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현장서도 마스크 써야하는 '여성'의 현실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입력 2016.05.27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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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앙로역서 '강남역 사건 추모 발언대' / 시민들 '여성혐오'와 '성차별' 경험 증언


최근 서울 강남역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살인사건과 관련해 '여성혐오'가 이슈가 되자, 26일 저녁 대구 중앙로역에서 대구시민들이 '여자'라서 겪은 차별과 공포에 대해 털어놨다.

"직업 특성상 여러 사람을 만나요. 순종적 여성성을 강요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인사를 하다 다짜고짜 포옹 하길래 '이러지 마시라' 했더니 '여자애가 버릇이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싫어서 거부하는데도 그런 소리 들어야 하나요? 젊은 여성은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다 해야 하나요? 평소에 점잖다 생각한 사람이 '젊은 여자가 따라주는 술이 더 맛있다'했을 때는 충격이었어요" 23살 박모씨의 얘기다.

또 다른 20대 여성의 발언도 이어졌다. "매일 지나던 길인데 요즘은 어둡고 인적이 없으면 두려워요. 어른들은 '여성이 더 조심해야 된다', '품행이 단정해야 된다'고 해요. 그러다 범죄 피해자가 여성이면 '평소 행실이 어땠길래'하며 구설수에 올라요. 희생당한 여성 관점에서 보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요? 추모와 두려움을 표하는 자리도 우리는 얼굴을 가리고, 큰 용기를 가지고 나와야 해요"

한 20대 여성이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경험을 밝히고 있다.(2016.5.26. 중앙로 아카데미광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한 20대 여성이 강남역 사건 이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경험을 밝히고 있다.(2016.5.26. 중앙로 아카데미광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모두 20대 초반 여성들의 경험담과 생각이다. 근처에 있던 추모(27)씨도 성적 비하를 당한 일을 털어놨다. "체격이 좋은 편이예요. 고등학생 때 딱 달라붙는 바지를 입고 갔어요. 처음 본 사람들이 '코끼리 다리', '스키니는 여자 자존심' 같은 말을 했어요. 그 웃음을 잊을 수 없어요. 한국은 젊은 여성에게 날씬함을 강요하고 거기에 맞지 않으면 동물원 원숭이 보듯 하는 것 같아 씁쓸해요"

성별간 '혐오' 논란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한 여성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은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위치가 아닌 더 약하고 낮은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무작정 남성은 여성을, 여성은 남성을 싫어해선 안 된다. 대립대신에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하철 중앙로역 2번출구 앞에 '강남역 살인사건 희생자 추모 발언대'가 마련됐다.(2016.5.26)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지하철 중앙로역 2번출구 앞에 '강남역 살인사건 희생자 추모 발언대'가 마련됐다.(2016.5.26)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2번 출구는 지난주말까지 강남역 살인사건 희생자 추모 포스트잇이 붙었던 곳이다. 포스트잇이 사라진 뒤 25일부터 오는 31일까지는 매일 저녁 7시부터 2시간가량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여성으로 살면서 느꼈던 차별과 어려움, 강력 범죄에 대한 두려움 등을 말하는 자리가 열린다. 광장에는 '강남역 살인 대구 추모·자유발언대'라고 적힌 현수막과 포스트잇을 붙일 수 있는 게시판이 세워졌다. 26일 저녁에는 시민 10여명이 참석했다. 행인들이 발길을 멈추고 지켜보기도 했다.

이 자리를 마련한 김재환(23.남)씨는 "아직 여성은 추모도, 성토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여기서만큼 걱정 없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첫날 한 아주머니가 '50여년을 살았지만 30년 전과 달라진 게 없어 가슴 아프다. 여성은 언제 차별 없이 마음 놓고 꿈을 펼칠 수 있을까'라고 했다"며 "지나가다 말씀하셨는데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또 "많은 이들이 강남역 살인을 본인 일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모두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20일 오전 중앙로 2번출구 옆에 붙여진 수 백여개의 추모 포스트잇 (2016.5.20. 중앙로역)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20일 오전 중앙로 2번출구 옆에 붙여진 수 백여개의 추모 포스트잇 (2016.5.20. 중앙로역)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앞서 지난 17일 새벽 서울 강남역 인근 한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한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살해됐다. 경찰 조사에서 피의자는 "평소 여성에게 무시당했다"며 범행 동기를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범행 전 주변을 1시간가량 배회하면서 여성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점도 언론을 통해 밝혀졌다. 이에 시민들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강력범죄를 비판하고 피해 여성에 대한 추모의 뜻을 담아 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대구에도 지난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간 중앙로 2번출구 난간에는 수백여개의 포스트잇이 붙여졌다. 현재 중앙로역 추모 포스트잇은 철거됐고, 이는 서울로 보내져 전국의 추모 포스트잇과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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