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케이 대통령 구속과 티케이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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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언론의 잣대를 방기한 언론, 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이제 참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질타한다. 십중팔은 엄벌해야 한다고 그를 지탄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양적으로 질적으로 진짜 신문 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 그가 5년 임기의 그 자리까지 향유했다니 국민 전체가 맨붕에 빠지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신문 날 일이다. 그런데 그동안 언론은 그런 그를 전혀 몰랐을까. 몰랐다면 왜 몰랐을까.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는 패턴 속에서 그렇게 큰일이 될 줄은 인지하지 못했을까. 알았다면 왜 ‘깜(깜냥)’이 그런 줄 알고도 침묵했을까. 아니 왜 두둔 왜곡했을까. 그는 지금 구속되어 있다. 같은 직급을 4년간 향유하던 그녀는 먼저 구속되어 있다.

 언론도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를 시멘트바닥 위에 세운 것도 언론이다. 그런데 최근이다. 다스는 누구의 것이냐는 아우성을 추적한 것도 언론이다. 그런데 시점은 최근이다. 다스는 점점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의 것이 되어갔고 그의 것이 되어갈수록 그의 죄목도 차곡차곡 동전처럼 축적되어갔다. 그녀를 몰아세운 것도 언론이다. 그런데 임기1년을 남긴 시점이다. 그녀를 도운 여인, 그 여인의 딸, 그 딸이 다니던 대학의 교수, 그리고 재벌들, 그녀와 그녀들, 자본들의 유착적 호혜가 빚은 국정은 촛농처럼 흘러내렸다. 그는 그녀들의 농단에, 국민적 촛불에 느긋하게도 다음과 같은 어록을 배설한다. “나도 못했지만 나보다 더 못하는 것 같다.”라고. 한 치 앞도 못 본 건지, 유체이탈 화법인지, 그렇게 말했다.

 연이은 한국 대통령의 구속에 세계의 언론들도 관련 뉴스를 세계에 전파했다. 시의성은 물론 저명성에다 기이성까지 중첩된 높은 뉴스밸류 판단기준에 근거하여 속보(速報)로 전했다. 미국 엘에이타임스는 한국의 대통령들은 조사받는 일에 익숙하다고 보도하며 비아냥거렸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한국 대통령들은 임기이후에 감옥에 가는 경향이 있다고 보도하며 조소했다. 프랑스의 국제통신 에이에프피는 그가 비리혐의로 구속된 역대 네 번째 전직 대통령이 됐다고, 객관성을 덕목으로 삼는 국제통신사의 특성대로, 무미건조체로 보도했다.

<경향신문> 2018년 3월 15일자 1면 / <경향신문> 2017년 3월 22일자 1면
<경향신문> 2018년 3월 15일자 1면 / <경향신문> 2017년 3월 22일자 1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이 같은 경향이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자랑거리는 될 수 없다. 하지만 크게 창피스런 사건은 아니다. 대통령을 쫓아 낼 수 있고, 감옥에 가둘 수도 있다는 것은 국민의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나는 본다. 국민을 온갖 거짓으로 속이면, 국민의 재산을 갖은 방법으로 축내고 위법을 저지르면 결국 가만두지 않는다는, 정의에 입각한 국민적 준거(準據)의 실행이라고 나는 본다. 우리 국민은 국가적 위기에 명을 내놓았다(見危授命). 압제에는 항거했다. 그런 고귀한 정신을 갖고 있기에 그런 부류들은 얼마든지 폐기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는 많은 민주항쟁의 본보기를 세계사에 확산했다. 일제의 폭압에 맞선 3.1운동, 독재권력에 항거한 4.19학생의거, 부마항쟁, 5.18항쟁, 6.10항쟁, 그리고 촛불무혈혁명! 우리는 세계를 놀라게 한 안중근 의사의 나라가 아닌가. 윤봉길 의사, 이봉창 의사, 유관순 열사...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우리의 의로운 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바탕 위에서 보면 국민을 탄압하고 속이고 국고를 말아먹은 축들에 대한 국민적 응징인 감방몰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따라 하지 못할 자존적 책무의 발동이다. 그것은 앞으로도 그러한 자들이 나오면 그렇게 안치된다는 예지적 선언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진전된 이 ‘사건들’에 대한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언론(언론인)’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에 오래 종사했고 지금은 언론학도인 나는, 누워서 침뱉기이지만 이에 대한 크나큰 책임은 언론에 있다고 주장한다. 왜 이런 일이 되풀이되는가에 대한 반성도 없고, 회한도 없고, 교훈도 없는 언론의 몫이다. 최근 구치된 그에 대해 당초 언론의 언론다운 체크는 없었다. 조선조 중기이후 지배층에 만연한 당동벌이(黨同伐異)의 문맥은 언론에 그대로 승계됐다. 당동(黨同)적 언론은 진영이 다르다는 이유로 벌이(伐異)에 치중했다. 차기(次期)를 암중모색하는 맹아(萌芽)가 어떤 맹아인지 진영만 따질 뿐, 개성(個性)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엄연한 직무유기였다. 먼저 입소한 그녀에 대해서도 언론은 언론의 잣대를 방기했다. 언론은 고의적, 비고의적, 또는 역사의식도 없이 진실을 외면하면서 왜곡했다. 그 결과, 그는, 그녀는, 그 취임은, 언론이 보는 앞에서 화려했었다. 

