하고 싶다. 동시에 약간의 걱정, 고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형국인데 그에 대처할 새 정부의 진용을 보니 결코 국민이 안심하고 발 뻗고 잘 수준이 못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첫 문장이 특히 유명하다. “행복한 가정은 어디나 비슷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 각기 다르다.” 지금 새누리당은 아주 행복한 정당이고 그래서 아주 조용하다. 반면 민주당은 불행한 정당이고 그래서 이번 대선의 패인을 놓고도 시끌벅적하게 온갖 설이 난무한다. 10인 10색, 100인 100색의 주장이 나온다. 심지어 문후보 책임론을 내세우면서 정계은퇴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문후보도 크고 작은 실수를 했다. 그러나 그만큼 득표한 것도 문후보가 주는 신뢰의 이미지 덕분임을 생각한다면 책임론이니 은퇴론은 말이 안 된다. 오히려 야당의 큰 자산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한국 정치에는 오래된 나쁜 습관이 하나 있다. 자기 잘못은 덮은 채 걸핏하면 남에게 손가락질하고 희생양을 만들어 쾌감을 얻는 가학성 카니발 습관이다. 이제 이런 미개한 관행은 깨야 한다. 그나저나 민주당이 현 위기를 이겨내고 재활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민주당이 국민들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으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를 장악한 새누리당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야당의 심기일전이 요구된다.

승리한 새누리당은 행복에 겨워 마냥 조용하다. 그러나 새 정부의 진용을 보면 어쩐지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새 정부 출범일이라 덕담을 해주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 더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지금 나라를 둘러싼 환경은 대단히 어렵다. 경제는 세계적 장기불황에다가 국내에서는 성장, 복지, 경제민주화 등 난제가 쌓여 있다. 비정규직, 골목상권 등 사회적 양극화와 교육의 지나친 경쟁주의, 노인 빈곤 등 온갖 사회 문제가 산적하여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동북아 외교환경도 자못 긴장이 감돈다. 중국, 일본, 그리고 미국, 러시아가 동북아 패권을 놓고 각축하는 상황은 100년 전 역사와 유사한 면이 있다. 그때 조선의 왕정은 무능과 부패의 극치를 달린 끝에 결국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이런 역사가 재현돼서는 결코 안 된다.

이런 내외적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비상한 의지와 능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새 정부의 진용은 안심할 수 없고 오히려 불안감을 자아내게 한다. 왜 그런가. 우선 대통령의 정책적 기초가 허약하다는 점은 대선 과정의 세 차례 TV토론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이를 보완해줄 참모들이 절실히 필요한데 총리는 정책과 거리가 먼 검찰 출신이고, 청와대 비서실장 역시 정책통이 아닌데다 정책실장 자리마저 없애버렸다. 정책실장 자리는 노무현 정부 때 처음 도입된 것인데 과거 비서실장의 과중한 업무를 줄여주면서 주요 국정과제들을 조정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자리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책실장을 제대로 임명하지 못하고 때로는 장기 공석으로 두는 등 도무지 활용하지 못하더니 새 정부에 와서는 아예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큰 실수다. 이렇게 되면 각 부처의 정책을 총괄조정하고 때로는 견제하는 역할이 거의 없어진다.

게다가 새 장관과 참모의 면면을 살펴보면 관료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런 경향은 인수위 때부터 나타나더니 새 정부 조각에서는 노골적으로 관료의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관료는 이중성을 가진다. 유능성과 무능성이다. 업무에 관한 한 세부사항까지 머리에 좍 꿰고 있으니 아주 유능해 보인다. 그러나 그게 한계다. 그 한계를 넘어서는 개혁을 못하고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태평성대라면 이래도 좋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전환기, 난세에는 이는 필패로 가는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대통령 앞에서는 누구도 감히 직언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하는데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번에 임명을 받은 장관, 참모들은 대개 공통점이 있다. 좋게 말해서 무난하고 사고 안 치고 원만한,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한 보신주의자들이 대세를 이룬다. 이런 대통령과 참모의 조합은 아주 위험하다. 도대체 이 배는 어디로 가는 황포돗대가 될 것인가.

박근혜대통령은 한때 불우하던 시절 <정관정요>를 읽고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고 한다. 당 태종은 중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황제인데 그 성공 비결은 바른말 하는 신하들을 가까이 두고 귀에 거슬리는 직언을 과감히 수용한 데 있다. 새 대통령이 진정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위징, 방현령 같은 직언하는 참모를 중용해야 하는데 첫 조각부터 그런 사람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새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정관정요>의 교훈을 새로 새기기 바란다. 지금 나라의 운명은 백척간두에 서 있고, 우리에게는 시행착오를 할 여유가 없다. 

 
 





[이정우 칼럼 9]
이정우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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