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의 가난한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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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흥 /『교황 프란치스코 : 호르헤 베르고글리오와의 대화』
(교황 프란치스코 저 | 이유숙 역 |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 2013.12)


유난히 감수성이 예민했던 고등학교 시절 내내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문제, 즉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힘들어했다. 그것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외할머니의 영향 때문이기도 했지만 세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지독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던 어머니의 고통과 맞물려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왜 세상은 이토록 불공평한 것일까?"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 보았을 이 의문에 유독 천착했던 것은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물, 그리고 외갓집에 얹혀 살고 있는 환경 같은 것들이 가져다 주는 궁핍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할머니는 늘 손자와 손녀들이 교회에 나가기를 원했다. 그것은 출가외인인 어머니를 다시 받아들이는 조건이었지만 할머니의 뜻과는 달리 쉽지 않았다. 손자는 늘 쓸데없는 의문으로 가득 차 있었고 교회와 할머니는 그런 손자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오히려 질타하기에 바빴다. 교회 건축 헌금과 좀더 큰 자가용을 원했던 목사를 위해 세들어 사는 사람들에게 수시로 집세를 올리는 할머니에게 교회는 유일한 안식처였지만 손자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을 거리로 다시 내모는 사마리아인들의 소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화해할 수 없었던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올해 1월 18일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6개월 간의 교리 과정을 마치고 세례를 받던 날, 지인들은 축하의 인사를 전하면서도 "불교에 심취해 있다가 어떻게?"라는 의문을 감추지 않았다.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 절친이었던 신부님은 웃으면서 "지금의 가톨릭교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 같은 분이 교황으로 선출된 것과 자네가 세례를 받은 것이 내게는 너무 놀라운 일이네"라고 말했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마흔을 갓 넘기던 시간, 세상의 불공평과 싸우던 젊은 날은 너무도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고 거친 삶의 한가운데에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부처의 삶이 다가온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지만 그것을 송두리째 버릴 수 있었던 행복한 한 사내의 삶을 찾아 인도와 티벳, 네팔을 떠돌아 다니던 시간의 흔적 속에서 지인들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비록 직접적인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세례를 받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야만적인 자본주의는 이익만을 우선시하면서 인간을 배려하지 않고, 착취하는 사고방식만 가르치고 있습니다. 베풂과 자선의 가치는 반드시 회복돼야 합니다." (<교황 프란치스코 어록 303> 중에서, 자본주의에 대해)
"문 밖에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예수께선 끊임없이 '어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안온한 성전 안에만 머물며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합니다." (교황 권고문 '복음의 기쁨' 중에서)


젊은 날의 신념을 먹고 사는 것에 팔아버린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늘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었던 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 산다는 것, 젊은 날에는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세상에 대한 인간의 헌신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교만과 허영은 치유하기 힘든 것이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 서 있는가? 또한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런 의문들에 대한 대답은 젊은 날,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유물론에 심취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사랑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깨어지고 흔들렸던 신념의 끝에 자신을 지켜주고 위로해 줄 그 무엇, 그것에 교황 프란치스코가 있었다. 
 
호르헤 베르고글리오와의 대화 『교황 프란치스코』.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생에 대한 증언을 담은 책이다. 프란치스코가 교황 선출 이전인, 아르헨티나 추기경 재직 시절 종교전문기자와의 대담을 엮은 교황의 삶과 생각이 들어있는 공식 전기이다.

교황은 이 책에서 심한 피부병 때문에 온 얼굴이 혹으로 덮혀 있는 환자에게 입을 맞추고, 범죄 청소년들의 발을 씻겨주는 자신의 모습이 결코 한 순간에 연출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성직자라는 이름 뒤에 가려져 있는 인간 교황의 모습은 초라하고 궁색한 남자의 고해성사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일순간 거절했던 일화를 소개할 때 더욱 더 빛이 난다. 이민자의 아들로서 느낀 자신의 뿌리와 부모로부터 배운 노동의 중요성, 또한, 이 시대 종교의 역할에 대한 교황의 신념과 우리 사회를 망치는 소통의 부재와 편견에 대해 비판이 담겨져 있는 우리 시대의 희망의 메시지인 책을 읽으면서 많은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많은 시간, 자신을 지키지 못한 것을 괴로워 했던가? 변명처럼 자신을 정당화했던 많은 시간들이 떠올랐다. 다시금 돌아갈 수는 없지만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 실천하며 살아야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는 것, 그 내면을 지탱할 수 있는 힘,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의 고통을 함께 짊어진다는 것이며 나눈다는 것이다"는 말로 세례를 축하해 준 수녀님은 이 책을 지인들에게 선물로 나누어주라는 말을 덧붙였다.

긴 시간 방황을 했었다. 어쩌면 이 방황의 끝이 사람을 사랑하는 의무를 지키는 예수님의 가르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의 아들 예수의 모습은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한 교회에게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책 속의 길] 119
전태흥 / 미래TNC 대표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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