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걸음, 오늘도 길 위에 선 '서민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05.13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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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편 연재를 마치며..."우리 가까이, 삶의 현장은 만만치 않았다"


4개월 넘게 <길 위에 서민>을 취재했다. 60여명의 취재원을 만나고 20편의 기사를 썼다. 1월부터 5월까지 '서민'이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 갔다. 언제 어디서나 그들을 볼 수 있었지만 잘 몰랐던 현실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고 때로는 분노를, 슬픔을,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삶의 현장은 만만치 않았다.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끝으로 정치시즌이 마무리됐다. 2013년 새해, <평화뉴스>는 새로운 의제를 정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여러 가지를 고민한 끝에 "다시 서민이다"는 결론을 냈다. 2012년이 정치의 해였다면 새해는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조명하길 바랐다. 그래서, 서민들이 살고 있는 현장을 찾아가 현실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

동성로에서 젊은이들에게 전단지를 돌리는 김모(80) 할머니(2013.1.7)
동성로에서 젊은이들에게 전단지를 돌리는 김모(80) 할머니(2013.1.7)

언론에 비치는 서민은 언제나 '안타깝고', '슬프고', '애처롭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서민들은 자신의 일에 애착과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쁘지만 한숨을 쉬고 기지개를 켜고 다시 한발을 내딛는다.

매주 취재원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거리를 다니다가 '저 사람 얘기 궁금하다' 싶으면 전화번호를 물었다. 하지만, '되겠지' 싶어 보고를 해도 편집장은 '안되는 건 아닌데 다시 생각하자'고 거절하는 날도 있었다. 때문에, 기준을 놓고 입씨름을 하기도 했다. 또, 어렵게 찾아도 '곤란하다'며 퇴짜를 놓는 경우도 있었고 승낙을 받아 찾아가면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범어4동 학원가 차도에서 폐지가 담긴 리어카를 끌고 있는 이모(69) 할머니(2013.1.3)
범어4동 학원가 차도에서 폐지가 담긴 리어카를 끌고 있는 이모(69) 할머니(2013.1.3)

첫 회는 수성구 범어동 거리에서 만난 폐지 줍는 할머니였다. 시작을 고민하며 1시간 동안 거리를 헤매던 중 우연히 만났다. 취재를 위해 어렵게 말을 붙였다. 할머니는 '왜'라고 짧게 물었다. 의미를 횡설수설 설명했다. '떨어져 따라오라'는 허락이 떨어졌다. 할머니는 한파 속을 4시간 동안 걸어 2천원을 벌었다. 지폐를 주머니에 넣던 할머니 모습이 선하다. 지난해 겨울은 몹시 추웠다.

마지막회는 1주일을 고민했다. 가장 힘들고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취재하기로 했다. 결론은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가족과 떨어져 홀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그들. 후세인은 그렇게 만났다. 한국의 대기업 공장에서 일을 하던 중 손가락 세 개를 잃고 체불된 임금을 여전히 받지 못하고도 '한국이 밉지 않다'던 그.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다. 

아침부터 연탄을 배달하는 김대석(63) 아저씨(2013.2.14.북구 고성동1가)
아침부터 연탄을 배달하는 김대석(63) 아저씨(2013.2.14.북구 고성동1가)
겨울비 맞으며 리어카 끌고 고철더미 앞에 선 이모(70) 할아버지(2013.1.21.동인동)
겨울비 맞으며 리어카 끌고 고철더미 앞에 선 이모(70) 할아버지(2013.1.21.동인동)

거리에서 취재하는 경우가 많아 날씨에 애를 먹기도 했다. 고철 할아버지를 취재하던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와 정말 추웠다. 수레를 따라 3시간 걸으면서 사진을 찍고 얘기를 하느라 우산도 못썼다. 카메라만 보호하고 온몸이 비로 젖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도 맨몸으로 일을 해 그 편이 자연스러웠다. 

대리기사 취재는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져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했다. 중국집에서 취재원과 함께 자장면을 먹고 콜이 뜰 때마다 동선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손님들이 '사진을 왜 찍냐', '합승은 안된다'고 말해 택시를 타고 쫓아야만 했다.

아파트 경비원은 취재원 찾기가 가장 어려웠다. 대구시내 아파트 10곳을 4-5시간 동안 돌아다녔지만 대부분 취재를 꺼려했다. '사정은 알겠다. 해주고 싶다. 그런데, 보는 눈이 많아 힘들다'고. 3개월마다 재계약 하는 불안한 신분을 알기에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행상 아저씨를 취재하던 날에는 트럭을 따라 뛰는 도중 동네에 있던 큰 개가 쫓아와 온 힘을 다해 도망가기도 했다. 정말 무서웠다.  

