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함께 닦아야 할 위안부 할머니의 '마지막 눈물'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09.01 10: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숙이(94) 할머니 삶 다룬 영화 '마지막 눈물' 대구 상영..."잊지 말아주오"


영화 '마지막 눈물'의 한 장면, 1945년 8월 15일 광복절(2015.8.31) /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영화 '마지막 눈물'의 한 장면, 1945년 8월 15일 광복절(2015.8.31) /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6살 귀밑머리 소녀 '숙이'는 1939년 외사촌과 조개를 캐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고향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을 떠나는 마지막 길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본군에 붙잡힌 숙이는 강제로 배에 태워진 채 일본 나고야를 거쳐 중국 만주에 내리게 됐다. 잊을 수 없는 지옥같은 7년의 시작이었다.

"누구 없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꺼내주세요. 무서워요. 여긴 너무 춥고 어두워요" 소녀의 외침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엄마, 아빠, 오빠...가족들의 얼굴이 아른거렸지만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영화 '마지막 눈물','엄마가 그리워 돌아왔어요'(2015.8.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영화 '마지막 눈물','엄마가 그리워 돌아왔어요'(2015.8.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숙이가 타고온 배에는 전국 각지에서 잡혀온 비슷한 또래의 다른 소녀들이 있었다. 강제로 끌려온 소녀들은 하루 수십명의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강요당한 고통의 밤낮이 이어졌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숙이는 위안부 생활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중국에서 일본을 거쳐 4년만에 조국으로 돌아왔다. 11년만에 고향 남해 고현면으로 왔다.

"엄마 해방이 되고 고국에 왔어요. 부끄럽고 수치스럽지만 돌아왔어요. 죄송해요. 그 동안 어떻게 돌아갈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몰랐어요. 다음 세상에서는 절대 헤어지지 말고 오래오래 함께 살아요"


16살 소녀는 27살 성인이 돼서야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러나 고향에는 반겨줄 가족들이 없었다. 가족들은 이미 모두 뿔뿔이 흩어진 뒤였다. 숙이는 환영하는 이 하나 없는 고향을 도망치듯 등졌다. 올해로 아흔넷. 소녀는 할머니가 됐다. 박숙이 할머니의 70년 전 이야기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영화 '마지막 눈물' 중 박숙이 할머니의 고백(2015.8.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영화 '마지막 눈물' 중 박숙이 할머니의 고백(2015.8.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결혼도 하고 싶었고 아기도 갖고 싶었어 그런데 내가 가질 수 없잖아. 그래서 34살 때 고아원에서 아기를 3명 입양해 키웠어. 이제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말하지도 못해.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났고 기억하고 싶지도 않아. 하지만 내 아까운 청춘 누가 보상할 수 있어. 많이 외롭고 힘들고 아프지만 이제 말하고 싶어. 내가 왜 그렇게 아팠어야 했는지. 잊지 말아주오. 나라 없는 설움 다시 없어야 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박숙이(94.남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마지막 눈물(The Last Tear)>이 대구에서 상영됐다. 매일신문사는 31일 저녁 대구은행 본점에서 올해 광복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지막 눈물 상영회를 열었다. 이날 상영회에는 대구지역에 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7) 할머니를 비롯해 시민 300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 30분가량 진행됐다.

영화 '마지막 눈물' 중 수요시위에 참석한 소녀(2015.8.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영화 '마지막 눈물' 중 수요시위에 참석한 소녀(2015.8.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영화 관람 후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짧은 증언도 이어졌다. 이 할머니는 "나도 16살에 붙들려 갔다. 군인 5명이 밤에 잡아갔다. 아무것도 몰랐다"며 "내가 왜 그런 고통을 당해야 했나. 더 이상 피해자로 살기 싫다. 대사관 앞에서의 23년 외침. 이제 일본은 책임지고 사과하고 배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매년 위안부 생존자의 숫자가 줄어든다. 이제 그걸 세는 것도 싫다"면서 "해결할 때까지 2백살이 넘어도 못 죽는다. 우리 민족 모두의 일에 함께 해달라"고 강조했다.

위안부 피해자 대구지역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2015.8.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위안부 피해자 대구지역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2015.8.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 영화는 재미동포 크리스토퍼 리 감독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의 한미연구소가 공동제작했다. 영화는 한미 대학생들이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듣고 현장을 되짚는 과정을 담았다. 주인공인 박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보다 늦은 2012년에 정부에 등록했다. 지난해까지 학교 강연을 돌며 아픈 역사를 증언했지만 현재 건강상의 이유로 남해 한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영화는 광복 70주년인 지난 8월 15일 미국 워싱턴 D.C와 미국 해군기념극장에서 상영됐다. 앞서 12일에는 서부 로스앤젤레스도 상영됐다. 국내에서는 8월 28일 박 할머니 고향인 남해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첫 상영됐다. 당초 대구에서 첫 상영을 하기로 했지만 남해여성회가 박 할머니가 주인공인 영화를 고향에서 처음 상영하자고 제안해 대구에서는 2번째 상영을 하게 됐다. 오는 10월 12일에는 국회의사당에서 상영회가 열릴 예정이다. 또 제작자들은 대학을 중심으로 작은 영화제도 가질 계획이다.

'마지막 눈물'은 시민 3백여명이 관람했다(2015.8.31.대구은행)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마지막 눈물'은 시민 3백여명이 관람했다(2015.8.31.대구은행)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