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분열의 역사 논쟁이 우려된다

다산연구소
  • 입력 2016.05.0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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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이만열 / "선거 패배에도 국정화 추진...친일부역세력이 건국유공자로 둔갑할까 우려"


  4.13총선 이후의 여소야대 정국에서도, 정부는 미련스럽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기정방침대로 밀어붙일 모양이다. 교육부 장관이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언명했고,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단과 만난 자리에서도 그 점이 드러났다. 이번 선거 패배의 한 원인으로 국정화 정책도 한몫한 것 같은데, 그걸 무시하고 ‘초지일관’ 국정화를 끌고 가겠다니 그런 만용이 없다.
 
<경향신문> 2016년 4월 27일자 2면(박 대통령ㆍ언론인 간담회)
<경향신문> 2016년 4월 27일자 2면(박 대통령ㆍ언론인 간담회)
  거기에다 현행 교과서로 배우면, “정통성이 오히려 북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을 위한 북한에 의한 통일이 될 수밖에 없다”는 발언까지 있었다 하니, 자신의 정부 책임하에 나온 교과서를 두고 그런 식으로까지 폄훼할 수 있는지 놀랍다. 한마디로 불행이다.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국정화 추진

   교육부는 국정화 정책 후 교과서 편찬기준을 아직도 밝히지 않았다. 교과서 편찬에 앞서 편찬기준을 밝히는 게 상식인데, 내년 3월부터 사용할 교과서를 두고 한다는 말이 “올해 11월에 공개본이 나올 때 집필진과 편찬기준을 밝히는 것이 원칙”이란다. 교과서를 다 써 놓고 발표하는 ‘원칙’이라면, 그것은 국민을 의식하지 않는 오만이요 독선이다. 이런 관료들을 위해 세금을 내야 하는 국민은 분통이 터진다.
 

  감추고 또 감추려고 한 교과서 내용도 어쩌다 한두 개 발각되었다. 근현대사의 분량을 줄이고 고대사를 늘릴거라는 것(이것은 바로 독립운동사를 줄이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과, 1945년 8월 15일을 현재 기술된 ‘대한민국 정부수립’ 대신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1945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건국)’으로 인식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차 언급되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1948년=대한민국 수립(건국)’으로 했을 경우에 나타날 문제점에 대해서만 간단히 언급하겠다.
 
  우선 당장 ‘건국절’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것이다. 이것은 2008년 MB 정권이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가 잠복된 상태다. MB 정권은 집권하자마자 그 해 8월 15일에 ‘건국 60주년’ 기념식을 거행한다고 했다. 그 즈음 뉴라이트 중 어느 분은 8월 15일을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국회에서는 2008년 7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이 일자 그해 9월 철회했다.
 
  MB 정권의 ‘건국60주년’ 기념 시도는 광복회 등의 반대에 부딪혔다. 광복회는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역사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훈장을 반납하겠다면서 강력하게 반대했다. 정부는 광복회에 사과하고 그해 행사도 ‘광복 63주년 및 건국 60주년’으로 절충하여 거행했다. 정부는 또, 대한민국의 건국이 1948년이 아닌 1919년에 이뤄졌다는 내용을 담은 책자를 간행하여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배포하겠다는 광복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 예산을 지원했다.
 
  ‘1948년=대한민국 수립(건국)’설을 국정교과서가 채택하게 된다면, 2008년에 제출되었다가 2012년에 자동폐기된 ‘건국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재등장할 것이다. 이 법안은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4일까지 신탁통치를 반대하거나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을 건국하기 위하여 활동한 건국유공자와 그 유족에 대하여 국가가 적정한 서훈과 응분의 예우”를 하자는 것으로, 해방 정국에서 주로 반공활동에 종사한 이들을 건국유공자로 표창하자는 것이다.
 
  이 법안을 다룬 전문위원은 대한민국의 건국 시기가 이 법률안이 제시한 1948년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법안 제안에서는 대한민국 건국을 1948년 8월 15일로 보고 있으나 그렇게 단정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되었다는 전제가 없이는 이 법률안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학계가 대한민국의 건국을 1948년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그 법률안은 국회 상임위원회에도 부의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되었다. 

친일부역세력이 건국유공자로 둔갑할까 우려

   이런 상황에서 국정교과서가 ‘1948년=대한민국 수립(건국)’으로 서술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정부가 대한민국 건국연도를 1948년으로 확정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2012년에 자동폐기된 법률안이 재등장할 것이다. 이 법률안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면 어떤 현상이 전개될까  그 법률안이 적용대상으로 삼았던 인물이나 단체가 ‘건국 공로자’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 법률안이 지목한 건국공로 단체는 민족통일총본부와 대한독립촉성청년연맹·한국광복청년회·청년조선총동맹(대한민주청년동맹)·서북청년회·대한독립청년단·조선민족청년단·대동청년단·국민회청년단·반탁전국학생총연맹·대한독립촉성국민회·대한민국촉성노동연맹·대한독립촉성부인회 등이었다. 이 중 서북청년회가 거론된 것은 이 법의 성격이 어떤지를 보여준다. 이 법안은 해방정국에서 친일파들이 반공의 그늘로 교묘히 숨어들어가 건국예우의 대상으로 둔갑되어 갔던 것을 합리화하겠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국정교과서는 다시 갈등과 분열의 핵심이 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이, 1945년 8월 15일부터 1948년 8월 14일까지 자신의 친일 행적을 감춘 채 반공활동한 사람들에 의해서 건국되었느냐, 일제 강점기에 감옥과 해외를 드나들며 독립운동을 했던 투사들의 투쟁에 의해 이뤄졌느냐 하는 문제가 다시 불붙을 수도 있다. 만약 친일세력이 ‘건국유공자’라는 이름으로 독립유공자와 같은 반열에 오르게 된다면, 국정교과서는 그 불씨를 제공했다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고, 교과서 국정화 때에 못지않은 역사투쟁이 다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산연구소 - 실학산책] 2016-4-29  (다산연구소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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