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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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박진영 / 『긍정의 배신』(바버라 에런라이크 저 | 전미영 역 | 부키 | 2011)


“난 밥먹는 거 싫어”
“난 노래하는 거 싫어”
무엇이든 친구들이 하는 말에 엇박자로 대꾸하며 표정까지 찡그린 불평불만의 아이콘 ‘투덜이 스머프’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고 원만한 대인관계와 성과를 발판으로 이 시대에 성공을 이룰 수 있을까. <투덜이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쓴 이는 부정적인 생각은 상처위에 생긴 딱지와 같아서 그것은 상처를 보호해 주지만 인간적인 성숙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니, 뭣하면 치료상담을 받으라고 권고한다. 하지만 나는 웬지 끌렸다. 실패와 좌절이 예약된 ‘투덜이 스머프’의 대책없음이 위로가 되었던걸까.
 
 
 
새천년이후 바야흐로 세상은 과잉긍정의 시대가 되었다. 자연과학의 물리적파장까지 들먹이며 모든 결과는 나의 끌어당김에 의해 일어난다는 <씨크릿>은 이제 비밀도 아닌 성공의 제1원칙이 되었다. 당장의 욕구를 참고 달콤한 보상을 위해 참는 아이들이 성공한다는 <마시멜로>까지 등장하면서 ‘긍정주의’의 신화는 보편적 삶의 원리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긍정의 배신>을 만났다.(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은 영어로는 각각 다른 제목이지만 한국에서는 ‘배신시리즈’로 불리는 <노동의 배신>,<희망의 배신>이라는 제목으로 세권이 발행되었다. 나는 역시 이런 제목에 끌리는 거 같다.) 2011년 번역되어 나왔으니 어느새 2년이 흘렀다. “긍정적 사고는 개인 및 국가 차원의 성공과 결부된 미국적 행동 양식의 정수이지만 그 근원에 놓인 것은 무시무시한 불안감”이라는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긍적적사고’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방암은 나를 더 아름답거나 강하게 만들어 주지 않았다. 더 여성적이거나 영적으로 만들어 주지 않았다. 굳이 유방암을 ‘선물’이라 불러야 한다면 내가 받은 선물은 이 개인적 경험을 통해 전에는 알지 못했던, 우리 문화에 내재된 이데올로기의 힘에 고통스럽게 부딪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이데올로기는 현실을 부정하고, 불행에 즐겁게 굴복하고, 닥친 운명에 대해 오직 자기 자신을 비난하라고 말한다”(72쪽)

암을 선물로 받아들이고 긍정성을 고무하는 것이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는 믿음을 주사하는 ‘핑크리본’과 같은 운동은 환자에게 병을 불러온 것도 자신이고, 그 병의 결과를 좌우하는 것도 자신의 긍정적 태도라고 가르친다. 더욱 불편한 것은 이런 태도를 통해 편해지고 이득을 취하는 건 사실 온갖 시술로 암환자를 치료한다는 병원자본과 온갖 시달림에도 쾌활함을 유지하라는 기술을 가르치는 자들의 주머니가 아닐까하는 의심이다.

사실 이 책을 읽기전까지, 그 즈음까지 나도 긍정심리학 시장의 소비자가 되어야하지 않을까하는 소심증에 시달렸던거 같다. 그리고 심지어 요구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어쩌겠어, 세상은 당장 변하지 않을 것이고 바꿀 수 있는 건 내가 소유한 유일한 자신이 내 자신뿐이니, 열정을 가지고 더 많이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잘 될 것이라는 주문을 외우는 수밖에“라고 말이다. 약간의 ’당의정‘과 ’마약‘은 필요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안에서 ’긍정의 심리학‘은 교조적 영역을 차지했다.

“적절한 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해, 혹은 더 인간적인 기업 정책을 요구하기 위해 사회운동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평생 노력을 바쳐야 한다. 지금 당장 가능한 것은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뿐이다.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현실을 기껍게 받아들이고 아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기업이 해고된 노동자들과 과로에 시달리며 아직 버티고 있는 직원들에게 주는 최대의 선물, 곧 긍정적인 사고다.”(165쪽)

여전히 나는 주변사람들에게 댓가를 생각지 않는 ‘열정’을 요구하고, 목적의 선의를 내세워 물질적 보상을 바라는 행위를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건 아닐까. 생각과 말로는 열정에서 노동을 착취하고, 긍정적 태도로 정당한 비판을 거세하려는 자본주의 시대 새로운 교리를 비난하지만 몸에 배인 미국식 청교도주의(나에게 진정 그런게 있었다니^^)로 “당신에게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건 아닌지 투덜이 스머프에게 자문을 받아야겠다.

“긍정적 사고에서 제시하는 화려한 우주는 북극광이 드넓게 펼쳐져 빛나는 가운데 욕망이 그것의 실현과 자유롭게 결합하는 곳이다. 거기서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당신이 바라는 그대로 이루어지니다. 꿈은 밖으로 나가서 자기를 실현하고, 소망은 명확하게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그 우주는 지독히 외로운 곳이다.”(110쪽)
 
 
 





[책 속의 길] 112
신박진영 / 대구여성인권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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