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비 맞으며 10년, 거리의 '야쿠르트 아줌마'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02.28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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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앉아서, 하루 10시간 넘게..."애 뒷바라지하고 살림에 보태야지예"


차들이 정신없이 달리는 삼덕네거리. 골목길 모퉁이에 노랑 아이스박스 6개가 실린 전동카가 서 있다. 같은 색 옷을 입은 한 아주머니가 아이스박스를 열어 각종 요구르트 제품들을 정리했다. 한 아저씨가 다가와 "1봉지 주세요"라고 말하자 아주머니는 아이스박스에서 작은 요구르트 10개가 든 비닐봉지를 꺼내 아저씨에게 건넸다. 요구르트 값으로 받은 1500원은 전동카 서랍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26일 오후 3시 30분. 대구 중구 삼덕동 일대에서 10년째 요구르트 제품을 팔고 있는 김모(50.남구 대명동) 아주머니는 이날도 거리로 나섰다. 아침 7시부터 오전 내내 유동(이동 판매)을 했고 오후에는 삼덕네거리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했다. 조금씩 봄이 다가와 바람이 한결 가벼워졌지만 아주머니는 여전히 추운지 스키바지에 한겨울용 장화까지 신었다. 그나마 핫팩은 이날 가져오지 않았다. 

"날 풀리니 좀 살맛이 나예. 사람들이 밖으로 많이 나와야 장사가 잘되거든예. 밖에서 유동하기가 덜 고생스럽기도 하고. 봄가을에 장사가 제일 잘되고 겨울여름에는 잘 안되예. 오늘은 제법 팔았으예"  


요구르트에 빨대를 꼽고 있는 김모 아주머니(2013.2.26.삼덕네거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요구르트에 빨대를 꼽고 있는 김모 아주머니(2013.2.26.삼덕네거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아이스박스에는 요구르트 제품이 종류별로 담겨 있다. 가장 저렴한 80ml짜리 제품부터 유산균이 10배 강화된 1000원대가 넘는 고급 제품, 과일이 첨가된 떠먹는 요구르트까지. 이날 아침 회사에서 떼 온 값싼 요구르트는 대부분 팔렸지만 비싼 것들은 아직 많이 남았다. 아주머니는 한숨을 쉬며 아이스박스를 열고 요구르트를 정렬시켰다. 그리고, 수첩을 꺼내 판매한 제품명과 개수를 기록했다.

그때, 엄마 손을 잡고 골목길을 지나던 한 아이가 아주머니를 향해 손을 가리키며 "야쿠르트, 야쿠르트"하고 엄마를 졸랐다. 아이는 엄마가 잡기도 전에 횡단보도를 건너 노랑 전동카로 달려왔다. 아주머니는 아이를 향해 생글생글 웃으며 요구르트에 빨대를 꼽아줬다. 그제야 아이 엄마가 다가와 "얼마에요"라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그냥 가세요. 얘가 참 이쁘네요"라고 말하고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노란색 옷 덕분에 요구르트 파는 아주머니들은 어딜 가든 눈에 띈다. 때문에, 멀리서 아주머니를 보고 달려오는 아이들이 가끔 있다. 아주머니는 그럴 때마다 공짜로 요구르트를 나눠준다. 물론, 값은 아주머니가 낸다. 요구르트 판매원은 모두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맛 좀 보자'하고 오는 손님을 매정하게 무시할 수 없다. 동네에서 인심을 잃으면 장사도 잘되지 않는다.

'야쿠르트'는 지난 1969년부터 특정 회사가 판매하던 제품명으로 발효유 일종인 유산균음료(요구르트)를 가리킨다. 이후,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제품을 출시했지만, 40년 동안 '야쿠르트'라는 명칭이 굳어져 많은 사람들은 요구르트 판매원을 '야쿠르트 아줌마'라고 대부분 부른다. 

아이스박스를 열어 손님에게 요구르트를 전달하는 아주머니(2013.2.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아이스박스를 열어 손님에게 요구르트를 전달하는 아주머니(2013.2.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회사에서 한 구역을 정해주면 그만둘 때까지 쭉 가는 거라예. 그래서, 서민보다 부자들 사는 동네가 인기가 많아예. 돈이 되니까예. 근데 삼덕동은 서민들이 많이 살아예.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으예. 아니면 월급 100만원은 어림도 없으예. 얼라들 오면 공짜로 줘예. 홍보 노하우랄까. 호호호" 
          
  
작은 체구에 가느다란 목소리를 지닌 아주머니는 매일 아침 7시 중구 삼덕동 회사 사무실로 출근한다. 그곳에서 제복으로 갈아입은 뒤 그날 팔 요구르트를 아이스박스에 넣어 고유번호가 적힌 전동카에 싣는다. 그리고, 충전이 끝난 전동카 코드를 뽑고 전동카를 밀면서 배달할 곳을 다닌다. 오전에는 유동을 하고 점심시간 쯤 사비로 식사를 한다. 오후1시에는 1곳을 정해 오후 5-6시까지 장사를 한다.

