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6시간 근무, 휴일도 없는 학교경비의 절규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04.1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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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교육청ㆍ학교ㆍ용역업체 상대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위반" 진정 / "관행"


"하루 16시간 근무가 말이 됩니까. 게다가, 휴일도 없이 반값만 받고 일하고 있습니다. 용역업체도 도둑놈이지만 더 나쁜 건 교육당국입니다. 근로기준법은 왜 학교경비에게는 하나도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까. 다들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말하는데 왜 우리만 이렇게 서러움을 받아야 합니까" 


대구 달서구에 있는 D중학교에서 1년간 경비원으로 일한 송윤식(69)씨는 16일 이같이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송씨는 지난해 3월부터 D학교 경비로 일하다 올 2월 해고당했다. 학교 측은 "불성실한 태도"를 해고 이유로 들었지만 송씨는 "노조에 가입해 부당노동에 항의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송씨는 지난해 초 수성구 황금2동에 있는 S경비용역업체와 1년짜리 고용계약을 맺고 D중학교 경비로 배정 받았다. S업체는 대구지역 100여개 학교와 계약을 맺고 있는 대형업체다. 이후, 송씨는 매일 오후 4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8시 30분까지 하루 16시간 동안 학교에서 일했다. 금요일에는 월요일 오전까지 64시간 동안, 명절이나 연휴에는 4-5일 동안 학교에 갇힌 채 일했다.

'당직경비 고용을 보장하라'(2013.4.16.대구지방노동청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당직경비 고용을 보장하라'(2013.4.16.대구지방노동청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순찰과 시설관리, 미화, 문단속은 물론이고 저녁 10시 이후 학교로 걸려오는 전화도 받았다. 식사는 음식 재료를 가져와 직접 해 먹었다. 학교 밖을 나가야 하는 때도 있지만 '근무지 이탈'로 임금이 삭감되고, 학교 안 무인정찰기를 작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나가지 못했다. 어머니 제사 때 하루 휴무를 낸 적 말고는 1년간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

그러나, S업체는 식사시간 1시간 30분과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를 '휴게시간'으로 지정해 하루 16시간 근무 중 9시간 30분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의 경우는 노동부의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의해 저녁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를 야간근로로 인정해 시급의 1.5배를 줘야 하지만 이 시간을 아예 근무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하루 8시간만 근무시간으로 인정해도 경비원의 경우 최저임금(2012년 기준 4,580원)의 90%인 4,122원을 시급으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업체는 송씨에게 배달 131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송씨는 받은 월급은 94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또, 업체는 월 2회 휴무를 보장한다고 계약서에 명시했지만 자신들이 '부여하는 경우만 쉴 수 있다'고 단서조항을 달아 휴무를 사용하기 어렵게 했다.

'학교 경비원에 대한 처우개선 촉구 기자회견'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학교 경비원에 대한 처우개선 촉구 기자회견'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와 관련해,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 대구지부'는 16일 대구지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구시교육청과 D중학교, S업체를 상대로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 위반" 사항에 대해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진정서를 통해 "휴일도 없이 근무했지만 쌀과 반찬도 지급받지 못하는 야만적 상황에 처해있다"며 "어디서도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 진정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때문에, 대구지부는 ▶식사시간과 휴게시간 근무시간으로 인정 ▶9시간 30분에 대한 체불임금 지급 ▶최저임금 보장 ▶월 2회 휴무보장 ▶ 주말 3박 4일, 하루 16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 중단 ▶야간근로 인정 ▶근로계약서 노동자에게 지급을 촉구하며 "더 이상 문제를 방치하지 말고 엄정한 법 절차를 통해 성의 있는 대책마련에 나서달라"고 요구했다.

조대석 지회장은 "고령이라고 경비를 무시하지 말라. 더 이상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수 없다. 체불임금을 지급하고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했다. 이병수 조직국장은 "경비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진정을 통해 위법 사항이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배일 대구경북본부장은 "노예나 다름없는 경비 노동 현실에 충격 받았다.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왼쪽부터)조대석 지회장, 이병수 조직국장, 박배일 대구경북본부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왼쪽부터)조대석 지회장, 이병수 조직국장, 박배일 대구경북본부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에 대해, 교육청과 D중학교, S업체는 "전국 학교가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라며 "관행"이라고 해명했다. 또, 교육청은 "학교와 업체 간 계약"이라며 "교육청은 책임 당사자가 아니다"고 했고, 학교와 업체는 "식사시간과 휴게시간과 근무시간이 아니다"며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박정희 대구시교육청 총무인사팀 계장은 "고용 당사자는 학교장이다. 지금 노동 조건도 학교장의 고유권한이다. 교육청이 세부적 사항까지 정할 수 없다. 대부분 학교의 관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해마다 문제를 지적받고 있어 대안을 검토 중"이라며 "전면 시정은 어려워도 무인 경비 시스템을 설치해 노동 시간을 축소시키거나 휴게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 대구지부'가 대구지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공공운수노조 학교비정규직 대구지부'가 대구지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D중학교 김모 교장은 "경비업체가 제출한 계약서에 서명만 할 뿐 세부내용은 우리가 지정하는 게 아니다. 업체가 달라는 대로 돈도 냈다. 다른 학교도 이 관행을 따르고 있다"고 했다. 또, "저녁에는 업무가 별로 없어 노동시간으로 볼 수 없고 휴일 근무는 당연하다"며 "감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송씨 해고에 대해서는 "불성실한 태도 때문에 계약해지했을 뿐 노조가입과는 상관없다"고 했다.

S업체 이모 관리이사는 "저녁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는 경비원 자유시간이지 근무시간이 아니다"며 "때문에 임금도 지급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전체 학교가 그렇다. 관행이다. 교육청과 노동청의 제재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순찰을 돌고나면 하는 일이 별로 없어 경비원 대부분은 숙직실서 잔다. 특별히 억압한 일이 없다. 잘못된 게 있다면 벌을 받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시정할 것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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