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병원 해고자들, 100일째 병원 앞에서 천막농성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입력 2016.06.0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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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된 지 8개월, 통장 가압류에 실업급여도 끊겨..."병원측은 대화조차 거절"


"여름철에는 실내온도가 50도 가까이 되는 주차 안내부스 안에서 일했다. 그런데 병원은 우리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공공기관인 경북대병원이 정부지침을 지키지 않고 수년간 일했던 노동자들을 집단해고 했다"

3일 오후 2시. 중구 삼덕동 경북대병원 앞 천막농성장에는 해고된 주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앰프를 통해 나왔다. 농성장 앞 네거리 귀퉁이마다 해고자들은 둘씩 짝지어 피켓과 현수막을 들었다. 지난 2월 25일 소송과 벌금을 견디지 못 하고 병원 밖으로 나가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 100일째다. 해고자 26명 중 절반 이상이 실업급여 수급기간이 끝나자 생계가 어려워 농성장을 떠났다. 남은 이들은 각자 노조에서 지원하는 생계비 80만원을 받으며 버티고 있다. 하지만 병원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정년퇴직 후 병원 주차장에서 6년 동안 일했던 이흑성(64)씨는 지난해 말부터 동료들과 함께 대구경북지역의 집회와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경북대병원 해고자들의 현실을 알리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타지역 의료기관 노조와 연계하기 위해 울산, 청주 등에도 몇 번씩 다녀왔다. 그는 "사람이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라며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데 병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지만 포기하기에는 늦은 것 같다"고 털어놨다.

경북대병원 주차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인 이흑성(64)씨가 천막 앞에서 "정부지침 이행으로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2016.6.3.경북대병원 앞)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경북대병원 주차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인 이흑성(64)씨가 천막 앞에서 "정부지침 이행으로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고 있다.(2016.6.3.경북대병원 앞)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장미영(49.가명)씨는 9년 동안 병원 입구 주차 안내부스에서 일했다. "해고되기 전에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면서 "부당해고에 화가 나면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격려에 힘을 얻는다"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고3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한 그는 "아들이 영어학원을 그만뒀다. 중요한 시기에 못 챙겨줘서 늘 미안하다"며 "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수 없다. 가족들은 '할 만큼 했다'고 하지만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했다.

지난 10여년간 하청업체가 바뀌어도 이들은 계속 일을 해왔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보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고용을 승계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병원은 기존 26명에서 4명을 줄여 용역업체를 입찰 공고했다. 이에 노조는 일방적인 인원 감축은 정부지침 위반이라며 전원 고용을 요구했다.

하지만 병원은 줄인 인원 그대로 새 업체를 선정했고, 이에 반대하던 노동자 26명은 지난해 9월 30일 계약기간 만료로 해고됐다. 해고자들은 "지침에 따라 병원은 기존인원을 전원 고용해야 한다"며 해고 직후인 10월 1일부터 247일째, 해를 지나 8개월 넘게 농성하고 있다. 이처럼 경북대병원 주차관리 해고자들은 영하의 한파에도, 30도가 넘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도 피켓과 촛불을 들었다.

지난 2월 설연휴 전 노동청 중재로 열린 병원 측과의 면담에서 병원은 노조가 먼저 사과를 하면 복직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노조는 진정성이 의심된다며 응하지 않았고, 그렇게 서로의 입장만 확인한 채 결렬됐다. 또 3월에는 지역 시민단체들이 해고자 문제와 병원 공공성을 위한 대책위를 꾸렸지만 병원은 이들의 요구를 계속해서 거절해왔다.

삼덕동 경북대학교병원 본원 (2016.6.3)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삼덕동 경북대학교병원 본원 (2016.6.3)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이 과정에서 병원은 이들의 농성을 끊임없이 방해했다. 계속되는 소송과 1억원대의 벌금은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했다. 특히 일하면서 받지 못한 각종 수당과 3년치 퇴직금을 겨우 돌려받자마자 이 마저도 일부 빼앗겼다. 병원이 '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통해 해고자와 노조의 통장을 가압류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270만원, 지금은 농성장을 떠난 동료 2명은 각각 180만원, 50만원의 벌금을 내야했다. 이씨는 많은 이들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내 밝은 모습을 보이던 김동현(48)씨도 "우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한순간에 해고돼 생계와 가족이 무너졌다"며 "지지부진한 과정 속에서 먼저 지칠까 걱정된다. 먼저 나간 동료들도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또 "천막 앞에서 촛불 집회를 하고 발언을 하면 녹음과 채증까지 한다"면서 "해고자들의 삶은 생각하지 않고 본인들의 주장만 내세워 우리를 인격적으로 보지 않는 현실이 비참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해고자들처럼 활발한 활동을 하기보다 묵묵히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오대원(가명.65)씨는 "집을 나설 때마다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복직해서 하루만 일해도 된다. 그저 잘못됐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3월 경북대병원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문제와 공공성 강화를 위해 시민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2016.3.3)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지난 3월 경북대병원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문제와 공공성 강화를 위해 시민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2016.3.3)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한편 공공운수노조대경본부,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등 지역 27개 단체는 지난 3월 '경북대병원 의료공공성 강화와 주차관리 비정규직 집단해고 철회를 위한 대구지역 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해 매주 월~금요일 천막농성장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현재 대구시와 만나 해결방안 마련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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