그렇게 밖에서 10-11시간을 일한다. 오전에는 유동을 하느라 전동카에 매달리듯 서서, 오후에는 파랑 우유궤짝을 의자삼아 일한다. 일요일 휴무를 제외하곤 대부분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셈이다. 올 겨울 폭설이 내렸을 때에도 아주머니는 전동카를 끌고 배달을 다녔다. 쉬면 그만큼 벌이가 줄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머니는 아이젠까지 착용하고 발목까지 쌓인 눈을 전동카로 밀어내며 힘겹게 배달을 했다.

"진짜 고생했으예. 전동카도 안움직이고 길에 사람은 없고.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지예. 눈, 비, 맞아도 어떻게 해예. 먹고 살라고 아등바등하는 거지예. 우리 여사님들 다 그래예. 처음에는 서럽다 힘들다 캐도 내 일이고 벌이도 생겨 신나예. 남편 벌이만으로는 가족 먹여 살리기도 힘들고예" 


유동을 멈추고 전동카 옆에서 요구르트를 파는 아주머니(2013.2.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유동을 멈추고 전동카 옆에서 요구르트를 파는 아주머니(2013.2.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요구르트 판매원들은 평균 40-50대 여성들이다. 그러나, 정년이 없어 삼덕동 지구에는 67세 할머니도 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여사님'이라고 부른다. 대부분 주부생활을 하다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에 보탬이 되기 위해 40대 초반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고 김 아주머니도 그 같은 경우다.  

대학까지 졸업한 아주머니는 20대 후반에 지금 남편과 결혼해 딸을 낳았다. 주부로서 살림을 하느라 사회생활을 할 겨를은 없었다. 그러나, 물가는 치솟고 아이 교육비는 점점 버거워져 남편 월급만으로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었다. 전공을 살려 학습지 선생님을 해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나이와 경력 때문에 포기해야 했었다. 그래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찾다 요구르트를 팔게 됐다.  

처음에는 배달만 하는 줄 알았다. 길에서 판매한다고는 상상도 못했다. 또, 요구르트를 팔면 그 돈이 모두 월급인줄 알았다. 그러나, 판매한 돈은 당일 모두 회사에 수납해야 했고 월급은 자기가 판매한 금액의 25%밖에 되지 않았다. 150원짜리 요구르트 1개를 팔면 수수료 37원을 버는 셈이다. 때문에, 10년 전에는 한 달에 50만원도 채 벌지 못했다. 지금보다 수수료도 낮았고 판촉도 서툴렀다.

장사를 접고 전동카를 밀어 회사 사무실로 들어가는 김 아주머니(2013.2.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장사를 접고 전동카를 밀어 회사 사무실로 들어가는 김 아주머니(2013.2.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냥 하면 되는 줄 알았어예. 세일즈를 하러 다녀야 한다고는 상상도 못했으예. 어떻게 생각하면 처음엔 너무 부끄러웠어예. 살림만 하다가 사람들 접촉할라니까 영 어려웠어예. 근데, 딸래미는 커가지 남편 벌이는 시원찮지...애 뒷바라지하고 살림에 보태야 하니까 이 악물고 하게 되더라고예"


이제 아주머니는 평균 120만원정도 월급을 번다. 단골도 늘었고 노하우도 생겼다. 그 덕에 작년에는 세일즈퀸도 됐다. "몸만 버티면 70까지 하고 싶어예. 내가 벌어 옷 사 입고, 맛있는 거 사먹고, 저축도 하고, 애 학비도 대고 그러고 싶어예. 아니 그럴꺼라예" 오후 4시 30분. 밝은 표정으로 말을 하던 아주머니는 아이스박스를 전동카에 싣고 바퀴를 지지하던 나무 조각도 뺐다. 그리고, 달에 한 번 있는 '교육'을 받기 위해 장사를 접고 사무실로 향했다. 노랑 전동카가 천천히 길모퉁이 안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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