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항쟁이 '영남폭동'?...대구 중부경찰서의 "역사왜곡"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03.0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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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내 역사체험관 '공산당 지령ㆍ선동'으로...유족회 항의받고 "실수, 정정"


대구중부경찰서가 중부서 내 경찰역사체험관에 대구10월항쟁을 '영남폭동사건'으로 전시해 유족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 역사체험관은 내부 '주요 사건사고' 전시판에서 1946년 10월 1일에 대해 '영남폭동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조선공산당 지령과 선동으로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대구 10.1폭동사건이라고도 한다'고 설명했다. 또 민간인 희생자 수는 빼고 경찰관 사망자와 부상자 수만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경찰에 연행된 민간인 사진을 게재하면서 '영남폭동사건'이라는 제목도 달았다.

채영희 회장이 '영남폭동사건'이라고 설명된 전시물을 보고 있다(2015.3.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채영희 회장이 '영남폭동사건'이라고 설명된 전시물을 보고 있다(2015.3.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정부가 '국가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으로 규정하고 보상과 위령사업까지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부서는 '폭동사건'으로 4년간 전시한 것이다. 이 역사체험관은 유치원과 초.중.고등학생이 주 관람객으로 하루 평균 50여명, 주말 2백여명이 찾는다. 2011년 개관해 4년간 5만여명이 다녀갔다.    

때문에 '대구10월항쟁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회(10월항쟁유족회)'는 5일 중부경찰서를 항의 방문해 "명백한 역사왜곡이자 고인에 대한 모독"이라며 ▶문제가 된 제목, 문구, 사진 삭제 ▶10월항쟁으로 전시물 제목, 내용, 사진 정정 ▶중부경찰서장의 유족에 대한 사과를 촉구했다. 이어 "만약 정정을 하지 않을 시 중부서 앞에서 기자회견은 물론 집회도 계속 열 것"이라고 밝혔다.

10월항쟁유족회의 항의를 받고 해명하는 경찰 담당자(2015.3.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0월항쟁유족회의 항의를 받고 해명하는 경찰 담당자(2015.3.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46년 10월항쟁에 가담하기 위해 집을 나선 아버지 채병기씨를 잃은 채영희(71) '10월항쟁유족회' 회장은 "우연히 이 소식을 듣고 가슴이 벌렁거려 눈물부터 흘렸다"며 "어떻게 국가에 의한 폭력으로 규정된 역사적 사건이 폭동으로 전시됐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또 "중부서 전시물에 의하면 우리 아버지는 폭동을 일으킨 가해자가 된다"면서 "이미 '빨갱이' 자식이라는 연좌제로 수 많은 세월을 고통받았는데 왜곡된 전시로 두 번 가슴에 피멍이 들었다. 하루 빨리 전시물을 정정해달라"고 요구했다.    

나정태(69) '한국전쟁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희생자유족회' 이사도 분통을 터뜨렸다. 나 이사의 아버지는 나 이사가  다섯살 때인 1946년 10월 1일 당시 대구철도노조원 간부로 10월항쟁에 참가했다 4년 뒤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목숨을 잃었다. 나 이사는 "당시 사건으로 이름 없는 유골만 수 만구다. 그런데 어떻게 폭동사건으로 전시할 수 있냐"며 "한 맺힌 원혼들이 물 속, 땅 속에서 발굴되지도 못한 채 잠들었는데 이 같은 중부서의 역사왜곡은 유족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종경(66) '10월항쟁유족회' 총무는 "이미 4년째 5만여명의 학생들과 시민들이 다녀갔다"며 "잘못된 역사를 알게 된 것에 대해 중부경찰서장은 앞장서 사과하고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부서 내 역사관에 10월항쟁이 '영남폭동사건'이라고 나왔다(2015.3.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중부서 내 역사관에 10월항쟁이 '영남폭동사건'이라고 나왔다(2015.3.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에 대해 중부서 역사체험관 담당 부서인 경무과 이광섭 계장은 "전시 담당 경위가 역사적 사실을 잘 몰라 저지른 실수"라며 "임시가림막으로 문제 부분을 가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적 확인 절차를 거쳐 정정 또는 철거를 결정해 유족회에 통보하겠다"면서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다"고 밝혔다.

10월항쟁은 지난 2005년부터 대통령 직속기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재조사를 벌여 '국가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라고 규정됐다. 2013년 진실화해위가 작성한 '대구10월사건 관련 진실규명결정서'에 따르며, 1946년 대구 시민들은 해방 직후 미군정의 '식량정책'을 비판하며 9월 총파업을 벌였다. 이어 10월 1일에는 미군정과 친일파 '축출'을 촉구하며 대규모 항쟁을 했다.

하지만 미군정과 대구경북에서 지원을 나온 경찰들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우익단체를 동원해 시민들을 '좌익'으로 몰아 무력진압했다. 그 결과 이름이 확인된 희생자만 204명으로 집계됐다. 때문에 정부는 10월항쟁에 대한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 대한 사과와 함께 매년 위령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대구중부경찰서 경찰역사체험관(2015.3.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중부경찰서 경찰역사체험관(2015.3.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편 대구중부서는 지난 2011년 11월 11일 대구경찰의 역사, 활동사항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경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울 목적으로 경찰역사체험관을 개관했다. 현재 관장은 김우락 중부서장이 맡고 있다. 역사체험관은 모두 1.2층으로 이뤄졌으며 1층은 주로 경찰과 관련된 전시물이 2층은 역사적 사건.사고들 여러 형태로 전시됐다. 개관에는 정성길 계명대 동산의료원 명예박물관장 등이 참여했다. 이 같은 역사체험관이 있는 경찰서는 대구에선 중부서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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