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장시간·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대구 청년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12.0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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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태조사] 6백명 중 70%대 초과근무에 수당도 못 받고 휴가도 못가고..."청년이 떠나는 이유"


대구 청년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2015.12.9.대구시청)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청년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발표(2015.12.9.대구시청)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한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보육교사 김아영(30.가명)씨는 대체교사가 없어 이 곳에서 일한 지난 수 년 동안 한 번도 연차휴가를 못 썼다. 은행을 이용할 시간은 물론 아파도 쉴 수조차 없다. 불가피하게 병원에 가야하는 경우에는 원생들이 잠든 낮잠시간을 이용해 잠깐 병원에 다녀올 뿐이다.

대기업 한 통신사 대구지사에서 영업관리직으로 일하는 이형준(29.가명)씨는 업무가 끝난 저녁 7시에도 퇴근하지 못한다. 상사가 과도하게 업무지시를 내리기 때문이다. 일터를 나갈 시간이면 상사는 자신의 일감을 이씨에게 주고 마감업무에 비서 노릇까지 시킨다. 많으면 하루 15시간 일할 때도 있다.

박영준(23.가명)씨는 대구지역 한 음식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알바)를 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 5,580원에 미치지 못하는 시급 5천원을 받아 빠듯하게 생활비를 대고 있다. 그러나 박씨는 올해 초 일하는 시간 도중 문자가 와 잠깐 핸드폰을 봤다가 그 이유로 월급에서 1시간을 뺀 임금을 받았다.

대구지역 청년노동 실태조사 결과보고 기자회견(2015.1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청년노동 실태조사 결과보고 기자회견(2015.1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청년노동자들이 여전히 장시간과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70% 가까이가 법정근로시간을 넘긴 초과근무에 시간외수당도 받지 못하고 휴가조차 제대로 못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청년유니온(위원장 최유리)이 지난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한 달 동안 대구지역 만 15~39세 청년 직장인 400명과 아르바이트생 200명 등 모두 600명을 대상으로 '대구지역 청년노동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대구 청년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9일 밝혔다.

특히 '법정근로시간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직장인 4백 중 77%(308명)로 '지켜진다'고 답한 비율은 23%에 그쳤다. 근로기준법상 한국 법정근로시간은 하루 8시간·주 40시간이다. 주당 평균 근로시간 41~52시간 사이가 42%(167명)로 가장 많았고, 52시간 초과도 35%(140명)나 됐다. 초과 근무 이유로 53.5%(120명)가 '과도한 업무량'을 꼽았다. '상사 눈치(13.3%)', '일과 이외 업무 (9.3%)'도 많았다. '칼퇴근(칼 같이 퇴근하다의 준말)'이 쉽지 않은 현실이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대구지역 청년노동 실태조사 전체 결과 표 / 자료.대구청년유니온
대구지역 청년노동 실태조사 전체 결과 표 / 자료.대구청년유니온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임금수준은 낮았다. 대구 청년 직장인 월평균 임금은 163만원으로 올해 최저임금 기준 월급 116만6,220원(월 209시간기준)보다 40만원 가량 많다. 그러나 고용노동부가 올해 4월을 기준으로 발표한 전국 임금 노동자 월평균 임금 330만5천원에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법정근로시간을 넘긴 업무와 전국 평균을 밑도는 낮은 임금뿐 아니라 수당지급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시간외수당(야간·연장·휴일) 지급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4백명 중 63%인 258명이나 되는 반면, '지켜진다'고 답한 수는 37%(142명)에 불과했다.

뿐만 아니라 80%가 넘는 청년들은 휴가조차 마음대로 떠나지 못했다. 직장인 4백명 중 무려 322명, 81.5%에 이르는 숫자가 '자유로운 휴가 사용을 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 58.8%(235명)는 퇴직금, 65.5%(262명)는 건강검진, 66.3%(265명)는 식사 제공 등 복지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대구지역 청년 직장인 직장 내 복지 적용 비율 표 / 자료.대구청년유니온
대구지역 청년 직장인 직장 내 복지 적용 비율 표 / 자료.대구청년유니온

알바도 역시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렸다. 월평균 임금은 59만원에 불과했고 30만원 미만도 2백명 중 22.5%(45명)나 됐다. 근로계약서도 56.5%(113명)나 쓰지 않았고, 최저임금도 27.6%(56명)가 받지 못했다. 업종별로 최저임금이 가장 지켜지지 않는 곳은 PC방·편의점으로 각각 66.7%, 64.3%의 알바들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연장수당 미준수율 71.1%, 휴일수당 미준수율 82.9%, 야간수당 미준수율 76.2%, 주휴수당 미준수율은 78.5%로 대부분 알바가 법정수당을 못 받았다. 

대구청년유니온은 9일 대구시청 앞에서 실태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대구 청년들은 일상적 착취와 비합리적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현장에서 근로기준법은 유명무실했다. 일정금액을 지불하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놀이동산 자유이용권과 같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알바 처지는 더 처참했다"면서 "최저임금은 물론 수당도 못 받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왜 여자만 커피를...'피켓을 든 대구 청년 노동자(2015.1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왜 여자만 커피를...'피켓을 든 대구 청년 노동자(2015.12.9)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어 "이는 대구시가 표방하는 '창조도시'와 '청년이 행복하게 일하는 도시'에 배치되는 것으로, 매년 청년 만 명이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떠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라고 꼬집었다. 때문에 ▷청년명예근로감독관 제도 도입 ▷노동인권교육 강화 ▷청년알바 보호 권리장전 제정 ▷대구형 청년고용지표 개발을 제안하고 "권영진 시장은 청년 노동 문제 해결에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최유리(29) 대구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장시간·저임금에 휴가와 수당도 없는 게 대구 청년 노동 현실"이라며 "이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대구지역 청년들의 인구 유출은 계속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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