명덕시장에 있는 한 식당 앞에서 손님의 차문을 여는 대리운전 기사 박모(38)씨(2013.4.12)
명덕시장에 있는 한 식당 앞에서 손님의 차문을 여는 대리운전 기사 박모(38)씨(2013.4.12)
10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모(68) 할아버지가 경비실에서 차량을 감시하고 있다(2013.3.29)
10년째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모(68) 할아버지가 경비실에서 차량을 감시하고 있다(2013.3.29)

취재원 사정상 기사가 나오지 않은 경우도 있다. 퀵서비스 기사는 원래 '여성'을 취재했다. 그러나, 취재를 마친 다음 날 취재원에게서 '대구에 여자 기사가 얼마 없어 내 얘기 다 안다. 직장이 알려지면 어머니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할지도 모른다. 부담스럽다. 기사 내지 말아 달라'는 전화가 걸려왔다.

서문시장에서 30년째 칼을 갈던 아저씨는 취재를 약속한 날 전화기를 꺼놓고 아예 시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2번이나 더 찾아갔지만 아저씨는 그 곳에 없었다. 다른 노점상들이 '며칠 보이지 않는다'며 걱정스런 말만 전했다. 나의 취재 때문에 30년 동안 장사하던 곳을 떠났을까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기사를 보고 '고맙다'고 연락한 사람도 있었다. 폐지 줍는 할머니는 고물상 주인 스마트 폰으로 기사를 보고 '밥을 사준다'고 연락을 해왔다. 고마운 마음에 내가 식사를 대접했다. 할머니는 '아무도 관심 없는 내 얘길 들어줘 고맙다'며 '폐지 있으면 다시 연락 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취재 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캠퍼스 환경미화원 아주머니는 '기사를 잘 봤다'며 내 두 손을 꼭 잡고 악수를 한 뒤 가방에 싸온 떡을 건네줬다. 소박했던 그 감동들을 여전히 잊지 않고 있다.

9년째 대구가톨릭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미숙(59)가 화장실 타일 때를 벗기고 있다(2013.4.18)
9년째 대구가톨릭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미숙(59)가 화장실 타일 때를 벗기고 있다(2013.4.18)

'길 위에 서민'에 나왔던 사람들은 아직 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눈 덮인 거리에서 만난 폐지 줍는 할머니, 동성로에서 전단지 돌리는 할머니, 폭설에도 오토바이를 몰던 중국집 배달원, 길가에서 도라지 껍질 벗기던 노점상, 새벽 3시면 매천시장으로 가는 행상, 겨울비 맞으며 고철 줍던 할아버지, 20kg짜리 가스통을 어깨에 짊어진 도시가스 배달기사, 45년째 자전거 타고 계란 팔던 할아버지.

하루 15시간 노점에서 수제비를 팔던 모자, 검댕 마를 날이 없는 연탄배달부, 아슬아슬하게 도로를 질주하던 퀵서비스 기사, 삼덕동 야쿠르트 아줌마, 휠체어 타고 '뻥튀기 팔던 아저씨, 대학에서 40년째 김밥 팔던 할머니, 칠성시장 구두 수선공, 24시간 일하는 아파트 경비원, 대구시내 곳곳을 누비던 대리운전 기사, 퉁퉁 부은 손으로 바닥을 닦던 캠퍼스 청소부, 목공소에서 일하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퀵서비스 기사 경력 10년차 이모(56) 아저씨가 마지막 콜을 누르고 있다(20213.2.21)
퀵서비스 기사 경력 10년차 이모(56) 아저씨가 마지막 콜을 누르고 있다(20213.2.21)

모두 우리 가까이 있다. 길을 걷고 버스를 타면 멀지 않은 곳에서 볼 수 있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이자 할아버지, 할머니이며 아들, 딸이자 손자, 손녀다. 나의 가족이나 내 얘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의 애환이 묻어났다", "가족 얘기다. 내가 다 고맙다"고 말한 독자도 있었다. 반면, "특수 상황을 일반화 시킨다", "슬프기만 하다", "체험 삶의 현장 같다"고 질책 하던 분들도 있었다.

모두 고맙다. 기사를 쓰면서 감상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오버하거나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다 전하지 못한 부분도 있어 아쉽다. 다음에는 독자들의 말을 새겨 더 나은 기사를 쓰겠다. '길 위에 서민' 기획연재는 20편으로 끝이 아니다. 못 다 전한 얘기가 많다. 취재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취재노트에 아직 남아있다. 때문에, 매주는 아니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이어질 예정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자신의 사연을 들려준 '길 위에 서민들'에게 진정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평화뉴스 - 길 위에 서민 (전체 보기)]






[길 위에 서민 - 에필로그]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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