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전범기업에 그 죄를 묻는 아들 딸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6.05.0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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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피해자유족회, 경북 영천 '다이셀' 등 전국 34곳서 국내 첫 동시 궐기..."사죄·배상, 국내 철수"


일제징용 유족인 김세경 할머니(2016.5.2.경북 영천 다이셀사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일제징용 유족인 김세경 할머니(2016.5.2.경북 영천 다이셀사 앞)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딸은 아버지를 잘 모른다. "경기도 어디에 살던 농부였다" 어머니의 유언으로만 그를 떠올린다. 서툰 한국말만큼 기억도 흐리다. 기억도 추억도 별로 없는 아버지여도 딸은 아버지를 쓸쓸히 타국에서 돌아가시게 한 '그들'을 용서할 수 없다. 70년 전 그 한을 풀어주고 싶다. 의지는 갈수록 강해진다.  

1930년대 김세경(74) 할머니 아버지 고(故) 김영운씨는 일본군에 의해 현재 러시아 영토인 사할린 섬으로 끌려갔다. 경기도에서 농사를 짓다 영문도 모른채 타국으로 이주됐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으로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강제징용이었다. 아버지는 일본 기업의 한 탄광에서 임금도 못 받고 7년간 혹사당했다. 1945년 조국이 광복을 맞았지만 귀국하지 못했다. 일본 정부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방치했기 때문이다. 사할린에 발이 묶인 아버지는 향수와 이산의 아픔을 지닌채 타국에서 잠들었다.

전범기업 앞에 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83세 할머니(2016.5.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전범기업 앞에 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83세 할머니(2016.5.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사할린 동포 2세대인 김세경 할머니는 2007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당시 아버지에 대한 일본의 강제징용을 확인하고 일본 정부와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그 죄를 묻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업이 아버지 노동을 착취했는지 특정하지 못해 지금도 증명자료를 찾고 있다. 이와 함께 할머니는 국내에 들어온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사죄와 배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2일 경북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 1번지 영천첨단부품소재산업지구. 60~80대 노인 100여명이 같은 조끼에 머리띠를 두르고 현수막과 피켓 등을 들고 집회를 벌였다. 산업지구에서 보기 힘든 광경이다. 이들은 '일제강점기피해자전국유족연합회' 소속 대구경북 회원들로 이날 영천에 있는 일제강점기 당시 '전쟁범죄기업'인 일본 '㈜다이셀 세이프티 시스템즈' 앞에서 첫 궐기대회를 열고 ▷강제징용 사죄 ▷배상 ▷국내 사업 철수를 촉구했다. 이날 집회는 전범기업 34곳이 있는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유가족 100여명이 다이셀 앞에서 첫 궐기대회를 열었다(2016.5.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유가족 100여명이 다이셀 앞에서 첫 궐기대회를 열었다(2016.5.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유족회는 "다이셀은 화약을 만들어 많은 사람을 죽게했다"며 "선친들을 끌고가 노임을 지불하지 않고 사죄는커녕 보상하지도 않은 전범"이라고 비판했다. 또 "김관용 경북도지사, 김영석 영천시장도 국민을 속이고 전범에 특혜를 줬다"며 "같이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요구를 거부하면 매일 집회를 할 것"이라며 "이 기업 제품을 현대자동차·모비스가 사면 현대차 불매운동도 전개하겠다"고 경고했다. 

궐기대회 중 유가족들 중 일부는 잠긴 다이셀 정문을 흔들며 대화를 요구했다. 또 한 유가족은 등과 배에 부탄가스 수 십여개를 두르고 "자폭하겠다"고 소리쳤다. 또 아키히토 일왕 마스크를 마네킹에 붙이고 목을 매다는 퍼포먼스도 진행돼 경찰과 유가족들이 잠시 언쟁을 벌였지만 큰 충돌은 없었다.

부탄가스를 몸에 두른 유족과 이를 말리는 경찰(2016.5.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부탄가스를 몸에 두른 유족과 이를 말리는 경찰(2016.5.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목에 줄이 매달린 아키히토 일본왕 마네킹(2016.5.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목에 줄이 매달린 아키히토 일본왕 마네킹(2016.5.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한철(68) 대일민간청구권국제소송단 본부장은 "아버지는 징용서 얻은 병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하지만 전범기업은 70년째 사죄도 배상도 않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전범기업이 버젓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니 화가 치민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의 아버지 고(故) 김인석씨와 고(故) 김두철씨는 경북 의성군 춘산면에서 모내기 중 일본군에 의해 징용돼 부산 부두를 거쳐 일본 한 광산에서 착취당했다. 

다이셀은 태평양전쟁 당시 군복용 섬유, 카메라 필름을 만든 기업으로 '후지필름'이 이곳에서 분리됐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확보한 1946년 '조선인노동자에 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다이셀은 '大日本セルロイド株式會社網干工場(다이니혼 셀룰로이드 주식회사 아보시공장)'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진 밝혀진 것만 144명의 우리나라 국민들을 강제징용해 착취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징용피해자인 김한철 본부장(2016.5.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징용피해자인 김한철 본부장(2016.5.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다이셀 등 전범기업들은 한 번도 우리나라 피해자들을 상대로 사죄나 배상한 적이 없다. 이 상황에서 다이셀은 2011년 2,600만달러를 들여 영천에 자동차 부품공장을 지었다. 특히 다이셀은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청 1호 MOU 체결 외국기업이다. 이 과정에서 경상북도와 영천시가 공장 설립과 운영에 필요한 각종 인·허가 등 행·재정적 지원을 한 것으로 나타나 비난을 사고 있다. 

한편 유족회는 올초 "징집피해자 100명을 모아 전범기업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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