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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모욕한 후에 남이 모욕한다

기사승인 2016.01.20  15: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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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포럼] 김태희 / “나라가 없어 고통당한 우리를 왜 두 번 죽이려는가!”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업신여긴다.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망가뜨린 후에 남이 망가뜨린다.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친 후에 남이 친다."(夫人必自侮, 然後人侮之; 家必自毀, 而後人毀之; 國必自伐, 而後人伐之.)   <맹자〉의 이루(離婁) 상(上)편에 있는 구절이다. 지난 12월 28일, 한일 외교부 장관의 ‘위안부’ 기자회견을 보고 이 구절이 떠올랐다. 

"나라가 없어 고통당한 우리를 왜 두 번 죽이려는가!"

   일본의 무성의보다 우리 외교부의 태도가 더 문제였다. ‘위안부’ 할머니는 외교부 제1차관에게 “일본 외교부예요 ” 하고 물었다. “나라가 없어 나라가 약해서 민족의 수난으로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우리를, 왜 두 번씩 죽이려 하는 거예요 ”라며 울먹였다. 합의했다는 내용에 보통 사람도 모멸감을 느꼈으니, 당사자 할머니는 오죽했겠는가.
 
  ‘위안부’ 할머니가 구술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식민지 소녀의 끔찍한 경험은 읽기가 매우 불편했다. 친절히 대해준 일본 군의관에게 그녀가 연민을 느꼈다는 대목에선 울컥했다. 그녀는 감성 어린 젊은 여자였다. 그 청춘을 어떻게 돌려줄 수 있겠는가.
 
  얼렁뚱땅 돈으로 종결하려는 처사는 인격을 모독하는 행위다. 청춘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이제 인격까지 죽이는 것이다. 이걸 해결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인격이 의심스럽다. 나라의 위정자가 스스로 민초를 모욕하고 나라를 모욕하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

 
 
▲ <한겨레> 2015년 12월 30일자 1면 / (사진 설명) 일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9일 오후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한-일 외교회담 합의안을 설명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를 찾은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에게 정부의 일방적인 회담 진행과 결과 발표를 따지고 있다. / (우측 사진)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나치의 손에 잔혹하게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가해와 피해, 일본과의 악연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과거사로 끝나길 누가 바라지 않겠는가. 그러나 최근 일본의 행태는 과거의 역사를 결코 잊지 말라고 한다. 독도에 대한 태도에서 영토적 야심이 확인되고, ‘위안부’와 ‘소녀상’ 발언에서 강자의 오만함과 비정함이 엿보인다.
 
  고향에선 착했을 ‘이치로’ 일등병을 탓할 것인가, 일본 군국주의를 탓할 것인가. 우리가 나라를 잃었던 탓이다. 일본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 나아가고 있는 이때, 맹자는 우리에게 스스로 나라를 침벌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14일, 황교안 총리는 국회에서 “일본군의 한국 진출이 가능하다”고 답해서 야당의 지탄을 받았다. 이후 “정부 동의가 없으면 일본 자위대는 들어올 수 없다”는 취지라며 동의 요건을 강조했다. 하지만 동의란 게 대단한 요건이 될 수 없다는 게 역사적 경험이다.
 
  120여 년 전 외국군의 침탈은 우리의 요구에서 비롯되었다. 고종과 조정은 임오(1882) 군사 반란과 갑오년(1894) 동학 농민을 진압하기 위해 중국 군대를 불러들인 바 있다. 일본군의 침탈도 그네들의 조약에 따른 자동연계로, 또는 우리 위정자의 동의를 갖추어 이뤄졌다.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침벌한 후에 남이 침벌한다

   위안부 문제로 곤경에 빠진 정부를 또 북한 이슈가 구하는 듯하다. 북한은 지난 1월 6일 핵실험을 강행하고,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선언했다. 북한의 핵에 대한 집착과 의존은 다른 여지가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책이 갈수록 궁색하다. 정부와 여당은 북핵에 관해서 중국이 압력을 행사해달라고 요구하는데, 가당한 것인가.
 
 
 
▲ 대구 수요집회(2016.1.6. 대구백화점 앞)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인턴기자

주변국들은 북핵을 비판하지만 이중적이다. 결국 자국의 이익을 추구할 뿐이다. 일본은 재무장을 합리화하고, 미국은 중국에 대항하는 미-일-한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남·북 양쪽에서 몸값을 올리고 있다. 어느 나라도 이해관계가 우리와 꼭 일치할 수 없다. 물론 주변국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직접 북한에 관여할 여지를 넓히고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강화해야 한다.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서 미국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음이 알려지고 있다. 120년 전에 중국도 러시아에 대항하고자 〈조선책략〉을 통해 조선에게 일본과 동맹을 맺도록 권유하여 조야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발상이었다. 지금 미국의 요구는 중국 견제의 의미가 크다. 이러한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현명한 것일까. 그대로 따르는 것이 능사일까. 우리의 이익과 조화시킬 적극적 모색이 필요하다.
 
  우리가 스스로를 업신여기지 않는다면, 남이 우리를 쉽게 업신여길 수 없으며 설혹 업신여긴다 해도 크게 문제될 바 없다. 우리가 스스로를 침벌하지 않는다면, 남이 우리를 쉽게 침벌할 수 없으며 설혹 우리를 침벌한다 해도 미구에 물리칠 수 있다. 자중자애하고, 모든 인간에게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

 
 

 
 






[다산연구소 - 다산포럼] 2016-1-19  (다산연구소 = 평화뉴스 제휴)

다산연구소 e_da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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