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고마해라, 흉물스런 송전탑 고마 세워라"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12.2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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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평리주민, 밀양 故유한숙 추모 "공사중단, 사죄" / 한전 '공사방해금지가처분' 신청


"어찌해야 하노. 힘 없는 내가 뭘로 막노. 우리 주민 다 죽어야 송전탑 공사 멈추나. 한참 살 나이인 생목숨들, 그 아까운 목숨들 얼마나 더 죽일라카노. 이제 고마해라. 흉물스런 송전탑 고마 세워라"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주민 이억조(74) 할머니는 20일 대구 한국전력공사 대경개발지사 앞에서 열린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고(故) 유한숙(71) 할아버지 추모집회에서 이같이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할머니는 "벌써 2명이 죽었다"면서 "송전탑 공사를 멈추고 더 이상 희생이 없길 바랄 뿐"이라고 소망했다. 55년째 삼평리에서 살고 있는 이 할머니는 한전이 자신의 집과 밭 근처에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자 지난 2010년부터 4년 가까이 '송전탑 공사 반대' 운동을 하고 있다.

'근조' 리본을 단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할머니들(2013.12.20.한전 대경지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근조' 리본을 단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할머니들(2013.12.20.한전 대경지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추모집회에 참석한 다른 주민들도 유 할아버지의 죽음에 울분을 토했다. 눈이 채 녹지 않은 아스팔트 도로 위에 자리를 잡은 할머니 10여명은 검은색 근조(謹弔) 리본을 가슴에 달고 유 할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했다. 김춘화(63) 할머니는 "살려고 발버둥 치다 결국 사람이 죽었다. 국가는 뭐하느냐. 이제 그만해라. 송전탑 들어서는 꼴 못본다. 죽음으로라도 막겠다는 생각 나도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청도 각북면 삼평1리 송전탑반대주민대책위원회와 대구환경운동연합 등 17개 단체가 참여하는 <청도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는 20일 한전 대경개발지사 앞에서 '故 유한숙 할아버지 추모・한전 규탄 집회'를 열고 "송전탑 공사 중단"과 "고인에 대한 사죄"를 촉구했다. 이 자리에는 주민과 시민단체 활동가 등 50여명이 참석했으며 1시간동안 진행됐다.

밀양 상동면 고정마을 주민 유 할아버지는 지난 2일 송전탑 공사를 비관해 맹독성 제초제를 마시고 6일 새벽 숨을 거뒀다. 앞서, 2012년 1월 밀양 산외면 희곡리 보라마을 고(故) 이치우(74) 할아버지도 같은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또, 지난 13일에는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던 밀양 동화전마을 주민 권모씨(53)가 공사장 주변에서 40알의 수면제를 먹고 쓰러져 병원에 이송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유한숙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청도대책위(2013.12.20.한전 대경지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유한숙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든 청도대책위(2013.12.20.한전 대경지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와 관련해, 청도대책위는 "유한숙 할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바로 한전과 정부"라며 "경찰병력과 공무원을 투입해 폭력적으로 공사를 강행한 것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밀양 주민들과 똑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청도 각북면 삼평리 주민들도 언제 공사가 재개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 놓여 있다"면서 "전국의 모든 송전탄 공사를 중단하고 대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전은 지난해 9월부터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삼평리 송전탑 공사를 중단한 상태다. 전체 3기(22~24호) 가운데 2기는 이미 송전탑을 세워 공사를 마무리했지만, 주민들과 시민사회의 반대가 거세져 23호기 1기는 1년 넘게 공사를 멈췄다. 올해 10월 밀양 공사를 재개하면서 삼평리도 다시 공사를 할 계획이었으나 밀양 반대 여론이 심화되면서 공사가 지연돼 삼평리 공사는 일시 중지시켰다.  

'故 유한숙 할아버지 추모・한전 규탄 집회'(2013.12.20.한전 대경지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故 유한숙 할아버지 추모・한전 규탄 집회'(2013.12.20.한전 대경지사)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지난 11월 한전 대경개발지사는 주민 17명과 대책위 활동가 6명 등 모두 23명을 상대로 대구지방법원에 '공사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내고 "공사를 방해하면 하루에 1인당 100만원씩 청구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때문에, 대책위는 이날 추모집회 후 두 번째 재판에 참석했다. 변호인은 '석궁 사건' 항소심에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를 변호한 것으로 유명한 박훈(47) 변호사가 맡고 있다.

이에 대해, 황성하 한전 대경개발지사 차장은 "밀양 공사를 마무리 못했기 때문에 그곳에 집중하고 있다"며 "올해 안에 청도 공사 재개는 힘들 것으로 본다. 일시 중단한 상태"라고 말했다. 또, "가처분 신청에 대한 재판 결과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공사 유무와 시기는 재판 결과에 따라 결정 될 것"이라고 했다. 유한숙 할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해서는 "그것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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