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숨진 중증장애인...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3.12.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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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 때문에 활동보조서비스 못받아..."대구 복지체계 총체적 부실" / 시 "활동보조 확대 힘들다"


"대구시는 더 이상 장애인을 죽이지 말라"는 팻말과 함께 국화꽃을 든 시민(2013.12.31.대구시청)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시는 더 이상 장애인을 죽이지 말라"는 팻말과 함께 국화꽃을 든 시민(2013.12.31.대구시청)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장애인단체가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중증장애인 화재사망사건과 관련해 "지역사회 제도부실에 따른 사회적 타살"이라며 대구시와 달서구청에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420장애인차별철폐대구투쟁연대', '반빈곤네트워크'는 31일 대구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29일 달서구 상인동 모 임대아파트에서 중증장애인(55.지체장애 3급) 이모씨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해 "대구 복지정책의 총체적 부실결과"라고 비판했다. 이 자리에는 시민 1백여명이 참석했으며 이들은 국화꽃을 들고 고인을 추모했다. 또, 대구시에 '공식사과 및 재발방지대책 촉구서'를 전달하고, 오후 2시에는 달서구 주민생활지원 국장과 면담을 가졌다. 

'공식사과 및 재발방지대책 촉구서'를 전달하는 모습(2013.12.31.대구시청)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공식사과 및 재발방지대책 촉구서'를 전달하는 모습(2013.12.31.대구시청)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앞서, 지난 29일 오후 12시 30분쯤 이모씨는 상인동 자택에서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달서경찰서는 이모씨가 누운 자리에서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한약을 가열하던 중 가스레인지가 폭발하면서 발생한 화재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이모씨는 시각장애 1급 노모 안모(88)씨와 단둘이 생활하던 기초생활수급자였다. 그러나, 이모씨와 안모씨는 장애등급 '3급', '65세 이상'이라는 이유로 모두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활동보조서비스는 장애등급 1・2급을 대상으로 한다.

때문에, 이모씨는 지난해 8월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기 위해 '등급 변경'을 달서구청에 요청하고 담당자와 함께 등급심사 병원을 찾았지만, 담당 의사는 "변경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이후 달서구청은 혼자 거동을 하지 못해 몸에 '욕창'까지 생겼던 이씨 사정을 고려해 오후 1~5시까지 하루 4시간짜리 방문요양서비스를 보건복지부에 신청하고 이씨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날 사고는 이모씨 어머니가 잠깐 집을 비우고, 요양사가 오기 30분 전에 발생했다.

이와 관련해, 장애인단체는 지난해 활동보조인 퇴근 후 발생한 화재로 지난해 목숨을 잃은 뇌병변 1급 김주영(33.서울 성동구)씨, 인공호흡기 호수가 빠져 질식사 한 근육장애 1급 허정석(30.경기 광명시)씨, 부모가 일하러 간 새 화재로 숨진 발달장애인 박지우(13.경기도 파주), 뇌병변 1급 박지훈(11) 남매 사건을 언급하며 "떠난 이들에 대한 눈물이 마르기도 전 또 엄혹한 현실을 마주했다"며 "불난 집에서 못빠져나간 이모씨 죽음은 대구시의 장애인 복지정책 사각지대 맨살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대구 장애가정 중증장애인 화재사망사건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 촉구 긴급 기자회견'(2013.12.31.대구시청)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장애가정 중증장애인 화재사망사건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 촉구 긴급 기자회견'(2013.12.31.대구시청)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특히, '장애등급'과 관련해 "활동보조서비스를 24시간 받았다면 불상사는 없을 것"이라며 "도대체 누굴 위한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공약을 내건 것에 대해서도 "현실을 외면한 박근혜 복지의 실상"이라고 비난했다.  
        
또, 이모씨가 시각장애 1급 노모와 단둘이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으며 생활한 점에 대해 "주민센터, 달서구, 대구시 어느 곳도 위기가정 상황을 파악한 곳이 없었다"면서 ▷유족에 대한 공식사과 ▷재발방지대책마련 ▷지역사회 위기가정 실태파악 ▷중증장애인 활동지원 확대시행을 촉구했다. 

박명애 420장애인차벌철폐대구투쟁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대구시, 달서구, 활동보조제도와 장애등급심사를 하는 국민연금공단 등 지역사회에서 방지할 수 있었던 사고였음에도 관리부실로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했다"며 "장애등급은 개인환경이 반영되지 않는 획일적 서비스다. 재발을 막으려면 장애등급제를 폐지해야 한다. 이번 참사는 단순 화재가 아닌 사회적 타살"이라고 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대책마련 촉구 팻말을 든 시민들(2013.12.31.대구시청)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고인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대책마련 촉구 팻말을 든 시민들(2013.12.31.대구시청)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권덕환 대구시 사회복지여성국 복지정책관은 "개인과실에 의한 화재사고"라며 "안타가운 사정을 고려해 장제비나 기타 비용을 시에서 지원할 수 있지만 공식사과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활동보조서비스는 국비와 시비 매칭사업으로 많은 예산이 든다. 국가가 예산을 대폭 지원하지 않는 이상 대구시의 자체적 확대 시행은 힘들다"며 "대신 내년에는 지금보다 10억원 정도 예산을 증액해 서비스대상도 100여명 정도 늘일 것"이라고 말했다.

달서구청 주민생활지원과 중증장애인 활동지원 담당자는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면서 "그러나, 달서구는 그 동안 정부 정책에 맞춰 모든 지원을 했다. 부주의에 의한 개인적 과실까지 예방하지 못한 잘못은 있지만 너무 가혹한 질책은 삼가달라. 앞으로 지역 내 사례관리에 더 신경쓰고 유사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지대책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모씨 장례식은 31일 오전 보훈병원에서 진행됐으며, 장제비는 대구시, 달서구, 보건복지부가 각각 지원했다. 이모씨의 노모 안모씨는 자택이 복구될 때까지 송현동에 있는 노인요양병원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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