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영남대 비정규직 노동자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4.02.2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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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장갑, 마스크 하나로 독극물 청소..."어지럽고 메스껍다" / 대학 "용역업체 책임"


"공대 실험실에서 화학약품이 넘쳐 청소 할때면 고통스럽다. 지난해 겨울에는 용매실험 이물질들이 터져서 고무장갑, 면마스크 하나만 쓰고 4시간 걸레질을 했다. 전문업체가 해야 하는데 왜 우리가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이름도 모를 액체가 얼굴이나 눈에 튀고 피부에 직접 닿은 적도 많다. 몇 시간 청소하고 나면 어지럽고 메스껍다. 밥맛도 없고 끙끙 앓기만 한다"
(영남대 시설관리노동자 유모(39)씨)

"냄새가 너무 지독하고 눈이 따가워 문을 열고 청소를 했는데 지나가던 교수가 냄새나니 문을 닫으라고 했다. 그 안에 있는 나는 오죽하겠나. 내가 어떤 위험물질을 청소하는지 사실 잘 모른다. 어떤 날은 장갑이나 집게 없이 맨손으로 치우기도 한다. 집에 가면 손이 붉게 익어 껍질이 벗겨질 때도 있다. 이게 안전한지 위험한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다. 무섭다"
(영남대 시설관리노동자 박모(61)씨)   

영남대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상태에서 청소를 하고 있지만 보호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아 "건강권 침해"라는 비난이 일고있다. 특히 일부 노동자들은 구토와 현기증같은 만성적인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 노조가 "안전장비 지급"과 "노동안전실태조사"를 대학에 촉구했다.

영남대 비정규직 시설관리노동자들은 현재 모두 22명이다. 이들은 모두 1년짜리 비정규직으로 대학과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 계약직원이다. 학내 보일러나 기계를 수리하지만 위험물질 청소와 처리에도 동원된다. 때문에 이들은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보다 유해화학물질, 즉 독극물질에 많이 노출돼 있다.

특히 실험실에는 가연물질 황산, 유독가스 브롬화수소가스, 중독물질 이산화탄소 등 화재, 폭발, 중독 재해 가능성이 있는 유해화학물질들이 보관돼 있다. 이런 물질은 평상시 가스탱크나 시약통, 실험실 전용 냉장고에 보관돼 있고 안전수칙에 따라 사용되지만 실험중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나는 경우도 있다.

영남대 환경시설지회가 영남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 후 총장실 앞에서 농성하는 모습(2014.2.26) / 사진. 민주노총 대구지역일반노조
영남대 환경시설지회가 영남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 후 총장실 앞에서 농성하는 모습(2014.2.26) / 사진. 민주노총 대구지역일반노조

화학물질이 실험실 바닥, 복도, 강의실에 흘러넘칠뿐 아니라 배관을 녹이거나 가스가 방출돼 소동이 벌어지기도 하고, 경미하지만 폭발이나 화재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실험실에는 배기장치와 경보장치, 소화기, 모래, 담요를 비롯한 안전장치와 마스크와 고글, 작업복 등 보호구가 마련돼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시설관리노동자들은 이 같은 위험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데도 어떤 안전장비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수년동안 대학과 용역업체가 지급한 보호구는 얇은 고무장갑과 면마스크 하나가 전부다. 때문에 일부 노동자들은 자비로 작업복과 안전장비를 구입해 사용하기도 한다. 대학과 용역업체는 업무특성상 노동자들에게 안전장비를 지급해야 하지만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민주노총 대구지역일반노조 영남대 환경시설지회>는 26일 영남대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안전수칙과 관리규정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고, 보호장비 미비로 인해 영남대 청소노동자들이 건강권에 심각한 침해를 받고 있다"며 "대학본부와 업체의 방관과 무책임 탓"이라고 주장했다. 때문에 " ▶학내 '유해물질' 작성과 공개 ▶노동안전실태조사 실시 ▶안전장비 개선과 확충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후 영남대 총장실 앞에서 1시간 동안 농성을 벌이고 "시정"을 촉구했다.

권택흥 일반노조위원장은 "있으나 마나한 독극물 관리규정과 대학, 업체의 방관으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보호장비 하나없이 무방비로 독극물에 노출돼 있다"며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의문이다. 하루빨리 실태조사를 하고 제대로 된 보호장비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영남대 교무팀 관계자는 "용역업체 직원 보호장비는 업체가 지급하는 게 원칙"이라며 "업체가 책임을 지고 장비를 개선 또는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 또 "안전사고에 대비해 이미 보호장비들과 규칙들이 마련된 상태다. 제대로 따르기만 하면 사고는 없을 것"이라며 "용역업체 청소직원들이 어떤 상태인지 잘 모르겠지만 확인 후 업체에 시정하라고 권고 해보겠다. 실태조사는 지금은 확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편 용역업체 대표와 관계자들은 평화뉴스가 통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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