 반성이 없다는 것은 한국 언론에 국한되는 것은 사실 아니다(세계의 언론들도 별로 반성하지 않아 왔다.) 우리나라의 언론만 보면 반성 없는 그것은 내력이다. 일제하 소위 민족언론이 일제하에서 행해온 언론행위는 일제의 구미에 맞춘 언론행위 자체였다. 문제는 일제의 구미에 맞춘 언론행위에 대한 반성이 시대가 바뀐 해방이후에도 거의 없었다는 데에 있다. 만약 나쁜 피를 뽑고 썩은 뼈를 도려내는 반성의 전통이 있었다면 한국의 언론은 그 후 달라졌을 것이다. 달라졌다면 언론은 언론적 권위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권위를 갖게 되었다면 두 번 다시 군부가 들어서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전두환·노태우 두 대통령 구속이후에도 여지는 있었다. 그때 언론이 추후 반성을 하면서 됨됨이를 체크 하였더라면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100년도 넘은 지금 일제하를 떠올리며 친일 부일 잔재 청산 따위를 부르짖는 것은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불명예를 씌우고 매장하려는 의도에 있지 않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연이어 수감된 두 대통령의 배출지역이 모두 티케이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의 언론은 차치하고 이 지역의 언론(언론인)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동향의 인물이 최고의 권력에 오를 수 있도록 모든 눈을 감고 오직 한쪽만 보았는가. 그때는 몰랐는가. 그런데 그 앞에 구속된 두 전직 대통령의 배출지역도 티케이라는 명료한 사실은 문제의 난이도를 더욱 높인다. 대구·경북지역 언론(언론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일제하에서 대구읍성을 완전히 파괴(破壞)한 박중양은, 일본에서 황금을 찾아 대구 성밖까지 온 일본상인들의 편의만을 봐주기 위해 인부를 동원하여 대구읍성을 모두 허물고 그 자리에 동성로 서성로 남성로 북성로라는 신작로를 닦은 너무나 일본적인 박중양, 그는 조국광복이후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일본을 옹호하는 자세로 일관했다. 박중양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반성이 없었다.
 
 반성이 없는 언론, 언론이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세상은 민주주의에 반하여 거꾸로 흐른다는 사실 – 교훈이다.

 티케이 언론이 이러할 때 티케이 시민은 무엇을 하였는가에 대한 고찰도 다음에는 필요할 것이다.  




[유영철(兪英哲) 칼럼 15]
-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2003~2005)
- 동아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2008)·박사(2013)
- 저서 :『신문칼럼 작법』(2015), 『기자이상의 기자 기자이하의 기자』(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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