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원전 주민투표 앞둔 영덕에 '추석 선물' 논란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09.23 09: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전 예정지 주민들에게 4억원치 쌀·성금...투표추진위 "향응·부적절" / 한수원 "순수지원"


추석 연휴를 나흘 앞둔 22일 아침 10시 30분. 경북 영덕군 영덕읍 창수면 한 동네 이장 이영도(가명)씨는 갑작스런 호출을 받고 보건소로 나갔다. 보건소 앞에는 이씨처럼 영문도 모른채 불려나온 각 마을 이장들이 있었다. 그들을 기다린 건 5톤트럭. 차에는 20kg짜리 쌀 수백포대가 실려 있었다.
 
기사는 각각 쌀 20포대를 나눠주고 각 동네 주민 10명 이름이 적힌 쪽지를 건넸다. 이씨는 자신의 쪽지에서 동네 주민 10명의 이름을 확인했다. 모두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로 60대 이상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었다. 기사는 특별한 설명 없이 명단대로 배달해 달라고 지시한 뒤 쪽지를 수거해 자리를 떴다.

쌀을 감싼 비닐을 걷자 포대 겉 표면에는 '사랑海요 영덕 쌀 나눔', '풍요로운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 아래 <한국수력원자력(주) 임직원 일동>이라고 적혀 있었다. 영덕군이 신규 원자력발전소 예정부지로 선정돼 한수원이 추석 선물을 영덕 주민들에게 보낸 것이다. 앞서 21일에는 조석(58) 한수원 사장이 직접 영덕읍 남석2리 80대 할머니 집을 찾아 쌀 2포대를 전달했다. 쌀이 전달된 남석리와 창수면 등은 각각 원전 예정부지 반경 5km, 20km 안에 포함된 동네다.

21일 영덕군 남석2리 주민에게 한수원이 보낸 추석 쌀 / 사진.영덕주민투표추진위
21일 영덕군 남석2리 주민에게 한수원이 보낸 추석 쌀 / 사진.영덕주민투표추진위

이영도씨는 평화뉴스와의 통화에서 "원전이라는 쓰레기를 주고 쌀만 보내면 해결되냐"며 "선물을 주면 주민 마음이 돌아설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선물 필요없으니 원전 갖고가라. 참 별짓을 다 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어 "이장을 배달부로 쓴 것도 괘씸하고, 차상위계층은 이장도 모르는데 명단을 어떻게 구한 건지도 의심스럽다"면서 "선심쓰고 상생이라고 포장하는 게 구차하다"고 지적했다. 

추석을 앞두고 경북 영덕군 주민들에게 쌀과 성금 등 각종 선물이 전달되고 있다. 신규 원자력발전소 예정부지로 선정된 후 한국수력원자력이 사회공헌사업차 4억원상당의 지원금을 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전 건설 반대 주민 여론이 점점 높아져 가고, 원전 건설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11.11)를 앞둔 상황에서 이 같은 한수원 지원이 선심성 공세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주민투표추진위는 "한수원이 돈으로 여론을 왜곡하려 선물 공세를 펼친다"며 "부적절한 향응성 지원"이라고 비판한 반면, 한수원은 "영덕 주민과 소통하고 상생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취약계층에 순수하게 지원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수원은 추석을 앞둔 지난 21일부터 원전 건설 예정부지 영덕군에 기초생활수급자 등을 대상으로 쌀 2억7천만원치와 기부금 1억5천만원 등 모두 4억2천만원을 전했다. 영덕이 원전 부지로 선정된 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수원이 진행하는 지역밀착형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이다. 앞서 8월에는 수박과 복숭아 등을 주민들에게 전달했고, 9월 초부터는 영덕군내 노인들을 대상으로 목욕봉사도 하고 있다.

영덕원전 조건부 수용 규탄 기자회견(2015.9.18.영덕군청) / 사진.영덕주민투표추진위
영덕원전 조건부 수용 규탄 기자회견(2015.9.18.영덕군청) / 사진.영덕주민투표추진위

이에 대해 영덕 주민들과 '영덕핵발전소 찬반주민투표 추진위원회(위원장 백운해)'는 반발하고 있다. 박혜령(46) 영덕원전 주민투표 추진위 활동가는 "찬반 주민투표를 앞둔 상황에서 유권자 주민들에게 선물을 보낸 것은 표 매수 행위로 보여 부적절하다"며 "과일, 돈도 모자라 쌀까지 보내 여론을 돈으로 사려 하는 것 아니냐. 금품 지원은 향응성이 짙다. 동기가 불순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수원이 지난 9월 6일부터 8일간 일정으로 지방언론사 소속 기자 8명에 대해 원전시찰을 명목으로 유렵 여행경비 7천3백만원을 지원한 것을 언급하며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주민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돈을 푸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그만 중단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반면 한수원의 한 관계자는 "영덕 주민들과 상생협력하고 지역 내 사회적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라며 "불순한 의도가 전혀 없는 순수한 목적의 지원과 봉사활동"이라고 해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앞서 7월 22일 신고리 7~8호기를 영덕에 건설하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150만kW의 대규모 원전 2기를 2026~2027년까지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완공 후에는 명칭을 신고리 7~8호기가 아닌 '영덕 1~2호기'로 바꾼다. 2029년까지 6GW 신규 원전 2기도 영덕이나 삼척 중 한 곳에 추가 건설한다. 신고리 7~8호기에 신규 원전 2기까지 지으면 영덕에는 원전 4기가 들어선다. 영덕 원전 예정 부지는 영덕읍 석리, 노물리, 매정리와 축산면 경정리 일대 324만㎡다. 예정 부지 반경 30km 안에는 영덕군 전체와 영양, 포항 북부, 울진 남쪽지역이 포함된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