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에도 '이주노조' 설립 막는 정부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07.27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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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 수도권 이주노조 신고 또 반려 "규약 문제" / 대구노동청장ㆍ연대회의 29일 면담


'이주노조 설립'을 촉구하며 대구노동청에 항의하는 노조(2015.7.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주노조 설립'을 촉구하며 대구노동청에 항의하는 노조(2015.7.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주노동자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10년만에 나왔지만, 정부가 노조 설립 신고서를 계속 반려해 이주노동자들이 노조 설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국 이주노동자들과 노조는 "대법원 판결, 헌법, 노동법을 무시하는 정부의 노조탄압"이라며 "설립 신고를 수용하라"고 촉구했다.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연대회의(공동대표 김헌주 박명애 박순종 오세용 임성열)는 27일 대구지방노동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0년만에 이주노동자 노조 설립 합법화가 이뤄졌지만 정부는 노조 설립을 인정할 수 없다며 말도 안되는 몽니를 부리고 있다"며 "노동자라면 누구나 설립할 수 있는 노조를 인정 않는 박근혜 정부는 노조탄압을 멈추고 설립을 인정하라"고 했다.

'이주노조 설립 탄압 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2015.7.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주노조 설립 탄압 고용노동부 규탄 기자회견'(2015.7.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6월 25일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주노조, MTU)이 노조 설립을 인정해 달라며 서울지방노동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노조 손을 들어줬다. 노조가 소송을 낸지 10년만이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부는 노조 설립을 인정하는 필증을 발부해야 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설립 필증을 발부하는 대신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에게 설립신고 보완을 요구하는 공문을 지난 7월 7일 보냈다. 이주노조의 규약이 노조법이 노조설립 결격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정치운동을 주 목적'으로 하고 있어 설립신고서를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단결권 막는 노동부 규탄' 피켓을 든 시민들(2015.7.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주노동자 단결권 막는 노동부 규탄' 피켓을 든 시민들(2015.7.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노동부가 문제 삼은 이주노조 규약은 '단속추방 반대',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 '고용허가제 반대', '연수제도 폐지' 등이다. 또 노동부는 앞서 2005년 이주노조가 낸 설립신고서에 쟁의행위와 관련한 찬반투표 규약, 총회 절차, 조합 해산 절차 등이 기재되지 않았다며 설립신고서를 반려했다.

때문에 이주노조는 규약을 수정해 노동부에 다시 설립신고서를 냈다. 그러나 노동부는 7월 23일 '이주노동자 합법화' 등의 정치운동 내용이 여전히 규약에 있다며 또 보완을 요구하며 노조 설립 신고서를 반려했다. 대법원 이주노조 설립 합법화 판결 후 한달간 2번이나 노조 설립을 거부당한 셈이다.

대구노동청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러 가는 노조(2015.7.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노동청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러 가는 노조(2015.7.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와 관련해 전국 노조와 시민단체는 27일 동시다발적으로 기자회견, 1인 시위를 열고 노동부를 규탄했다. 특히 이들은 "노조설립은 신고제지 허가제가 아니다"며 "정치운동을 이유로 설립을 늦추는 것은 정부에 순종적 활동만 하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주노동자의 사회경제적 권리개선과 지위 향상을 위해 고용허가제, 강제추방을 폐지하라는 것은 인권 문제"라며 "정치운동이 아니다"고 했다. 
 
대구경북 노조와 시민단체도 이날 대구노동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기동 대구노동청장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 청장이 면담 요청 공문을 보내지 않았다며 만남을 거부했다. 때문에 노조와 노동청 직원, 경찰은 노동청 로비에서 1시간 넘게 몸싸움을 벌였다.

그 결과,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 연대회의와 최 청장은 오는 29일 오후 노동청에서 공식 면담을 갖고 이주노동자 노조 설립과 관련한 대구경북지역 현황을 의논하기로 했다.

노동청장이 면담을 거부해 실랑이가 벌어진 노동청 로비(2015.7.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노동청장이 면담을 거부해 실랑이가 벌어진 노동청 로비(2015.7.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경북 이주노동자는 지난해 기준 3천5백여명이다. 그러나 대법원 노조 설립 합법화 판결 후 설립신고서를 낸 사례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대구경북 이주노동자가 노조 설립을 신고하기 위해선 기초단체 한 곳에 해당할 경우 관할 구·군청에만 신고서를 내면 되고, 여러 기초단체를 걸칠 경우에는 대구시청에, 대구시와 경북도가 모두 포함될 경우에는 대구노동청에 신고서를 접수하면 된다. 대구경북에서 이주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한 경우는 성서공단노조 등 3곳으로 모두 5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박순종 이주노동자대구경북연대회의 공동대표는 "노동부가 이주노동자 노조 설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 땅의 모든 노동자와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노동부의 반복된 반려는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고 헌법과 노동법적 가치도 저버린 행위다. 즉각 고집을 중단하고 설립을 인정하라"고 했다.

김헌주 이주노동자대구경북연대회의 공동대표는 "가장 낮은 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만든 게 이주노조"라며 "대법원도 합법 판결을 내렸는데 노동부가 말도 안되는 억지로 거부해 또 차별받고 있다. 이주노조가 인정돼 다른 지역 이주노동자들도 스스로 노조를 만들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관계법제과의 한 담당자는 27일 평화뉴스와의 통화에서 "이주노조 설립신고서를 반려한 것은 이주노조 규약상 잘못된 곳이 있기 때문"이라며 "정치운동 목적 문구들이 아직 있어 수정 보완을 요구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거나 이주노조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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