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신규원전 주민 찬반 투표 '폄훼' 논란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10.3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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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전단지로 '외부세력'ㆍ'불참' 조장 / 투표추진위 "허위사실, 민주주의 무시"


"원자력발전소가 집 앞에 들어설 판이다. 누가 가만히 있겠나. 그래서 주민투표를 하자는데 방해가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도움이 절실한 판국에 외부세력이라니.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것이다"


경북 영덕군 남정면에 사는 김억남(47) 영덕핵발전소 찬반주민투표 추진위원회 총무국장은 30일 이 같이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영덕군 신규원전 예정지로부터 반경 10km 이내에 살고 있다.

"외부세력 한수원 떠나라" 피켓을 든 시민들(2015.10.28) / 사진 제공.영덕주민투표추진위
"외부세력 한수원 떠나라" 피켓을 든 시민들(2015.10.28) / 사진 제공.영덕주민투표추진위

김 국장은 "원전 부지 선정과 관련해 애초부터 절차상 문제가 있어 뒤늦게라도 주민투표를 하자는 건데 이걸 보고 외부세력 운운하는 것은 억지"라며 "7월에 투표를 위한 도움을 요청할 때는 정부도 영덕군도 가만히 있다가 코 앞에 다가오니 이제 투표를 비난하는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투표추진위는 주민들로 구성됐고 집회에도 주민이 대다수인데 주민이 외부세력이라면 내부세력은 누구냐"며 "누가 진정한 외부세력인가. 금품과 인맥을 동원해 임의단체를 만들고 투표 무력화 작업을 하는 한국수력원자력이야말로 외부세력이다. 한수원은 투표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덕 주민투표는 합법입니다' 기자회견(2015.10.27) / 사진 제공.영덕주민투표추진위
'영덕 주민투표는 합법입니다' 기자회견(2015.10.27) / 사진 제공.영덕주민투표추진위

영덕 원전 찬반 주민투표를 폄훼하는 주장들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30일 영덕핵발전소 찬반주민투표 추진위와 영덕핵발전소 반대 범군민연대에 따르면, 10월 중순부터 영덕 곳곳에 신규원전 찬반 주민투표를 '불법'·'탈법'이라고 비난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있다.

'영덕군발전위원회'라고 밝힌 단체가 내건 현수막을 보면 '법적 효력없는 탈법투표 참여하면 안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또 같은 단체는 '일부 단체에서 추진하는 원전 건설 찬반투표는 실리도 명분도 없습니다. 원전 찬반투표를 거부합시다'라는 제목의 전단지도 주민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전단지에는 '원전이 영덕의 백년대계를 위한 군민들의 염원을 실현해 줄 것'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한수원도 지난 10월 16일자 <고향신문>에 '주민투표 불법, 주민갈등 증폭'이라는 전면광고를 냈다. 이어 일부 보수매체도 지난 24일 '외부세력이 주민투표를 주도한다' 내용의 사설과 기사를 보도했다. 이들 매체는 '전문 선동꾼', '외부인이 들쑤신다'는 표현으로 주민투표를 비하했다.

영덕 주민투표 불참을 독려하는 현수막 / 사진 제공.영덕주민투표추진위
영덕 주민투표 불참을 독려하는 현수막 / 사진 제공.영덕주민투표추진위
영덕 주민투표 반대 전단지 / 사진 제공.영덕주민투표추진위
영덕 주민투표 반대 전단지 / 사진 제공.영덕주민투표추진위

지난 28일에는 조석 한수원 사장과 정동희 산업통상자원부 원전산업정책 국장이 원전 유치 홍보활동을 펼치러 영덕발전소통위원회에 참여했다가, 투표추진위 주민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소통위 회의에 들어가려는 주민들을 경찰이 저지해 주민 1명이 다쳐 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았다.

이에 대해 투표추진위와 범군민연대는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고 산자부와 한수원은 원전 부지를 선정해, 주민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공정하고 정당한 절차를 밟아 주민투표를 진행하는 것"이라며 "산자부, 한수원, 보수매체는 주민의 정당한 권리를 불법, 외부세력이라는 허위사실로 폄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때문에 이들은 "11월 11일 주민투표를 정당한 절차대로 진행할 것"이라며 "정부와 한수원은 주민투표 결과를 겸허히 수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한수원 영덕사무소 관계자는 "이미 주민들과 의사소통을 위해 소통위와 발전위를 구성해 여론을 수렴 중"이라며 "일부 단체와 세력이 추진하는 주민투표는 법적 효력도 없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마찰만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갈등은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편, 투표추진위는 29일 신규원전 찬반 주민투표 용지를 공고했다. 투표는 11월 11∼12일 이틀동안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진행되며, 신분증을 지참한 영덕 주민이라며 누구나 투표 가능하다.

앞서 7월 7일 추진위는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주민투표 청구인대표자증명서'를 이희진 영덕군수에게 보냈다. 주민투표법에 따라 주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지자체 결정에 대해 주민들은 투표를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군수는 7월 21일 추진위에 공문을 보내고 주민투표 거부 의사를 전달했다.

이후 산업통상자원부는 7월 22일 신고리 7~8호기를 영덕에 건설하는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150만kW의 대규모 원전 2기를 2026~2027년까지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완공 후에는 명칭을 신고리 7~8호기가 아닌 '영덕 1~2호기'로 바꾼다. 2029년까지 6GW 신규 원전 2기도 영덕이나 삼척 중 한 곳에 추가 건설한다. 신고리 7~8호기에 신규 원전 2기까지 지으면 영덕에는 원전 4기가 들어선다. 영덕 원전 예정 부지는 영덕읍 석리, 노물리, 매정리와 축산면 경정리 일대 324만㎡다. 예정 부지 반경 30km 안에는 영덕군 전체와 영양, 포항 북부, 울진 남쪽지역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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