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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학살 대구 유족,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

기사승인 2015.05.13  16: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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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항쟁·보도연맹·가창골 등 미신고 유족 찾기도 진행..."3년째 계류, 과거사 바로 잡아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피해자 대구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서명운동을 벌인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대구경북유족회'는 "1950년 한국전쟁 전후 국가가 저지른 학살로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오는 14일부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등 과거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1만인 서명운동을 한다"고 13일 밝혔다. 이 같은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대구에서 진행된다. 대구경북유족회에는 대구10월항쟁, 국민보도연맹사건, 가창골, 경산코발트광산 희생자 유족들이 참여하고 있다. 

 
 
▲ 민간인 희생자 유골이 묻힌 경산 평산동 코발트광산(2014.10.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유족회는 14일 오후 6시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서명운동을 시작해 18일 오후 2시 2.28기념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리 서명운동을 한다. 20일에는 서울역에서 전국 유족회와 기자회견을 연다. 이어 대구 등 전국에서 서명운동을 벌여 1만인 서명이 모이면 국회에 서명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또 10월항쟁, 보도연맹사건, 가창골 등 대구지역 미신고 유족을 찾는 활동도 한다. 이미 지난 8일 대구 9곳에 '유족을 찾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걸어 대구형무소와 가창골 희생자의 미등록 유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들은 현수막을 매주 주말 게재해 미등록 유족 찾기를 이어간다. 뿐만 아니라 달성군 가창면 상원리 효목동 옛 대한중석광산에서 지난 3월에 이어 3차 희생자 유해발굴 작업도 한다.

 
 
▲ 대구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미신고 유족을 찾는 현수막이 걸렸다(2015.5.8) / 사진.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대구경북유족회

유족회는 "국가의 민간인 학살 사건은 이미 정부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지만 소관기관의 후속조치 미흡으로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특별법도 3년째 국회에 계류하고 있어 유해발굴, 추도사업이 국가가 아닌 민간인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구경북은 10월항쟁, 보도연맹, 가창골 등 가장 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곳으로 가장 많은 아픔을 지닌 곳"이라며 "더 이상 진상규명이 늦춰지는 것을 기다릴 수 없어 유족들이 직접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진상규명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명예회복 ▶유해발굴 ▶추도사업 ▶재발방지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법·정치·화해 조치 ▶추도사업·사료관 운영 등을 수행할 재단 설립 등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촉구했다.

나정태(69) 한국전쟁 전후 경산코발트광산 민간인 희생자유족회 부회장은 13일 평화뉴스와의 통화에서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한 부모, 형제가 어디에 묻혔는지 알지도 못한 채 세월이 흐르고 있다"며 "어느덧 자식들도 나이가 들어 부모님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기도 전에 숨을 거둘 지경"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더 이상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을 늦출 시간이 없다"며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인 특별법을 하루 빨리 제정해 어두운 과거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대구 달성군 가창지역 첫 유해발굴 작업(2015.3.1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편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에 따르면, 10월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은 보도연맹에 강제가입돼 경찰의 주요 사찰대상이 됐다. 이 가운데 좌익정치범으로 몰려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집단적으로 학살되기도 했다. 특히 대구에선 50년 6~9월에 가창골, 경산코발트광산, 앞산빨래터, 학산공원, 신동재, 파군재 등에서 학살이 집중된 것으로 유족회는 보고 있다. 대구형무소 수감된 재소자 2~3천여명과 전국 각지에서 잡혀온 보도연맹 관련자 5~8천여명 등이 이곳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10월항쟁은 당시 미군정 식량정책 실패 때문에 발생했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시민들은 노동자파업에 대한 경찰발포로 노동자 2명이 숨지자 이에 분노해 다음날 시청에서 기아데모(굶주린 부녀자들이 쌀을 달라고 하는 시위)를 했다. 대구역에서는 노동자들이 경찰과 대치하다 십수 명 사살됐다.

 
 
▲ 10월항쟁 희생자에게 묵념하는 유족과 시민단체 활동가(2014.10.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2005년부터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국가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승만 정권 당시인 1950년 7~8월까지 우리나라 군인과 경찰에 의해 민간인 3천여명이 경산코발트광산 등에서 집단사살됐다. 주로 경산과 청도의 보도연맹원과 대구형무소 수감자들로 전쟁이 일어나자 북한군에 협조할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희생됐다.

과거사위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가창골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민간인 2천~3천여명이 집단사살됐다고 보고서에 나왔다. 10월항쟁은 이름이 확인된 희생자만 204명에 이른다. 이후 정부와 시민단체 유족들은 6차례에 걸쳐 유골 5백여구를 발굴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로 정권 교체 후 과거사위 활동은 중단됐고 예산지원도 끊겨 진상규명 작업은 모두 중단된 상태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낙연 의원이 지난 2012년 처음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했지만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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