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광복 70년, 분단의 고통에 익숙해진 사회

기사승인 2015.01.12  13:46:07

공유
default_news_ad1

- [김두현 칼럼] "남과 북, 대화의 조건이 아니라 대화의 장에서 제기하라"


 2015년은 소위 꺾어지는 해이다. 일본제국주의(이하 일제)의 지배로부터 벗어난지 70년이 되는 광복 70주년이자 외세의 의해 분단된 지도 어느덧 70년이 되는 해이다. 사람의 나이로 70년은 고희(古稀)라 부른다. 예로부터 드물다는 뜻이다. 지금이야 칠십 청춘이라 할 만큼 사람 나이 70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지만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수십 번 멸망시킬 수 있는 군사력을 배치한 채 분단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민족은 세계사적으로도 드물 것이다. 20세기 제국주의의 침탈과 전쟁으로 인해 분단된 수 많은 나라 - 베트남, 독일 등 - 들이 다시 통일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분단을 극복하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 그러기에 우리는 광복 70년이 되는 2015년을 마냥 환희와 기쁨으로만 맞이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그러기에 2015년을 분단극복을 향한 조그만한 전진이라도 이루어내는 해로 만들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일까?

익숙해져 편안해진 분단의 고통


언제 분단이 시작되었나? 현상적으로는 1945년 8월 15일이다. 다시 말해 일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자 말자 미소 양국이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명분으로 38선을 나누어 주둔한 것이 분단의 시작이다. 하지만 국토는 나누어졌지만 나라는 나뉘어지지 않았다. 길게는 단군 이래 짧게는 고려 이후 형성된 단일민족의식은 좀체 분열되지 않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성립과 9월 9일 조선민주주의공화국의 성립으로도 남과 북의 인민(국민)들의 정체성은 확연하게 두 인민(국민)으로 나뉘어지지 않았다. 남과 북의 인민(국민)들속에 분단의식이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 것은 다름 아닌 1950년 6월 25일 발생해 3여년동안 지속된 한국전쟁이다. 전쟁은 한민족으로 형성된 우리 의식을 분열시키고 우리(대한민국 국민 or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와 그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민 or 대한민국 국민)로 무리짓기 하였다. 그렇게 무리지어진 우리의식은 이제 더 큰 우리인 한민족으로의 정체성을 상실케 했다.

 
 
▲ <조선일보> 2015년 1월 2일자 1면

 고통도 익숙해져 버리면 편안해진다고 분단의 세월도 70년이 지나다 보니 이제 분단의 고통이 무엇인지 조차 느끼기 힘든 상태가 되었다. 남북이 갈라지지 않았다면 우리가 치루지 않아도 될 비용과 고통이 엄청나지만 이제 당연히 지불해야만 할 비용이 된 것이다. 동일한 규모의 국가에 비해 턱없이 많이 지불해야 하는 국방비와 분단으로 인해 대륙으로 진출할 기회가 막힌 것, 무엇보다 분단을 빌미로 유지되었던 반민주적 사회질서 등 분단으로 인한 비용과 고통은 부지기수이다. 분단은 심지어 정상적인 우리의 언어사용도 제한하고 있다. ‘조선’과‘ 동무’ 등 분단으로 인해 익숙하던 단어마저 이제는 낯설게 되었다. 분단은 남과북 상호간에 불필요한 증오와 대결을 부추켜 민족 전체의 정신적 불구화를 초래하였다.

 분단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는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우리 민족의 자주적 결정권의 침해이다. 남은 북과의 대결과정에서 우리편을 들어줄 미국이 필요하고 북은 남과의 대결과정에서 자신을 지켜 줄 중국이 필요하다. 당연히 남은 미국에 할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이다. 우리땅에서 일어나는 미군범죄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미국이 필요하면 조상때부터 수백년 살아온 터전에서도 쫓겨나야 한다. 북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제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분단도 전쟁도 우리가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지만 분단은 이렇게 국가의 중요정책은 물론이고 일상에서의 자주성도 침해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19세기말 제국주의 세력들이 조선반도를 놓고 각축전을 벌일 때부터 지금까지 온전한 자주권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광복이 되었지만 분단은 우리에게 반쪽 광복을 준 것이다.   

