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규(64) 대구은행장이 각종 비리 혐의와 관련해 주주총회에서 사퇴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DGB금융그룹지주 회장직은 유지키로 해 시민사회와 노조의 반발을 샀다. 특히 소액주주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 주총에 대리 참석한 시민단체 일부 인사들은 "회장직도 사퇴하라"며 박 회장을 압박했다.
DGB금융그룹은 23일 대구은행 제2본점에서 '제7기 DGB금융지주 정기주주총회'를 열었다. 박 회장을 비롯해 주주와 직원 등 1백여명이 참석했다. 박 회장은 시작하자마자 "최근 여러 상황에 대해 심려를 끼쳐드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고객들과 주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행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다"면서 "조속한 시일 내에 새로운 DGB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그룹 회장직은 새 사장이 선임되는 상반기 중 거취를 표명하겠다"고 덧붙였다.
비리 혐의로 인해 검찰과 경찰의 수사를 받은 지 8개월여만이다. 박 회장은 취임 직후인 2014년 3월부터 상품권을 산 뒤 되파는 이른바 '상품권 깡'으로 수수료를 뺀 31억원 비자금을 조성해 개인적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번이나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혐의 불분명'을 이유로 모두 기각됐다.
이와 관련해 57개 단체가 참여하는 '대구은행 박인규행장 구속·부패청산 시민대책위원회' 는 DGB금융지주 자회사 대구은행 주주 중 이른바 '개미(소액주주)'로 불리는 일반투자자들로부터 6만여주에 이르는 주식 권한을 넘겨받아 주총에 대리참석했다. 비리 혐의에 대해 박 회장에게 직접 묻기 위해서다.
하지만 박 회장에게 직접 소명을 들어야겠다는 시민단체 인사들과 이를 반대하는 일부 주주들 사이에 1시간 가까이 설전이 벌어지면서 주총은 난장판이 됐다. 특히 주총 의장을 맡은 박 회장이 사회권을 지고서 소액주주 권한을 위임받은 시민단체 인사들에게 발언 기회를 제한해 항의를 받았다. 비리 연루 의혹을 사고 있는 인사들의 선임건이 통과될 때에는 표결 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주총에서 "대기업이 비자금·채용비리 혐의를 받고 있다. 소명하라는 주주 입을 막는 게 말이되냐"고 따졌다. 남은주 대구여성회 대표는 "반대 토론을 묵살하고 한쪽 입장만으로 의안이 가결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며 "주총을 보니 대구은행에서 왜 그 동안 비리가 발생했는지 알만하다"고 꼬집었다. 장지혁 대구참여연대 정책부장은 "비리 사태 후 리스크위원회라도 열어 주가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닌지 따졌냐"며 "주주는 거수기가 아니다. 경영진에게 따질 권한이 있다. 이렇게 할거면 주총을 왜 여냐. 박 회장은 즉각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
뿐만 아니라 다른 대리자들도 ▲비자금·채용비리 형사 피의자 박인규 사퇴·해임 ▲부패 직무유기 임원(사내이사 후보 박인규, 노성석, 조해녕, 사외이사·감사위원 후보 하종화, 전경태 선임 반대 ▲비자금·채용비리 공범자(김남태 부사장, 여민동 부행장 등 6명) 승진 철회·해임 ▲부패방지·사회적 책임 제도화(특혜채용 직원 퇴출, 피해자 구제, 인권침해 방지 등)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이 자리는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다"면서 "오늘 상정이 되지 않은 결의사항에 대해서는 더 듣지 않겠다"고 함구했다. 이어 "저도 하고싶은 말이 많이 있지만 오늘은 주총을 하는 좋은 자리니 좀 조용히 해달라"며 "의견은 토론으로 주고 받지 않겠다. 표결로마 말해달라"고 일축했다.
이날 노조도 박 회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전국금융산업노조 대구은행지부(대구은행노조)'는 주총장 앞에서 피켓팅을 벌이며 "은행의 미래와 고객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박 회장은 책임져야 한다"며 "개인의 생존을 위해 조직과 부하직원을 방패막이 삼지말아햐 나다"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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