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뻥튀기' 아저씨의 다르지 않은 삶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03.08 08:5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영수(53)씨 / 20년 동안 대구 중앙로에서..."자립, 난 자유롭고 행복해"


"뻥이요" 한영수(53.대구 달서구 송현동) 아저씨는 오늘도 뻥튀기 과자를 팔기 위해 전동 휠체어를 타고 길을 나섰다. 도심을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뻥"을 외치며 뻥튀기 봉지를 흔들었다.

때마침 점심 식사를 하러 나온 한 무리의 직장인들이 아저씨에게 다가와 뻥튀기 2봉지를 사갔다. 그리고, 손님이 뜸해지자 아저씨는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외쳤다. "뻥. 뻥이요. 뻥튀기 사세요"

선천성 뇌성마비 1급 장애인 한영수 아저씨는 20년 동안 전동 휠체어를 타고 반월당역과 중앙로역 사이에서 뻥튀기를 팔아왔다. 7일 오전 11시 30분 이날도 아저씨는 반월당역 근처 영풍문고 앞에서 장사를 했다. 뻥튀기 봉지 절반은 인도 한 모퉁이에 세워놓고 나머지 절반은 휠체어에 앉은 무릎에 올려놨다. 하얀색 뻥튀기 봉지는 하반신을 다 가릴 정도로 길게 내려왔다.

"자유롭고 행복해요"라고 말하며 웃는 한영수 아저씨(2013.3.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자유롭고 행복해요"라고 말하며 웃는 한영수 아저씨(2013.3.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무릎에 올려놓고 있어도 뻥튀기는 가벼워서 괜찮아요. 보는 사람마다 옮길 때 도와주려고 하는데 마음은 고맙지만 웬만하면 거절해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나도 할 수 있어요. 20년이나 됐는데 이것 하나 못하겠어요?" 아저씨는 느릿느릿한 말투로 웃으며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심을 오가는 사람 수는 늘었다. 아저씨 목소리도 높아졌다. 하지만 장사는 영 잘되지 않았다. 2시간 가까이 뻥튀기 2봉지를 팔았을 뿐이다. 아저씨는 천원짜리 4장을 주먹손으로 꼭 쥐었다. 게다가, 화창하던 날씨까지 흐려져 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저씨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휠체어 버튼을 눌러 천천히 길 아래로 내려갔다. 휠체어 옆에 매달린 물통이 대롱대롱 흔들렸다.

"날씨가 따뜻해 좋았는데 비가 내리네요. 이런 날은 장사가 잘 안돼요. 나도 비를 피해야 하니까 건물 입구 같은데 서 있어야 하고 뻥튀기 찾는 사람도 잘 없구요. 그래도 손님이 있어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 빨리 비가 그쳤으면 좋겠어요. 우산도 안가지고 왔는데..."


천원짜리 4장과 뻥튀기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는 아저씨(2013.3.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천원짜리 4장과 뻥튀기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는 아저씨(2013.3.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눈, 비 오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9시 아저씨는 월촌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반월당역에 내린다. 오전 10시가 되면 도매상이 뻥튀기 40여봉지를 반월당역까지 배달해준다. 그 때부터 아저씨는 휠체어를 타고 반월당역 근처 삼성빌딩 앞에서 장사를 시작해 중앙로역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뻥튀기를 판다.

그러다보면 시계는 저녁 10시를 가리킨다. 더 오래 장사를 하고 싶지만 지하철이 끊기면 집에 갈 수 없기 때문에 아저씨는 저녁 10시면 장사를 접는다. 목에 걸려 있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고 다 못 판 뻥튀기는 집에 들고 가거나 떨이 판매를 한다.

"일은 재밌어요. 여름, 겨울은 덥고 추워서 힘든데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아요. 햇볕에 얼굴이 탄 것도 건강해 보이죠?" 아저씨는 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 지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도 하루 이틀이에요. 어른이니까 혼자 살 수 있어요. 다른 사람과 다르지 않아요. 장사하면 자유롭고 행복해요"


점심시간 휠체어를 타고 뻥튀기를 파는 아저씨(2013.3.7.반월당 역)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점심시간 휠체어를 타고 뻥튀기를 파는 아저씨(2013.3.7.반월당 역)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렇게 아저씨는 하루 12시간을 휠체어에 앉아 장사를 한다. 화장실은 지하철역이나 주변 빌딩을 이용하고, 점심식사는 거른다. 휠체어 타고 들어가 먹을 만한 식당도 없고, 점심시간이야 말로 장사하기 가장 좋은 황금시간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저씨는 집에 도착하는 저녁 11시쯤 늦은 식사를 한다.

음식은 활동보조인이 만들어 놓고 가지만 독립한 뒤 혼자 먹는 식사는 여전히 쓸쓸하다. 결혼을 하고 가정도 꾸리고 싶지만 아직 짝을 찾지 못했다. 또, 결혼정보회사에 가입하려 해도 장애인 회원 가입을 제한해 시도조차 못해봤다. 지난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장애인 가입 제한은 인권 침해"라며 시정을 권고했지만 대부분 회사는 여전히 장애인 가입을 제한하고 있다.

"외롭죠. 밖에서 장사 할 때는 사람이 많아 덜 외로운데 혼자 집에서 밥을 먹으면 기분이 좀 그래요. 활동보조인도 집에 가고...저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빨리 결혼을 하고 싶어요. 결혼정보회사들이 빨리 인권위 권고를 따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좋은 사람 만나면 하루 쯤 일을 쉴 수도 있어요. 히히"


아저씨는 뇌성마비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젖도 물 수 없을 만큼 근육은 약했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때문에, 부모님은 아들을 극진히 보살폈다. 덕분에 자라면서 혼자 목발을 짚고 다닐 수 있게 됐지만, 넘어지는 일이 많아 휠체어를 탈 수 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아저씨가 다칠까 집 밖으로 잘 내보내지도 않았다. 특수학교인 대구보건학교 과정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뻥. 뻥이요. 뻥튀기"를 외치는 아저씨(2013.3.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뻥. 뻥이요. 뻥튀기"를 외치는 아저씨(2013.3.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33살이 된 이후 더 이상 부모님께 의지해 살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모님은 반대했지만 아저씨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렇게 아저씨는 지금 살고 있는 작은 아파트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경제 자립을 위해 여러 회사에 이력서도 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하나같이 싸늘했다. '힘들 것 같다'는 것이었다. 번번이 거절당한 끝에 아저씨는 아는 사람 소개로 뻥튀기를 팔기 시작했다.

한 봉지 2천원짜리 뻥튀기를 팔아 한 달 수입은 50만원이 채 되지 않지만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돈을 벌고 생활을 한다는 것이 즐거웠다. 새로운 계절을 직접 느끼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 기뻤다. 저축하고, 신문 읽고, 출근 하고, 퇴근 하는 일상이 매일 새롭게 느껴졌다.

"나는 자립을 위해 생활비를 직접 벌어 쓰고 그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에요" 아저씨는 말했다. 또,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취재한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어요. 그러나, 장애인도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50년 만에 누군가에게 내 얘기를 하니 속이 다 후련해요"라고 털어놨다.

[평화뉴스 - 길 위에 서민 13 (전체 보기)]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