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곳곳에도 강남역 '묻지마 범죄' 희생자 추모 이어져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입력 2016.05.20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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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가 될 수도"...강력범죄 여성 피해자 급증..."언론 시각도 문제"


"사람들이 가해자의 꿈만 물어요.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내가 겪었을지도 모를, 나를 대신해 희생당한 당신. 편히 쉬세요"

여성을 대상으로 일어난 '묻지마 범죄' 피해자에 대한 추모가 중앙로역 등 대구 곳곳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7일 새벽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한 노래방 공용 화장실에서 남성 김모(34)씨가 여성을 흉기로 살해했다. 다음날 경찰에 붙잡힌 김씨는 "평소 여성에게 무시당했다"며 범행 동기를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와 피해 여성은 서로 모르는 사이로, 그는 범행 전 주변을 한 시간 이상 배회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강남역 10번 출구에 여성에 대한 혐오와 강력범죄를 비판하는 포스트잇을 붙이며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20일 오전 수 백여개의 추모글이 중앙로 2번출구 옆을 가득 메웠다.(2016.5.20. 중앙로역)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20일 오전 수 백여개의 추모글이 중앙로 2번출구 옆을 가득 메웠다.(2016.5.20. 중앙로역)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이러한 추모 포스트잇은 서울뿐 아니라 대구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강남역 추모 행렬이 시작된 다음날인 19일 오전부터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2번 출구에는 국화꽃, 안개꽃이 놓여졌다. 계단 난간에는 '살女주세요. 살아男았다', '지금 살아있는 우리는 잠재적 피해자. 내일은 내가 될 수도...' 등과 같이 묻지마 범죄의 대상이 된 여성 피해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추모의 뜻을 전하는 쪽지가 붙여졌다. 하루만에 수백여개의 포스트잇이 붙어져 20일 오전에는 난간을 가득 메웠다. 중앙로뿐 아니라 대구교대, 영남대, 신천 지하철역과 대구가톨릭대 버스정류장 등에도 추모의 물결이 계속되고 있다.

중앙로에는  테이프와 포스트잇, 펜이 작은 종이봉투에 담겨져 있다. 추모의 메시지를 쓰고 뒷사람을 위해 물품들을 두고 갔기 때문이다. 지인이 모 카페 회원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대구의 추모 포스트잇 물결은 여성회원이 많은 한 카페에서 시작됐다"며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대구뿐 아니라 부산, 춘천 등 전국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많은 이들의 공분을 샀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너의 꿈은 무엇이니?" 묻지마 범죄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 (2016.5.19. 중앙로역)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너의 꿈은 무엇이니?" 묻지마 범죄로 억울하게 희생당한 피해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 (2016.5.19. 중앙로역)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앞서 17일 오후 4시쯤 '강남역 살인사건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트위터 계정 '@0517am1'가 개설됐다. 이 ID(아이디)는 사건이 발생한 5월 17일 새벽 1시를 따온 것으로 알려졌다. 개설자는 "이 사건이 묻히지 않도록 많은 관심을 바란다. 여성폭력과 살해에 대해 사회가 답할 차례"라며 "이번 일이 조용히 넘어간다면 다음은 내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이 게시글은 1만건 이상 공유됐다.

이 사건을 바라보는 언론의 시각에도 문제가 제기됐다. 한 일간지는 "강남역 노래방 살인녀"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달아 비난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여성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강력범죄에는 여성이 피해자임에도 '-녀'라는 수식이 따라온다. 이는 자칫하면 여성이 잘못했다는 인식을 갖게 한다. 또 가해자가 네 차례 정신 치료를 받은 병력이 있고, 신학교를 다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은 "사건의 본질을 흩트리려는 시도"라고 일축했다. 

전모(24)씨는 "평소 범죄나 사고로 인한 피해자를 돕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일뿐 아니라 우리 사회는 피해자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부족하다"며 국화꽃을 놓으며 희생자의 넋을 기렸다. 전씨는 "밤 늦게 다녀도 아무 걱정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면서 "사건이 일어나면 노래방녀, 염산녀라는 이름을 붙이고, 여성에게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운다. 피해자가 존중받고 여성이기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 20대 여성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2016.5.19. 중앙로역)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한 20대 여성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2016.5.19. 중앙로역)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한 여성이 중앙로역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보고 있다.(2016.5.19. 중앙로역)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한 여성이 중앙로역에 붙어 있는 포스트잇을 보고 있다.(2016.5.19. 중앙로역)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오후 출근길에 추모의 메시지를 남긴 권모(25)씨는 "몰카(몰래카메라)가 걱정돼 지하철 화장실은 가지 않는다. 이젠 죽을까봐 어디 다니지도 못 하겠다"며 "여성 혐오와 범죄도 문제지만 '신학도의 꿈', '정신질환' 등의 보도를 보면 언론 역시 이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보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여자가 무시해 신학도를 꿈꾸던 이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인식하게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여성은 '나는 여자라서 죽었다. 니가 남자였다면 죽였을까?'라고 적힌 포스트잇을 붙였다. 그는 "제도적으로는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조심해야 되고, 범죄의 대상이 되는 현실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남성과 여성의 서로간 성별에 대한 지나친 적대심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추모 메시지를 읽던 20대 남성은 "강남역 살인 사건은 분명히 여성 혐오로 인한 범죄이고, 가해자는 남성이다"며 "하지만 이번 일로 서로간의 혐오가 심해질까 우려된다. 남성은 여성을 존중하고, 여성은 더 자신을 높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4대 흉악 강력범죄의 여성 피해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자료.통계청
4대 흉악 강력범죄의 여성 피해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자료.통계청

2014년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살인·강도·방화·강간 등 4대 흉악 강력범죄의 여성 피해자 비율은 2000년 71.2%에서 2012년 85.6%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여성 피해자는 2000년 6,245명에서 2012년 22,381명으로 약 3.6배 증가한 반면, 남성 피해자는 2,520명에서 3,754명으로 약 1.5배 증가해 여성을 대상로 한 범죄가 남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보다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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