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누구의 이익을 대변했는가"

평화뉴스
  • 입력 2004.10.2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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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락 칼럼 10 > 신행정수도이전 위헌 결정
..."기득권층을 대변한 것 아닌가"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을 위헌으로 판정한 지 근 일주일 정도 지났다. 그 동안 헌재의 위헌판결이 갖는 타당성과 부적절성에 대해 전문가라 할 수 있는 헌법학자들 뿐 아니라 정치인, 언론인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가히 입 있는 자들은 한 마디씩 다 한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만큼 이 사안이 중대한 것이라는 반증이기도하다.

이 마당에 이 문제에 대해 특별히 생각한 바도 없고 그렇다고 전문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닌 나마저 과연 한 마디 거들어야되나 많이 망설였다.
그러나 이 사태가 불거졌을 때 바로 생각한 바가 있고, 내 생각과 유사한 견해를 밝힌 글을 아직은 보지 못해 나도 상 위에 수저 하나 더 놓는다는 심정으로 한 마디 한다.

우선 신행정수도이전에 대한 종래 내 입장도 모호했다.
비대한 서울을 해체하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뤄야한다는 명분에는 수긍이 갔지만, 과연 명분처럼 실제도 그런지(요즘 세상에 명분과 실제가 다른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신행정수도이전이 나에게 득이 되는지 그렇지 않은지, 혹여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 득이 된다면 기꺼이 양보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진짜 나라전체에 득이 되는지에 대해 정확한 정보나 사회에 대한 경륜이 없는 나로서는 도무지 판단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런데 헌재의 판결이 나는 그 순간 그간 애매모호했던 내 입장이 비로소 바로 섰다. 아, 신행정수도는 이전하는 게 맞구나.

나는 이번 신행정수도이전 문제를 거창한 국책의 차원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첨예한 계급투쟁의 현장으로 이해한다.
국토균형발전이니 지역분권이니 여러 가지 미사여구가 동원되었지만 그 핵심은 계급투쟁이다. 이 문제가 논란을 빚던 와중에 노 대통령이 한 발언을 음미해보면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한 일단이 보인다. 대통령은 신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하는 사람은 서울시내 한복판에 거대한 빌딩을 갖고 있는 특정언론사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서울시내 거대한 빌딩은 아니더라도 집 한 채라도 변변히 갖고 있는 사람은 다 행정수도이전을 반대했을 게 분명하다. 왜? 자신의 이해와 직결되니까.

다음으로 이번 사태의 주역인 헌재재판관을 보자.
헌재재판관이라는 존재가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기는 아마 지난 탄핵사건과 이번 신행정수도이전 위헌소원 때문일 것이다. 몇몇 지면에서는 헌재재판관들의 출신지역이나 학벌을 따지는 글이 실리기도 했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사회에서 사법시험에 패스해서 법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곧바로 특권층화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로부터 사회적으로 가장 출세한 예를 고시패스를 드는 것만 봐도 쉽게 수긍이 간다.
옛날만이 아니다. 현재도 수재들이 다닌다는 서울대 재학생의 80%가 학과 전공불문하고 고시공부에 매달린다는 보도가 있다. 서울대를 제외한 명문 사립대의 경우도 그 비율이 결코 낮지 않을 것이다. 국가적으로 엄청난 인력낭비가 초래되는 이런 현상이 왜 나타나고 있을까? 그건 바로 (고시)한방에 곧바로 특권층에 편입되는 고시의 위력을 영리한 젊은이들이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사법시험 합격자를 해마다 1천여 명 가까이 뽑아 일각에서는 9급공무원 보다 못하다 비아냥을 듣고 있지만 그래도 사법시험의 위력을 무시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인 추세이다.

"신행정수도이전 위헌 판결은 계급투쟁의 현장이다."

이번 위헌결정을 내린 헌재재판관들의 평균 연령이 몇 살인지 세어보지 않아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아마 60세는 넘었을 게 분명하다. 그러면 적어도 이들은 30여 년 전에 고시패스한 사람들이다. 그 당시 고시패스의 위광이 우리 사회에 주었던 의미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아마 당시를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야기를 약간 옆으로 돌려 지난 30여 년 간 우리 사회는 어떠했는가?
식민지해방에 이은 민족분단, 동족참화인 6. 25, 개발독재, 5공 군사독재 등 지난한 길을 이어왔다. 이 어려운 영욕의 시기에 '각서' 한 장 쓰지 않고 승승장구해서 법관의 최고영예인 헌재재판관에 이른 분들이다. 이런 분들의 히스토리(history)는 과연 어떤 것이며, 이들의 맨탈리티(mentality)는 과연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지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오해는 피하자. 나는 특정 개인을 욕하거나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나는 헌재재판관 누구누구 자연인 개인에게는 관심 없다. 그게 어느 누구이든 이 성장과정에 편입되었다면 그의 사고체계는 우리 민중들이 상상하는 범주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환경의 동물이니까.

내 생각으로 이 분들의 결정은(그것이 어떤 것이든) 십중팔구는 자신들이 속한 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다.
특별한 역사적 경험이나 뼈아픈 개인적인 사연이 없는 한 아마 거의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이런 분들이 자신의 이웃인 서울 강남사람들과 재벌과 고급관료들의 이해에 반대하면서 3류 국민이라 일컬어지는 지방 촌뜨기들을 위한 결정을 내려주기를 기대했다는 것은 애초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이번 판결로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사회지도층의 이기심과 무능, 비도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국가는 위임된 권력에 의해 통치되고 조정된다. 그러나 그 위임된 권력이 자신들의 권력의 원천인 국민들, 즉 민중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하고 봉사하는 것을 보기는 쉽지않다. 소위 '한 줌도 안 되는' 기득권 부르주아지들을 위해 일 할 뿐이다.

나는 이번 헌재 결정이 다수 민중의 이익을 무시하고 소수의 기득권층을 위한 판결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국가'와 그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상층관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실히 깨달을 때가 된 것같다.

청동도끼나 물레와 함께 나란히 고대박물관에 진열될 것(엥겔스)이라던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와 부르주아들의 헤게모니를 민중들의 편으로 끌어오지 않고서는 진정한 행복이란 존재하기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을 이번 헌재 판결을 보면서 다시 했다. 결국 민중들의 자발적인 권력쟁취가 이 문제를 조금은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다.

김용락(평화뉴스 칼럼니스트. 시인. [대구사회비평] 발행인)
* 1959년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난 김용락 시인은, 지난 '84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등단한 뒤 <푸른별>, <기자치소리를 듣고 싶다>, <민족문학논쟁사연구>를 비롯한 다수의 시집과 평론집을 펴내며 시인과 문학평론가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일보] 논설위원과 [대구참여연대] 편집위원장, [민족문학작가회의] 대구지회장을 지냈으며, 2002년부터 계간 <대구사회비평>을 펴내며 CBS대구방송 <라디오 세상읽기>를 매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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