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총장임명제청 거부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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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택진 / "교육부, 내 맘에 드는 '색깔'을 갖추라는 말인가?"


 부모로 아이를 키우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 욕을 하지 않는 것, 예의를 지키라는 것 등등 수없이 많은 행동규범들을 말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TV 그만보고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하면서 부모가 TV를 보고 있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욕을 쓰지 말라고 하면서, 부모들이 운전하다가 내뱉는 욕설에 아이들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해보라. 가정에서 학교에서 잔소리를 듣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언행불일치’를 보면 속으로 ‘너나 잘해’라고 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올해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다. K라는 학생이 밝은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학생생활지도를 하던 E교사가 K학생이 있는 학급에 들어가서 두발단속을 하고 우리 학교에서는 염색이 금지되어 있으니 머리염색을 빼고 검정색으로 해오라고 했다. K학생은 싫었지만 E교사의 말을 듣고 머리염색을 빼고 검정색으로 해왔다. 그런데 머리 색깔이 원래 자연갈색이었던 이 학생은 시간이 지나면서 검정색이 빠지고 원래 머리색깔인 자연갈색으로 변했다. E교사는 다시 두발단속을 하면서 K학생에게 다시 검정색으로 해오라고 지시했다. K학생과 K학생의 담임선생님은 머리카락 색깔이 원래 자연갈색이라면서 봐 달라고 했다. E교사가 안된다며 검정색으로 하라고 했다. K학생은 다시 검정색으로 염색을 했다. 또 시간이 지나 다시 원래의 자연갈색으로 변해갔다. E교사는 3번째로 K학생에게 검정색으로 바꾸라며 지시했다.

 K학생과 담임선생님은 ‘이건 너무하다’며 항의했으나 이번에도 E교사는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K학생은 세 번째로 검정색으로 머리염색을 했다. 여기서 끝일까? E교사는 K학생에게 네 번째로 검정색으로 바꿀 것을 요구했고 이번에는 K학생의 부모님까지 학교에 항의 전화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K학생도 담임 선생님도 도대체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학칙에 따라 염색이 금지되었다고 해서 밝은 갈색의 염색을 빼고 원래 자기 머리색깔을 유지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E교사는 K학생의 자기머리 색깔이 아니라 ‘검정색’을 강요한 것이다. E교사가 K학생에게 지도하려고 한 것은 학칙에 따른 규정인가? 자기 마음에 드는 아니 자신의 생각에 무조건 따르는 순종적인 학생인가? 일상에 들어와 있는 곳곳의 ‘반인권’이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분노를 가져다 줄 것인지 생각하니 섬뜩하다. 오늘은 머리 색깔이지만 내일은 또 다른 무엇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학생이 될 수 있다. 부모님의 유전자로 물려받은 자연스런 머리색깔마저 ‘학생생활지도’라는 명목으로 바꾸어야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상황이 2014년의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경북대 제 18대 총장임용후보자 선거(2014.6.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북대 제 18대 총장임용후보자 선거(2014.6.2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눈을 경북대로 돌려보자. 교육부는 경북대가 선출한 1위, 2위 총장후보에 대한 임명제청을 거부했다. 교육부는 "교육공무원법 제24조6항에 따라 경북대가 추천한 총장 임용 후보자에 대한 제청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했다. 교육공무원법 제24조(대학의 장의 임용) 6항이라는 것은 "교육부장관이 대학의 장을 임용 제청하려는 경우에는 인사위원회에 자문을 하여야 한다"이다. 결국 자문해보니 ‘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 아닌가. 아직 왜 총장으로 부절적한지에 대한 사유는 구체적으로 알려지고 있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선거를 치르고 1위, 2위 후보자를 선정해서 올렸는데 돌아오는 답변이라는 것은 ‘너희들은 안돼’인 것이다. 왜 안되는지는 아직 알려주지 않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보여주고 있는 비합리적인 행태이다. E교사도 K학생에게 왜 자기머리 색깔이 아니라 검정색이어야 하는지 납득할만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 불합리한 지시에 어떻게 납득가능한 이유가 있겠는가?

