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농사꾼 김상화씨, 1년만에 '사드반대' 투사가 되다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입력 2017.07.1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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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몰랐던 청년이 '동남청년단'이 되기까지...'3부지' 소성리로 옮겨가자 "내 지역, 내 손으로 바꿔야"


김항곤 성주군수의 사드 배치지역 이전 요청은 평범한 농사꾼 김상화(37)씨를 투사로 만들었다.

채소 농사를 짓는 젊은 청년인 상화씨는 2016년 7월 13일 성주 사드배치 발표 직후 난생 처음 집회에 참석했다. 그가 몸 담고 있던 성주농업경영인협회에서 면 단위로 지역별 요일을 정해 참석한다는 방침 때문이었다. 사드가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그렇게 한 두번 참석해보니 민가를 향한 레이더와 전자파 문제, 섬·사막에 배치된 외국사례, 미 육군교범의 '3.6km 이내 민간인 출입금지'에 어긋나는 점 등을 알게됐다. 옳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한 상화씨는 어느순간부터 매일 촛불집회에 나오기 시작했다.

'동남청년단' 김상화씨(사진 왼쪽)와 이국민씨(2017.7.10.성주군 성주읍)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동남청년단' 김상화씨(사진 왼쪽)와 이국민씨(2017.7.10.성주군 성주읍)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그런 상화씨에게 김항곤 군수가 사드 발표 한 달여만에 3부지를 요청한 것은 충격이었다. 비민주적이고 불합리한 결정에 군의원·도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 사회단체도 하나 둘 발을 빼기 시작했다. 상화씨가 수 년째 몸 담고 있었던 단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상화씨는 오히려 더 불타올랐다.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오후 성주읍의 한 카페에서 만난 '동남청년단' 김상화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성주를 대표하는 군수, 믿었던 사회단체 대표에 대한 배신감이 컸다"며 "초전으로 옮겨가서 괜찮다는 것만큼 폭력적인 생각이 어디있는가, 초전도 성주고, 소성리에도 사람이 산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이후 투쟁위 회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3부지 이야기였다"면서 "더 이상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새로운 싸움을 해야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성주 사드반대 집회에서 만난 '동남청년단'과 이야기 나누는 상화씨(2017.7.10.성주군 성주읍)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성주 사드반대 집회에서 만난 '동남청년단'과 이야기 나누는 상화씨(2017.7.10.성주군 성주읍)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사회단체들이 군청 촛불집회에 나오지 않으면서 일손도 부족해졌다. 상화씨는 지난해 8월 극우단체 '서북청년단'이 성주군청 앞에서 사드찬성 집회를 열고 간 날 밤, 이들에 대응해 불 꺼진 성주군청 앞에서 방민주(39), 이민수(39), 도완영(45)씨 등 3명과 '동남청년단'을 만들었다. 이후 이강태(43), 조성용(49), 이국민(47)씨 등이 합류하면서 인원은 현재 13명으로 늘었다.

동남청년단은 그 때부터 성주 촛불에서 없어선 안될 존재가 됐다. 훼손된 사드반대 현수막을 밤새 보수하고 매일 저녁 의자 1천개를 깔았다. 집집마다 일손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출동했다. 집회 후에는 촛농을 뗐고, 군청 건너편으로 촛불집회 장소를 옮길 때는 이사를 도왔다. 날씨가 쌀쌀해지자 장작을 패고 난로를 만들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주민들은 추운 겨울에도 어김없이 촛불을 들수 있었다. 사드배치 발표 1년째인 13일 오후에는 소성리 어르신들을 위해 수박 화채를 준비하기도 했다.

상화씨는 "지난 1년간 모든 힘든 일을 동남청년단과 함께 견뎌왔다"며 "사드 배치지역이 초전면으로 옮겨가고, 레이더 방향도 김천 쪽으로 향했지만 여전히 촛불집회에 매일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촛불을 계속 지켜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수박 화채를 만들어 주민들과 나누는 동남청년단(2017.7.13.소성리마을회관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수박 화채를 만들어 주민들과 나누는 동남청년단(2017.7.13.소성리마을회관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사드장비 반입 후 소성리회관 앞에서 텐트를 치고 마을을 지키는 동남청년단 / 사진 제공. 김상화씨
사드장비 반입 후 소성리회관 앞에서 텐트를 치고 마을을 지키는 동남청년단 / 사진 제공. 김상화씨

그는 지난 2월 방민주, 이민수씨와 성주전통시장에서 식료품 가게 '빵야'를 열고 성주 대표 작물인 참외모양의 찐빵과 지역 로컬푸드를 팔고 있다. 상화씨는 "사드반대 투쟁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언젠가는 끝날 것이다. 촛불로 만난 인연을 이어가기 위해 가게를 열었다"며 "나중에는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더 많은 주민들과 함께 하고 싶다. 참외찐빵으로 남성주휴게소 입점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또 "공직자들이 군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소수를 어떻게 내버리는지 목격했다"며 "아무리 적은 사람이라도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으면 안된다. 그 사람들이 도와달라 했을때 성주군수는 나몰라라 했다. 더 이상 우리 지역을 맡겨선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군민 목소리를 듣고, 높은 사람에게도 자기 목소리를 낼 줄아는 사람이 성주의 대표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겨울 군공항 이전문제가 불거질 때 앞장서서 반대 여론을 모았다. 기사를 직접 찾아보고 수원·김해 등 공항인근 지역 정보를 모았다. 이후 공항 이전 후보지인 용암면 주민들에게도 알렸다. 현재는 성주시장상인회 전 간부의 공금횡령을 비롯해 부적절한 군행정을 공론화시키고 있다.

김상화씨가 K2공항이전 설명회에서 반대이유를 설명하고 있다(2017.1.12.성주문화예술회관)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김상화씨가 K2공항이전 설명회에서 반대이유를 설명하고 있다(2017.1.12.성주문화예술회관)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그는 "조금씩이지만 성주가 변하고 있다. 관심갖지 않아 몰랐던 우리 지역의 문제들을 사람들이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며 "매일 최전선에서 싸우는 소성리 어르신들에게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성주 곳곳에서 함께 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고 했다.

성주 사드반대 촛불이 켜진지 1년째다. 사드가 무엇인지 몰랐던 주민들은 어느덧 사드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전문가가 됐다. 성주의 작은 움직임이 큰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파란나비효과'를 믿으며 여성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들은 춤을 추고, 농민들은 수확한 작물을 나눈다. 정부가 이들을 속이고 관이 등을 돌려도 사드가 언젠가는 철회될 것이라 믿으며 하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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