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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격과 품위있는 사회

기사승인 2013.03.22  09:3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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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원 /『품위있는 사회』(아비샤이 마갈릿 지음 | 신성림 옮김 | 동녘 | 2008)


전직 대통령이 대한민국 ‘국격’을 자주 언급하던 때가 있었다. 국격이 왜 필요한지, 국격의 평가기준은 무엇인지, 또 전직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국격이 높아졌다고 말한 이들은 누구인지, 저절로 질문이 많아졌다.

어떤 경우에 국격이 높다고 할 수 있을지 정확히 말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아비샤이 마갈릿(Avishai Margalit)이 쓴 『품위있는 사회』라면 적어도 손가락질은 받지 않을 정도의 국격을 갖출 것같다.

   
▲ 『품위있는 사회』(아비샤이 마갈릿 저|신성림 역|동녘|2008)
내가 『품위있는 사회』(The Decent Society)의 영어 원문에 나오는 ‘decent’를 자주 접하는 경우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제시한 괜찮은 노동(decent work)의 개념과 관련된 내용을 볼 때다. 괜찮은 노동은 좋은(good) 수준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노동이나 일자리의 질이 인간의 존엄성은 지킬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저자도 the good society까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the decent society 정도는 되어야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저자가 정의한 품위있는 사회란,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이다. 여기서 모욕의 반대말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다. 품위있는 사회란 구성원을 존중하는 사회라고 적극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모욕하지 않는 사회라고 소극적으로 규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세 가지 이유를 들지만, 그 중에서 고통을 제거하는 일이 즐거움과 이익을 주는 일보다 더 급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온다.

 “. . . 수도권 도시에서 세 자매가 극심한 영양실조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중 둘은 발작 증세를 보이고, 골다공증으로 뼈가 부러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 반찬이라고는 고추장밖에 없는 밥이나 라면을 먹으며 냉골의 지하 월세방에서 몇 년을 그렇게 지냈다는 것이다. 떠돌이 노동자인 아버지가 얼마간의 생활비를 보내주었지만, 그중 절반도 아이들 손에 전달되지 않았고. . .”(시사IN, 282호, 2013. 2. 20).

이 극심한 고통을 겪은 세 자매를 제대로 먹이는 일은 삼시 세끼 먹는 사람들의 다른 이익을 증가시키는 일보다 훨씬 더 급한 일이다. 이처럼,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인간존엄성을 우선적으로 회복시켜주는 제도가 작동해야 품위있는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품위있는 사회를 논의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배경”이 국가라고 본다. 결국 국가가 만드는 제도의 내용과 운용방식이 구성원에게 모욕을 주는지 아니면 구성원을 존중하는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등시민을 만들어내는 제도는 그 구성원을 존중하지 않고 모욕을 준다. 이등시민권은 박탈이자 모욕이며, 이등시민이 되었다는 느낌만이 아니라 이류인간이 되었다는 느낌까지 준다.

이등시민을 만드는 원인 가운데 하나인 빈곤을 보자. 저자는 경제?사회적 권력이 결핍된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법적?정치적 의미에서도 온전한 시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자발적이지 않은 가난은 사람들이 존엄하다고 생각하는 생활양식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차단하는, 인간 존엄성을 좀먹는 모욕적인 문제이다. 이같은 “가난을 근절하기 위해, 적어도 가난의 모욕적인 성격을 일부라도 제거하기 위해” 바로 복지국가가 만들어진 것이다.

복지국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제도가 가난한 사람들을 모욕하는 일이 당연했다. 아니, 차라리 사람들을 모욕주기 위해서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복지국가를 정착시켰던 영국이지만, 게으른 엉터리 가난뱅이들의 정신을 개조한다는 명분 아래 구금과 처벌을 비롯하여 온갖 모욕을 주면서 구빈 대상을 엄격하게 심사하던 빈민법시대가 있었다. “실패의 책임을 가난한 사람들의 좁은 어깨 위로 던지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런 관행은 21세기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변용될 뿐이다. 

“. . . 김 총리는 16일 오전 글로벌문화경제포럼 주최 특강에서 “복지는 국가의 의무이고 사회의 의무인데 복지의 혜택은 권리나 쟁취의 결과는 아니라는 사회의 인식이 있었으면 한다”며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은 당당한 이익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고마움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겸손하고 원칙을 지키고, 고마움을 알고 절제하는 나라가 될 때 품격있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노컷뉴스, 2011. 3. 16).

대한민국 헌법 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지며,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명시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나라의 총리가 복지수급자에게 고마워하라고, 그래야만 품격있는 나라가 된다는 발언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모욕을 주는 국가에서 무슨 품위를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는가.

정치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회적 약자에게 모욕을 주는 이들에게는 저자가 인용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품위있는 배려야말로 문명이 거쳐야할 진정한 시험”이라는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의 말을 들려줘야 할 것이다. 또한, “정말로 심사를 거쳐야할 것”은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빈곤을 구조적으로 확대시키는 우리 사회이다. 덧붙여, 엄격하게 심사해야할 대상이 하나 더 있다. 국가의 품격을 논하기 전에 자신의 인격과 공직자윤리를 먼저 살피는 능력과 의지도 없이, 사회적 약자에게 모욕을 주면서도 한 나라의 고관대작을 지냈다는 이유로 후대까지 잘 살아가는 고위공직자들 말이다. 

   





[책 속의 길] 95
공정원/ 동양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평화뉴스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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