 교육부의 ‘예산지원’에 목메어 있는 많은 국립대학들이 ‘대학평가’의 한 기준이 되는 총장선출방식을 자발적으로 ‘직선제’에서 ‘간선제’로 바꾸었다. 직선제폐지 과정에서 국립대학본부와 대학교수등 대학구성원들의 갈등이 수년간 있었지만 대부분 간선제를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교육부’에 굴복한 것이다. 알다시피 경북대학교는 총장선출방식을 간선제로 바꾸고 총장선정관리위원회를 꾸려 지난 7월 26일 선거를 치루었다. 그런데 선정과정의 사소한 규정위반과 실수가 있었다.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만한 사안이 아니었음에도 함인석 전 총장은 재선거를 천명했고 규정도 새로 만들었다. 이 과정에도 석연치 않은 의도가 있었다 보이지만 여기서 논할 문제는 아니기에 넘어가기로 한다. 그렇게 다시 치러진 지난 10월의 두번째 선거는 새로운 규정에 따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진행되었다. 1위로 김사열 교수가 2위로 김상동 교수가 선정되었고, 선거결과를 모든 참가후보들이 받아들이고 경북대가 절차를 밟아 서류를 교육부로 올린 것이다. 그리고 두 달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예측이 있었으나 설마 설마 했는데 교육부의 임명제청거부 결정이 전달된 것이다.

 이미 교육부는 공주대, 방통대, 한국체대 등 국립대가 선출한 총장 후보자에 대해 임명제청을 거부한 전례가 있다. 해당대학들은 교육부의 처사에 반발하고 있다. 경북대 뿐만이 아닌 것이다. 교육부의 말대로 24조 6항이든 무엇이든 총장임명제청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거부하는 이유다. 교육부의 요구대로 간선제를 수용한 국립대학의 구성원들이 어려운 과정과 절차를 밟아 지역사회와 함께 선출한 후보자에 대해 특별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 대한민국 교육부의 관료가 앞서 언급한 K학생의 생활지도를 한 E교사와 다르다면, 교육부는 친절하고 합리적으로 후보자들을 총장으로 임명할 수 없는 이유를 ‘법과 원칙’에 따라 설명해주어야 한다. 적법한 과정과 절차를 거쳐 선정된 후보자들이 대학구성원들이 용납 못할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이 있는지, 아니면 탈법과 불법을 저지른 사실이 있는지 적시해서 알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교육부의 ‘마음에 안 들어서’라고 밖에 설명이 안된다. 교육부가 임명제청을 거부한 것이 경북대학교 총장후보들이 머리를 검정색으로 염색하지 않고 자기 머리 색깔대로 그대로 유지할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교육부가 ‘대학생활지도’를 하고 싶은 입맛에 맞는 ‘대학총장’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스스로 밝혀야 한다. 교육기본법에 적혀 있는 교육이념 중에는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K학생의 생활지도를 하는 E교사와 경북대학교 총장후보 임명제청을 거부한 교육부의 처사는 ‘자주적 생활능력’을 깔아뭉개고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이 아닌 내 맘에 드는 ‘색깔’을 갖추라고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이 보고 듣고 있다. 안그래도 ‘취업학원’으로 전락한 대학의 대학생들에게 교육부가 반교육적인 교본을 직접 보여줄 생각이 아니라면 빠른 시일 안에 해명하고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총장임명 거부를 거부한다' 페이스북 페이지(http://on.fb.me/1sEfJXf)
'총장임명 거부를 거부한다' 페이스북 페이지(http://on.fb.me/1sEfJXf)

 K학생은 4번째 검정색 염색을 거부했다. 학교는 K학생의 머리색깔 문제를 징계위원회까지 끌고 갔다. 징계위원회까지 갈만한 벌점을 받은 것도 아닌데 ‘학칙’에 따라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다며 징계위원회까지 간 것이다. 결론은 3차례의 노력과 담임선생님의 시정노력 부모님의 항의 등으로 징계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내 머리 색깔을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남의 요구에 따라 색깔을 갈아 입혀야 하는 이 ‘폭력적’ 상황에 징계를 받아야 할 것은 K학생이 아니라 E선생님이 아닌가 말이다. K학생이 E교사의 부당한 요구에도 그나마 위로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담임선생님의 E교사에 대한 강력한 항의였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자신의 노력을 인정해주고 부당한 요구에 함께 싸워주었던 담임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이 K 학생에게는 큰 힘이었을 것이다. 이번 경북대 총장임명제청 거부 사건을 보며 지역의 뜻있는 시민들이 K학생의 담임선생님과 같은 무언가 교육적이고 민주적이며 인간다운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사태를 보며 경북대 학생이 만든 SNS 페이지의 제목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경북대 총장임명제청 거부를 거부한다”






[기고]
오택진 / <연구공간Q+> 대표.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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