 
 
▲ <한국일보> 2015년 1월 2일자 1면

분단불감증에 분단자학증까지


 문제는 분단 이후 태어난 세대의 경우 이러한 분단의 고통을 실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분단된 상태에서 태어나 분단으로 발생하는 비용과 고통에 익숙한 상태로 자라기 때문이다. 분단되기 전에 태어난 세대들은 이제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분단 이후 태어난 세대는 분단으로 인한 고통에 익숙해져 있다. 이 상태가 편안한 세대이다. 외려 분단을 극복하려고 하는 여러 가지 노력과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비용이 불편한 세대이다. 과히 원래 한 몸이던 것이 두 몸인채 살다보니 본디 두 몸인줄 아는 분단불감증이라고 할만 하다. 두 몸인 것이 안타깝지만 그대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남북은 결코 두 몸인채 살 수 없는 유기체이다.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 의하며 한반도는 1대간 1정간 13정맥 10대강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신경체이다. 인위적 휴전선에 의해 허리가 잘리니 국토만 불구가 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삶 전체가 불구가 되었다. 앞에서 밝힌 여러 분단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서로가 이제 두 몸인 줄 알고 저지르는 수많은 일들로 인한 고통이 결국 한몸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북을 경제적으로 봉쇄하고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저지른 5․24 조치와 금강산 관광 중단이 결국 개성공단 입주 업체의 고통과 속초, 고성 지역 경제의 파산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즉 북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한 행동이 결국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반면 북을 도운 행위는 우리도 돕는 결과로 돌아왔었다. IMF로 인해 위기에 처했던 한국경제가 금강산 관광의 개시와 6․15공동선언 발표로 수많은 외국자본들이 유입되어 되실아 나지 않았던가? 결국 북을 돕는 것이 남을 돕는 것이며 북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도 남을 돕는 것이 북을 돕는 것이며 남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북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북은 두몸일래야 두몸일 수 없는 한몸인 것이다. 남북이 원래 한몸이었던 것을 잊어버리는 분단불감증을 넘어 결국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저지르는 분단자학증을 앓고 있는 것이 이땅의 수구기득권 세력인 것이다.

통일에도 왕도가 없다

 다행히 남도 북도 광복 70년이 되는 해 분단극복이 시급하다는데는 인식의 일치를 본 것 같다. 남은 지난 연말 통일준비위원회 명의로 장관급 회담을 제의했고 북은 김정은 제 1비서의 신년사에서 고위급접촉 재개와 부문별 회담은 물론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까지 내비치었다. 하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북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북한을 이끌어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체제대결적 선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한미군사훈련의 중단과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분명한 입장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역시 소니사의 해킹사태를 계기로 대북제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이다. 남은 북이 전제조건 없이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공부에 왕도가 없듯이 통일에도 왕도가 있을 수 없다. 남북관계플 풀어내는 길은 결국에는 대화와 교류가 답이다.  대화는 남북 당국의 몫이다. 남은 통일준비위 명의를 고집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북 역시 북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를 남북 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남북 대화의 장에서 제기해야 할 의제로 발상을 전환하면 어떨까? 즉 다시 말해 대북전단 살포 중단문제와 한미군사훈련 중단, 체제대결 중단 등 북의 요구사항을 대화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남북대화의 장에서 제기하라는 것이다.

 물론 남북 대화가 성사되기 전 최소한의 성의표시는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저지가 적법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명분으로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보다 분명한 입장을 밝힌다면 남북대화 재개의 청신호가 되지 않을까? 이를 기대해본다.

 대화가 당국의 몫이라면 교류는 민간의 몫이 크다. 광복 70년이 되는 2005년 남과 북의 수많은 사람들이 끊어졌던 하늘길 땅길, 바닷길을 다시 이어 오고가기를 기대해 본다.

 
 





[김두현 칼럼]
김두현 /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평화뉴스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ad40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