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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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딴지 거는 정치인의 속셈은 기득권 지키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비례대표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하였다고 합니다. 지난 해 헌법재판소가 국회의원 선거구 인구 편차가 너무 크다면서 헌법 불합치라고 결정을 내렸고 이번에는 선관위가 이런 의견을 제시하자 선거개혁에 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습니다. 선관위 의견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권역별 비례대표제입니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46명 줄여 200명으로 하고 비례대표 54명을 100명으로 늘리면서, 6개 권역별로 득표율에 따라 의석(지역구+비례)을 배분하자는 것입니다.

 기득권 지키기 위한 떼쓰기, 비틀기

  현행 선거제도 하에서 거대 정당은 득표율에 비해 국회 의석 점유율이 훨씬 높아 국회와 국민이 따로 놉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되면 소규모 정당이 유리해지는 반면 거대 정당의 의석은 줄어들어 대표성이 높아집니다. 특히 원내 제1당이라고 해도 웬만해서는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기 어렵게 됩니다. 또 기존 지역구 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역구가 사라질까 불안해 할 것입니다.

  제도를 새로 도입하거나 바꿀 경우 그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은 주판알부터 튕기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기득권자는 온갖 이유를 대면서 반대할 것입니다. 노예제도 철폐, 여성참정권 확대 등의 과정에서 기득권자가,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갖가지 이유를 들며 반대한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19세기 초반에 활약했던 영국의 사학자 겸 정치가였던 머콜리는, 중력의 법칙이 인간의 손익과 관련이 있다면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법칙을 부정하는 사람도 많이 생길 것이라고 갈파했습니다.

  그래서 20세기 미국의 철학자 롤스는 현대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저서 <정의론>에서,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이라는 장치를 고안했습니다. 정의로운 사회제도에 관해 합의를 할 때는 당사자가 자신의 처지를 모른다고 가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해관계에 따른 떼쓰기, 비틀기를 막아야만 원론에 충실한 좋은 제도가 나온다는 말입니다.

 딴지 거는 정치인의 저의를 살펴야

  자, 그럼 국회의원 선거 방식을 무지의 장막 뒤에서 합의한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요? 국회는 국민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국민을 잘 대표하는 국회를 구성하자는 데 합의할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선관위의 개정안은 현재에 비해 크게 진일보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제도든 부족한 점이나 보완해야 할 점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염려하는 척 하지만 속셈은 무산시키는 데 있는지, 정치인들의 이런 저런 반응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내세우듯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정치에 나선 것인지 아니면 자신을 위해 나선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지역의 매일신문 사설을 보니 “권역별 비례대표는 오히려 더 강한 지역성을 띨 수가 있어 비례대표를 권역별로 뽑는다고 해서 지역주의가 수그러들 것인지는 불투명하다..... 지역성을 더 강화시키고, 전문성은 떨어질 우려가 큰 선관위의 이번 안은 문제가 많다.”고 합니다. 글쎄요. 단순한 염려 차원의 문제 제기일까요, 아니면 개혁에 재를 뿌리는 것일까요?

  정치 생태계 다양화, 직접민주주의 확대 필요

  선관위의 제안은 상당히 획기적이지만, 국민 대표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부족한 점도 있습니다.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만 간략히 언급해 둡니다.

  첫째로, 거대 정당에 의한 정치 독과점을 막고 정당의 다양성을 촉진해야 합니다. 개정안처럼 비례대표 비중을 늘리더라도 1등만 당선되는 소선구제 하에서 지역구 의원이 3분의 2를 차지한다면 여전히 거대정당이 유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의 정당 선택 폭이 좁아서 진정한 대표성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경제에서 기업의 시장 독과점을 막고 시장 진입의 기회를 균등하게 해야 하듯이 정치도 그래야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된 졸문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평화뉴스 / 대선, 새 정치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읍시다 )

  둘째로, 직접민주주의 확대가 필요합니다. 비례대표 후보는 정당이 정하게 되는데 정당은 그 나름의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국민과 유리될 수 있습니다. 국민 여론을 직접 국정에 반영하는 직접민주주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선거로 뽑는 선거의원 외에 일반 국민 중 추첨으로 선발하는 추첨의원을 추가하여 국회를 구성하거나, 역시 추첨으로 선발하는 국민배심단을 두어 양원제처럼 운영하는 것도 대안이 됩니다. 추첨제는 생소한 제도이지만 세부적인 설명은 다른 글로 미루겠습니다. (오마이뉴스 / 정치개혁? '따로국회·시녀국회'부터 고칩시다 )






[김윤상 칼럼 62]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석좌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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