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폭염에 쪽방,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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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좁은 골목 단칸방, 창문도 통풍도...'폐지' 주우러 거리 나서기도 힘들어


낮 최고기온이 37도까지 치솟은 8월 4일, 대구시 중구 대신동 '쪽방촌' 일대는 낡은 선풍기의 '덜덜덜' 소리로 가득 찼다. 올해로 20년째 여인숙 단칸방에서 지내온 이모씨(58.여)는 유난히 더운 올 여름이 "야속하다"고 했다.

경남 거창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이씨는 36살이 되던 해, 손수 지은 농작물을 장에 팔러 나가는 길에 갑작스런 사고를 당했다. 대구의 한 병원에서 2년 동안 치료를 받고 세상 밖으로 나온 그에겐 갈 곳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찾게 된 대신동 여인숙 쪽방이 그의 20년 터전이 됐다. "요즘같이 더운 날엔 방안에 들어가기가 겁나" 요즘 그는 여인숙 마당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작은 창문하나 없어 통풍이 잘 안 되기 때문에 해가 저물어도 방의 온도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대구시 중구 대신동 쪽방촌 일대. 좁은 골목을 따라가면 여관이나 여인숙의 쪽방이 있다. (2015.8.4)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대구시 중구 대신동 쪽방촌 일대. 좁은 골목을 따라가면 여관이나 여인숙의 쪽방이 있다. (2015.8.4)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대구시 중구 대신동의 '쪽방' 입구(2015.8.4)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대구시 중구 대신동의 '쪽방' 입구(2015.8.4)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한여름의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던 시간, 유모(59.남.중구 대신동)씨의 단칸방은 유난히 컴컴했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1평 남짓한 방은 형광등을 켜지 않으면 밤낮을 구별할 수 없었다.

유씨는 올해 5월부터 대신동 여관 달셋방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폐가 안 좋아 조금이라도 무리해서 움직이면 숨이 가쁘다고 했다. 방 바로 옆에 있는 공동화장실에서 흘러나온 냄새가 유씨의 단칸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난해 유씨는 영천의 한 병원에서 9개월을 보냈고, 병원에 가기 전에는 경상감영공원 일대의 쪽방에서 지냈다. 퇴원 후 그는 다시 '또 다른' 쪽방으로 돌아왔다.

여인숙의 쪽방 거주자들이 이용하는 공동화장실(2015.8.4 대신동)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여인숙의 쪽방 거주자들이 이용하는 공동화장실(2015.8.4 대신동)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유씨는 "아침에 달성공원 무료급식소에 밥 먹으러 가는 게 유일한 바깥 외출"이라고 했다. 나머지 시간은 방에 가만히 누워 하루를 보낸다. 그는 "움직이면 덥고, 몸도 편치 않아 웬만하면 그냥 누워있다"고 했다. "몸이 너무 마르셨어요"라는 말조차 안쓰러울 정도로 그의 몸은 야위었다.

김모(59.남.중구 대신동)씨는 올해 초, 지내던 쪽방에서 쫓겨나 대신동의 새로운 쪽방으로 옮겨왔다. 함께 살던 친구가 술을 마시고 쪽방주인에게 실수를 하는 바람에 이곳으로 오게 됐다. 그는 매달 40만원가량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생계를 이어가지만, 월세 15만원을 내고 남은 돈으로 교통비, 세금, 식비를 해결하기엔 생활이 빠듯하다. 그래서 김씨는 폐지를 주워 팔아 하루에 몇 천원의 돈을 벌고 있지만 폭염이 지속되면서 거리에 나서기가 어려워진 상황이다.

김모(59)씨의 쪽방. TV와 선반 위에 냄비와 라면 등이 쌓여있다.(2015.8.4 대신동)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김모(59)씨의 쪽방. TV와 선반 위에 냄비와 라면 등이 쌓여있다.(2015.8.4 대신동)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이처럼 쪽방촌 사람들은 힘겨운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 엄희정 대구쪽방상담소 간사는 "실제 쪽방 주민들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조금만 더 있다가 가라며 붙잡으시는 경우가 많다"며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사람'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작은 관심이 큰 힘이 된다.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대구쪽방상담소는 지난 6월 29일 '쪽방주민 폭염나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대학생 40여명으로 구성된 '쪽방주민 사례관리 봉사단'은 4~5명씩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쪽방촌을 방문해 모니터링 활동을 한다. 봉사단은 쪽방 주민들의 건강상태 점검과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라면과 선풍기 등 생계지원물품을 전달한다. 캠페인은 8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쪽방 거주자 6명이 이용하는 공동세면실(2015.8.4 대신동)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쪽방 거주자 6명이 이용하는 공동세면실(2015.8.4 대신동)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장민철(40) 대구쪽방상담소 소장은 "쪽방 거주민들의 폭염 피해에 대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지만 일시적인 문제 해결만 가능할 뿐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의료나 생계와 같은 복지적인 접근이 아닌 '주거환경'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단순 복지뿐만 아니라 주택과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불균형에 대한 문제들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구시에서는 지난 2001년부터 쪽방주민 복지사업에 매년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3억 4천만원의 예산을 분기별로 4번에 걸쳐 대구쪽방상담소에 지원한다. 지난 6월말에는 폭염피해에 대비해 700만원의 보조금이 추가로 지급됐다. 대구쪽방상담소는 대구시로부터 지원받은 예산을 쪽방주민 생계지원물품 구입, 상담소 운영비, 인건비 등에 활용한다.

박만원 대구시 복지정책과 주무관은 "쪽방촌 주거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하다"며 "새로 집을 지어드릴 수는 없지만, 기업이나 복지 단체의 꾸준한 지원으로 생활에 보탬을 드리고 있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6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는 대구시 중구 대신동의 한 쪽방촌(2015.8.4)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16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는 대구시 중구 대신동의 한 쪽방촌(2015.8.4)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여관 한 쪽에 쌓인 연탄(2015.8.4 대신동)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여관 한 쪽에 쌓인 연탄(2015.8.4 대신동) / 사진.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쪽방'이란 경제적 취약계층의 주거형태 중 하나로 보증금 없이 일세, 월세로 운영되는 1평 남짓한 주거공간을 말한다. 현재 대구지역 쪽방촌은 중구 시민회관과 달성공원, 동구 동대구역과 고속버스터미널, 서구 원대동과 북부정류장, 북구 칠성동과 대현동, 남구 서부정류장 인근 지역에 형성돼 있다. 이 가운데 대구지역 전체 쪽방의 40% 정도가 중구에 밀집해 있다.

대구쪽방상담소에 따르면 현재 대구에는 130개 쪽방 건물(대구시 집계 123동), 1586개의 쪽방(대구시 집계 1311실)이 있고, 모두 888명의 거주민이 있다. 이 가운데 기초수급자는 335명이고 나머지 338명은 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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