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장미대선 투표도 못하는 '흙수저' 노동자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7.04.2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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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백화점·대형마트, 사전투표일·선거당일 영업 / 캐셔·영업직·미화원·택배기사 사실상 투표 불가


대구롯데백화점 앞에 걸린 5.9 대선 투표 독려 현수막(2017.4.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롯데백화점 앞에 걸린 5.9 대선 투표 독려 현수막(2017.4.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대형마트와 백화점들이 오는 5월 9일 '장미대선' 당일뿐 아니라 5월 4~5일 사전투표일에도 '황금연휴' 대목 영업에 나서면서 많은 노동자들이 사실상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대선을 2주 앞둔 25일 대구롯데백화점. 입점업체인 수입화장품 A사에서 5년째 영업직원으로 일하는 김모(35)씨는 2012년에 이어 이번 대선에도 참가할 수 없게 됐다. 정부가 대선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오전 6~오후 8시까지 투표가 가능하지만 최장 9일 황금위크에 백화점이 정상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대구지역 한 대형마트의 캐셔(2017.4.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한 대형마트의 캐셔(2017.4.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아침 9시 출근시간에 맞추기 위해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 뒤 딸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경산 집에서 직장으로 출근하는데만 꼬박 3시간. 짬을 내 투표를 하고 싶어도 '을'의 위치인 김씨로썬 투표의 '투'자도 꺼내기 어렵다. 김씨와 같이 입점업체에서 일하는 대다수의 직원들이 비슷한 처지다.

그 탓에 김씨는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다. 그는 "뽑고 싶은 후보가 있지만 그러면 뭐하나. 사전투표일은 어린이날이 끼어 못 쉬고 선거 당일은 임시공휴일이라 쇼핑 나오는 사람이 많아 못쉬고. 남들은 황금연휴니 황금위크니 부러운소리만 하는데 흙수저들은 내 손으로 대통령도 못뽑는다"고 한탄했다.

같은 백화점에서 청소미화원으로 일하는 이모(67)씨도 투표를 포기했다. 김씨와 같은 이유다. 백화점 직원들이나 출퇴근 시간에 여유를 부릴 수 있지 교대도 없이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하는 용역업체 직원에겐 그림의 떡이다. 연휴 기간에는 업무량도 늘어 투표 생각은 할 수 조차 없다. "투표하러 갈테니 시간 달라고 어떻게 말하나. 가라고 해야지 가지.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가판대 물건을 정리 중인 대구의 한 백화점 아울렛 판매직(2017.4.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가판대 물건을 정리 중인 대구의 한 백화점 아울렛 판매직(2017.4.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의 한 백화점에서 일하는 청소미화원(2017.4.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의 한 백화점에서 일하는 청소미화원(2017.4.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백화점이 대목을 맞으면서 안그래도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쁜 택배기사들은 더 바빠졌다. 택배기사들에게 대통령 선거는 먼 나라 이야기다. 대구백화점에서 만난 B업체 택배기사 류모(40)씨는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도 손에서 휴대폰을 놓지 못했다. 류씨는 "장미도 모르겠고 대선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없다. 대선이라는 걸 뉴스를 통해서만 가끔 느끼지 투표는 엄두도 못낸다"면서 "못해도 1~2시간은 빼고 가야하는데 그게 다 돈이다. 아예 휴무면 모를까 실제로 택배기사들 대다수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대구의 한 백화점 협력업체 택배기사(2017.4.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의 한 백화점 협력업체 택배기사(2017.4.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중구에서 판매를 하는 한 야쿠르트 아주머니(2017.4.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 중구에서 판매를 하는 한 야쿠르트 아주머니(2017.4.25)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투표권을 행사 못하는 이들은 대형마트에도 있다. 대형마트들도 사전투표일과 선거당일 모두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 대구점 캐셔인 40대 이모씨는 오전반으로 오전 8시 30분까지 출근한다. 부지런하면 투표할 수 있지 않냐고 되묻는 이들이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집에서 직장까지 버스로 1시간 30분. 집에서 투표소까지는 20분이다. 오후 5시에 퇴근해도 투표권을 행사 할 수 없는 이유다.

대구지역 대부분의 대형마트와 백화점, 아울렛 등 유통업계가 같은 상황이다. 뿐만 아니다. 특수고용직이나 비정규직들도 투표권을 보장 받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대구지역 한 요양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하고 있는 이모(49)씨, 야쿠르트 아주머니 양모(51)씨도 선거기간 내내 근무를 한다. 간병사 이씨의 경우는 하루 14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고 투표장에 가면 저녁 9시가 넘는다. 투표는 꿈도 못 꾼다.  

대구선거관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대선 당일은 임시공휴일이다. 근로자의 경우 노사가 취업규칙상 휴무로 정하도록 협약을 했다면 쉴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만약 당일 투표가 어렵다면 사전투표제가 있다"면서 "더 많은 국민이 투표권을 행사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만약 이도 어렵다면 노사가 조정해 가능한 투표를 하도록 독려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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