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서 '탈핵' 외치는 원폭 피해자 2세들의 삶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4.02.2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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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탈핵영화제 / 다큐 <잔인한 내림> 실제 주인공 한정순(55)씨..."핵은 반인류ㆍ반인권"


뇌성마비 환자인 아들 손을 잡은 원폭 피해자 2세 한정순씨 / 사진. <잔인한 내림> 스틸컷
뇌성마비 환자인 아들 손을 잡은 원폭 피해자 2세 한정순씨 / 사진. <잔인한 내림> 스틸컷

한정순(55.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씨는 거울을 보며 화장을 한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며 19살, 36년 전 그 때를 떠올린다. 처음으로 하반신의 뼈가 녹아내리는 고통을 느꼈던 그날. 의사는 '대퇴부무혈성괴사증'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엉덩이쪽 뼈가 녹아 없어지는 병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고통은 하반신 전체로 퍼졌다. 40년 동안 인공관절 수술을 4차례나 했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바지를 걷어올린 양쪽 다리에는 10cm가량 되는 붉은 수술자국이 선명하다. 일어서지도 걸을 수도 없는 아픈 밤에는 이불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 고통을 참으려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참 화장을 하던 한씨는 화장대에 수두룩히 쌓인 약봉지를 보며 약을 먹었는지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아려본다.

한국 원폭 피해자 2세 한정순씨의 지난 2005년~2012년까지 8년간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잔인한 내림(감독 김환태)>이 20일 대구 탈핵영화제에서 상영됐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대구시민행동'은 지난해 11월 27일부터 이달 20일까지 넉달간 물레책방에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제조사 세계 1만인 소송을 위한 탈핵영화제'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한정순씨 등 시민 10여명이 참석했다.

대구 탈핵영화제에서 씨네토크 중인 한정순씨(2014.2.2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탈핵영화제에서 씨네토크 중인 한정순씨(2014.2.20)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그날 한씨 부모님을 비롯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의 8형제, 한씨의 맏언니와 오빠 등 모두 열네식구는 히로시마에 있었다. 큰 외상이 없었던 가족은 서둘러 고향인 한국 합천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족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리거나 목숨을 잃어갔다. 원폭 피해자 1세였지만 큰 외상이 없었고, 원폭피해라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기 때문에 당시에는 원폭이 병의 이유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귀국 후 유산을 했고, 아버지와 오빠는 심장병을 앓다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맏언니는 이유도 모른채 숨을 거뒀다. 한국에서 태어난 한씨의 6남매들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심장병, 뇌경색, 피부병 등에 걸렸다. 원폭 피해가 2세에게로 유전된 것이다. 둘재 언니는 어깨 관절에 석회질이 생겨 양쪽 팔 수술을 받았고 뇌경색 약도 복용하고 있다. 넷째 오빠는 심근경색협심증 수술을 받았고 막내는 20대에 치아가 다 빠져버렸으며 셋째 언니는 자신과 같은 대퇴부무혈성괴사증으로 수수을 받았다.

원폭 피해는 2세뿐 아니라 3세에도 이어졌다. 한씨의 아들은 중증 뇌성마비 환자다. 의사들은 아들이 태어나던 당시 10살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30대인 지금까지도 한씨 곁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갈 수록 몸이 점점 더 굳어가고 있어 아들은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도 곁에 있다는 사실에 고맙기만 해 아들과 있을 때면 핸드폰과 카메라로 수많은 사진을 찍어본다.  

병원비와 약값을 대기 위해 간병사 일을 시작하면서는 아들과의 시간이 더 줄었다. 일본과 한국정부 모두 원폭 피해 2세에게는 어떤 보상도 지원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씨는 일을 쉴 수 없는 상태다. 환우회의 수년간 요구로 지난 17대 국회에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실태조사 지원을 위한 특별법안'이 상정되기도 했지만 '증명이 어렵다' 이유로 18대를 거쳐 19대 국회에서도 계류 중이다. 

원폭 피해자 1.2세가 정부에 '지원'을 촉구하는 모습 / 사진. '잔인한 내림' 스틸컷
원폭 피해자 1.2세가 정부에 '지원'을 촉구하는 모습 / 사진. '잔인한 내림' 스틸컷

한씨와 같이 한국인 원폭 피해2세 환우회에 등록한 사람은 현재 1,400여명. 한씨는 한국인 원폭 피해1세 가운데 현재 생존자 2,650여명(한국원폭피해자협회 등록기준)의 자녀를 모두 포함하면 그 수는 1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삶 또한 한씨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환우회에 등록된 회원들은 정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채 한씨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다.   

때문에 한씨는 지난 2008년 4월부터 지금까지 한국원폭2세환우회장을 맡아 한국과 일본정부를 상대로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지난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는 '탈핵운동'도 함께 벌이고 있다. 원폭 피해자로 바라본 그날의 기억은 남달랐다. 핵발전소 사고로 방사능이 유출됐는데도 일본과 한국정부, 언론은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당시 환우회 회원들과 병원에서 정기검진을 받는 중에도 로비에 틀어놓은 뉴스에서는 '안전한 방사능', '안전한 핵', '원자력 발전소는 깨끗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씨는 의문이 들었다. '그럼 나와 여기 친구들은 왜 아픈가', '나의 자녀는 왜 아픈가'. 한번도 자신의 병에 대해 부모를 원망한 적이 없었지만 '핵이 안전하다'는 정부와 언론에는 화가 났다. 그렇게 '탈핵'을 향한 그녀의 의지는 강해졌다.

부산고리원전 앞에 '원전반대'라고 한자로 써 있다 / 사진. '잔인한 내림' 스틸컷
부산고리원전 앞에 '원전반대'라고 한자로 써 있다 / 사진. '잔인한 내림' 스틸컷
   
"수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부모에서 시작된 병은 나에게로 유전돼 내 자식에게도 대물림됐다. 잔인한 현실, 대물림 되는 고통을 이제 끝내야 한다"고 한씨는 말했다. 그러나 "한국, 일본, 미국 정부 누구도 우리의 삶을 책임지고 있지 않다"면서 "우리는 무관심과 차별 속에 이중 고통을 겪고 있다. 특별법을 제정해 반드시 이런 고통에 대해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핵개발 야심을 버리지 않고 핵발전을 계속하는 한국과 전세계 모든 나라는 반드시 탈핵을 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잔인한 고통은 계속된다. 핵은 반인류, 반인권이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 2012년 11월 10일 일본에서 창립된 '탈핵아시아공동행동(No Nucks Asia Action)'은 후쿠시마 원전제조사에 방사능 유출 등 당시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묻는 소송을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전세계에서 1만인 원고 모집에 나섰다. 한국에서는 '후쿠시마사고 원전제조사 세계1만인 한국소송단 추진위원회'가 꾸려져 오는 28일까지 원고 위임장 신청을 받고 있다. 대구에서는 대구KYC와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대구시민행동이 위임장을 접수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1백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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